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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오늘, 1975년 그날. 그들의 인혁당 조직 관련 혐의는 대한민국 법 앞에 영영 무죄다. 그 전에 그들은 역사와 민족 앞에 영영 무죄다. 그 전에 그들은 죽음 앞에 영영 무죄다." <김정환 시인의 추모시 가운데> 인혁당 사건 유족들의 눈물은 오늘(4월 9일)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의 피는 살아서 내 몸에 뛴다"는 김지하 시인의 추도시가 울려 퍼지는 동안에도, 이제는 초로의 신사가 된 인혁당 사건 피해자 전창일씨가 과거의 동지들 이름을 하나 하나 외치는 순간에도 유족들의 눈에서는 끊임없이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유족들에게는 여전히 '오늘'의 고통이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 민주열사 32주기 추모제'가 9일 오후 3시 유가족, 인혁당 사건 관계자, 민주화운동 인사 등 추모객 4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독립공원 내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렸다. 특히 이날 추모제에는 정진호 법무부 차관이 참석, 인혁당 사건에 대해 처음으로 정부 차원의 유감을 표명했다. 지난 1월 인혁당 사건 무죄 판결 이후로는 처음 열린 이날 추모제에서 사회를 맡은 영화배우 문성근씨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고생했는지 모른다. 그 중 바로 저기 사형장에서 돌아가신 여덟 분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32년 만에 무죄 선고를 보고드릴 수 있게 돼 기쁘다"는 말로 행사 시작을 알렸다. "베어진 소나무 밑둥을 어루만지며 1975년 4월 9일, 하늘도 모르고 땅도 모르는 죄명을 걸고 북망산 넘어가는 여덟 분의 긴 그림자를 보고 산새는 깃털을 세우고 슬피 울었습니다"는 참여연대 공동대표 청화 스님이 추모시에 이어 김수환 추기경의 추도사가 대독됐다. 김수환 추기경은 대독 추도사를 통해 "32년전 1975년 4월 9일, 이 자리에서 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소위 인혁당의 누명 속에 사형수로 처형된 도예종, 서도원, 하재완, 송상진, 우홍선, 김용원, 이수병, 여정남 여덟 분은 주 예수 당신과 닮은 형제들"이라며 "이로 인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 했던 유가족을 보살펴 달라"고 말했다. 김 추기경 추도사를 대독한 김병상 신부(정의구현사제단 고문)는 "지금 한쪽에서 민주 발전과 성장을 가로막는 검은 구름이 어둡게 몰려오고 있다. 사람 마음에 갈등을 일으키는 세력들이 뻗어 나가는 현실로 인해 이 자리에서 마음이 불편하고 어둡다"면서 "의로운 사람, 착한 사람이 손잡고 살아가는 사회가 되는데 마음을 모으고 다짐하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최근 시국과 관련한 심경을 드러냈다. 인혁당 배후지원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박형규 목사(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는 80대 나이에도 불구하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민청학련 관련 사람들을 모두 빨갱이로 몰아 사형하려고 한 유신정권에 의해 자행된 가장 악독한 살인 사건"이라 규정하고 "당시 사형 선고를 한 재판관들이 지금이라도 독재자의 압력에 굴복했다고 진실을 자백해야 한다. 진실이 밝혀져야 화해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인혁당 사건, 유신정권에 의해 자행된 가장 악독한 살인 사건" 국회 출석 관계로 법무부 장관 대신 참석한 정진호 법무부 차관은 정부 차원의 진상 규명 노력을 소개하고 "사법 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될 정도의 사건이었지만, 그동안 이에 대해 가타부타 말하는 것 자체가 금기였던 것이 사실"이라며 "다시 한 번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빈다. 유족들에게도 깊은 애도의 말씀을 드린다"고 '공식 추도사'를 통해 유감을 표명했다. 또 정 차관은 "당시 수사나 재판 그리고 형 집행에 관여하지 않은 자가 행사를 참석하는 것이 유족들에게 얼마나 위로가 될지 모르겠다"면서 "하지만 장관이 여러분과 함께 고인들의 명복을 비는 기회를 갖는 것이 뼈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정부 차원의 약속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유족들과 추모객들은 '사형 당하기 직전, 사형수들이 잠시 붙들고 통곡했다'는 통곡의 미루나무 부근에 있는 사형장으로 이동하여 헌화를 통해 고인들의 넋을 기렸다. 헌화 행사가 끝난 후 유족들은 연단에서 각각 그동안의 소회를 밝혔다. 가끔 울먹이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유족들은 대부분 정부의 유감 표명에 큰 위안을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고 유홍선 선생의 부인 강순희 여사는 "그동안 도와주신 분들께 너무 감사드린다"며 "옛날에 밝혀진 진실을 (정부가) 인정하기가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오늘 법무부 차관이 사과해서 그동안의 분이 절반 정도는 풀린 느낌"이라고 말했다. 고 이수병 선생의 부인 이정숙 여사는 "남편이 사형 당한 이 자리를 지나치기 싫어 강동구로 이사했을 정도로 가슴이 아팠다. 솔직히 그동안 추모제에 참석하기 싫었고 헌화할 때는 쓰러질 뻔했다"며 그간 겪었던 마음의 고통을 소개했다. "가사 일만 하다가 갑자기 닥친,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시련이었다. 그동안 겪은 마음 고생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한 고 김용원 선생의 부인 유승옥 여사는 "우리 남편만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있었기에 이렇게나마 싹이 텄다고 생각한다. 뒤늦게나마 정부에서 나와 말을 해줘 그나마 위안을 받았다"고 말했다.
특히 여상화씨는 행사장 양쪽에 세워져 있는 '19750409 인혁당, 민청학련 무죄', '20070409 인혁당, 민청학련 무죄'를 직접 카메라로 촬영하며 최근 무죄 판결에 대한 감동을 간직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와 관련 여씨는 "무죄 판결을 상징한다는 생각에 촬영했다. 블로그에 올리려고 한다"며 "32년 동안 유가족들이 그토록 듣고 싶어했던 말 아니냐"고 말했다. 한편 이날 추모제에는 김근태, 김원웅(이상 열린우리당), 권영길(민주노동당), 고진화(한나라당) 의원 등 정치인들과 함세웅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문규현 신부 등 민주화운동 인사들이 참석했다. 또한 가수 홍순관씨의 추모 노래, 민족춤패 '출'의 추모 공연 등 약 3시간 동안 다양한 행사가 진행됐으며 유족 및 참가자들이 연단에서 '아침이슬'을 함께 제창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날 추모제는 민주화 운동 관련 30개 단체로 구성된 인혁당 재건위 사건 민주열사 32주기 추모제 준비위원회가 주최했으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후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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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유유자적 낙산도령
글쓴이 : 낙산도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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