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현대사 재조명

[스크랩] 일제 하 밀양의 청년운동

감효전(甘曉典) 2012. 2. 6. 23:08

일제하 밀양의 청년운동

장병수

창신대 교수

 

이 글은 일제하 밀양지역의 청년운동의 배경이 된 1910년대의 민족운동, 1919년 3․13 만세운동을 거쳐 밀양의 청년들이 밀양청년회를 중심으로 민족과 지역을 위해 헌신한 활동사항을 밀양향토청년회에서 발간한 『밀양의 청년운동』 간행본을 참고로 하여 당시 동아일보․조선일보 등 밀양지역 청년회 관련기사를 토대로 정리 하였다. 본고에서는 내용의 사실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당시 신문에 게재된 기사들을 첨부하여 설명하기로 한다

 

- 글싣는 순서 -

 

시작하면서

제1장. 밀양 청년운동의 배경

1. 밀양의 민족해방운동의 태동

2. 밀양 3.13만세운동과 의열단

3. 일제하 밀양청년단체의 조직과 흐름

2장 밀양청년회의 청년운동

1. 밀양청년회의 창립과 조직

2. 밀양청년회의 변화

3. 지역봉사활동과 민족해방운동

제3장 신간회와 근우회 밀양지회

1. 신간회의 청년운동

2. 근우회의 청년운동

3. 신간회와 근우회 밀양지회의 지역활동과 대외활동

제4장 밀양의 청년운동의 의의

1. 밀양의 청년운동 요약

2. 밀양청년운동의 역사적 의의

맺음말

 

시작하면서,

몇해전 『밀양의 청년운동』이라는 책 발간을 위해 일제시대 각 신문사의 청년운동 관련 자료를 찿던중 동아일보의 1925년 3월 11일자 신문에서 『자유종』이란 사설을 발견했다. 이 글에서 당시 일제하의 민족적 착취와 압박속에서도 시대 청년들이 해야할 일들이 무엇인가? 에 대한 해답을 던져준 사설이라 생각되어 본고에서 소개 하고자 한다.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청년들이 현 시대를 각성하고 민족 중흥을 위해 청년들이 나서야 한다는 이러한 논조의 사설이 일제 강점기에 나왔다는 점도 놀라운 일이지만, 기회주의적 이권에 매달려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청년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며, 지역과 민족을 위한 청년운동의 방향과 정체성을 새삼 느끼게 된다.

<동아일보(1925.3.11), 자유종 사설>

청년아! 각성하자

시대는 갈수록 변하는것이요 변할수록 새광명이 보이나니 무슨 주의니 무슨 제도니 떠들며 암혹건곤에서 헤매이는 시대청년들아!! 너에게 일언을 뭇노니 너에게 무엇이 남에게 자랑이 되며 남에게 우열한 점이 있는가?

청년이라함은 무엇을 의미함이냐? 노도아니고 소도아닌 것이 곧 청년이 아니냐! 국가의 토대도 청년에 있다. 정치도 단체도 그렇다. 무엇에든지 청년이 없고는 모든 사업을 성취 할 수 없다(중략)....

 

청년제군아! 제군은 오늘날 우리의 처지와 환경을 잘 이해하는가?

오늘날 우리의 처지와 환경은 남달리 특수한 사정이 있어서 이중 삼중의 착취와 압박을 당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의 생활은 각일각으로 위기에 핍박하여가고 날과 달로 파멸의 길로 들어가서 불원한 장래에 너나 할것 없이 우리는 민족적으로 최종을 보고 말 것이다. 아! 슬프다 얼마나 공포스럽고 얼마나 전율할바냐(중략)....

어서 속히 한 덩어리로 뭉치고 합하여 대의로써 대사에 임하여 크게 싸우라!

 

미몽에서 벗어나 몽롱한 잠을 깨자! 그리하여 우리 민족만이 세계인류에게 행복낙원을 개척하여 줄 것이다.

