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숙자 칼럼 12>
김좌진 장군의 딸 김순옥
독립운동가 김좌진은 드넓은 만주 벌판을 달리며, 청산리대첩 등으로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유명한 장군이다.
그는 생전에 두 번 결혼 했다. 열세 살 되던 해(1901년) 만주에서 자기보다 두 살 위인 오숙근과 결혼해 딸 옥남과 아들 경석을 낳았다. 그러나 아들은 나은 지 얼마 안 되어 죽고, 딸은 열여섯 살에 병으로 역시 죽었다. 그 후 부인 오 씨는 조선으로 돌아 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이 무렵, 김좌진은 서울에서 광복단 활동을 하던 중 일경의 추격을 받아 계동의 기생집에서 몸을 숨긴 적이 있다. 그곳에서 한동안 숨어 지내며 알게 된 김계월에게서 낳은 아들이‘장군의 아들' 김두한이다.
김좌진은 그 뒤 만주에서 1927년 김영숙과 재혼을 한다. 이듬해 6월 만삭의 몸으로 해림에서 동산시로 오던 김씨 부인은 산중에서 딸 강석을 낳자마자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다. 딸은 1백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살아있는 채로 발견되었다. 훗날 이 딸을 산조(山鳥)라고 부른 까닭은 산에서 낳았기 때문이다.
동냥젖으로 두서너 달 자라던 강석은 김좌진 장군의 뜻에 따라 어떤 한족에게 맡겨졌다. 그 뒤 김좌진 장군이