아! 청년아! 대의공도를 위하여 사회민중을 위하여.... (양승환)

이 사설이 게재된 일제강점기 1920년대에는 3.1 만세운동 이후 시대적 추이로서 전국 각지에서는 청년단․청년구락부․청년회 등의 명칭을 사용한 많은 청년단체들이 생겨났다. 이들 단체들의 대부분은 지역계몽운동과 역량강화에 입각한 ‘문화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밀양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192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사회주의 등 신 사상이 보급되어 이념갈등의 양상도 보였지만 밀양에서도 노동․농민운동 등 대중운동이 활성화되어 각지의 청년단체들은 이른바 ‘혁신’을 내걸고 그 활동과 성격도 한층 명확하게 변모해 갔다.

 

당시 밀양 3.1만세운동 이후 밀양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전개한 사회계몽운동, 민족교육운동, 신간회와 근우회 운동, 농민운동 등 다양하게 전개된 밀양의 청년운동은 밀양 주민의 대중적 역량을 조직화할 수 있도록 하여 일제의 가혹한 식민통치 아래서도 밀양인들의 권익을 확립해 나갈 수 있도록 하였다. 이렇듯 밀양의 청년층은 일제라는 민족적 모순에 대한 자각으로 수많은 운동가를 양성하여 사회운동 발전의 토대가 되었으며 걸출한 독립운동가들을 수없이 많이 배출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의 시각은 잘못된 편견과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이해관계에 사로잡혀 있어, 당시 우리 밀양 청년운동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은 바로 주관적 설정에 의한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지 말고, 객관적 설정에 의한 역사적 고찰이 이루어 진다면 가능하리라 본다.

 

우리 밀양청년들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이국 만리 타향에서 자신의 희생을 무릅쓰고 항일투쟁에 참여한 우리의 독립운동가에 대한 평가를 이념에 얽매여 편향적인 관점에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지금의 상황이 나라를 잃은 그때의 상황이라 생각할 때, 과연 나 자신이 그 어려운 고통과 치욕스러움을 인내하면서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쉽게 판단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 글의 배경이 되는 당시의 밀양지역은 교통의 요충지로써 외부 문물 유입이 원활한 지역이며, 동시에 전통적으로 유림세력이 강한 지역이다. 따라서 일제와 대응하는 형태도 수구와 보수개혁으로 상이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상황은 일제하에서도 김원봉․황상규․김병환․김대지․윤세주 등 청년층의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하는가하면 박종흠 등 친일파도 득세한다. 해방 후에는 다시 반공의 구도로 대립하여 아직까지 밀양사회는 미묘하게 이러한 것들이 잔존하고 있다고 볼 수있다.

 

이 글은 밀양지역을 중심으로 청년운동의 배경이 된 1910년대의 민족교육운동과 밀양3․13 만세운동을 거쳐 지역사회 발전과 계몽을 위한 활동을 펼친 1920년대 밀양의 청년운동을 시대별로 다루고, 당시 여러 청년단체의 활동과 변천과정을 중점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그리고 1930년대 초까지의 청년운동은 지역내에서 또는 대외적으로 일어난 대표적 사건들을 중심으로 기술해 보고자 한다.

 

본 글에서는 이념이나 현실적 이해관계를 탈피하고 지역과 나라를 위해 힘써왔던 우리 선배청년들의 자치적 역량을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는 차원에서 접근되어지길 바라며, 밀양의 청년운동에 주축을 이룬 당시 청년단체들의 활약상을 고찰함으로써 현 청년단체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일제하 밀양의 청년운동에서 확립된 지역의 자치적 역량을 지방자치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까지 계승해 나가야 할 임무는 우리 모두에게 있으며, 무엇보다도 우리 지역발전과 겨레를 위해 자기희생을 아끼지 않았던 일제하 선배청년들의 영전에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다음호에서는 밀양청년운동의 배경이 된 사립동화학교와 밀양공립보통학교를 중심으로 한 민족교육운동과 이러한 교육하에 성장한 밀양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전개한 밀양3.13만세운동을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밀양사회단체와 명승지 소개, 동아일보.1926.8.8

출처 : 밀양 이야기(밀양향토사연구회)
글쓴이 : 우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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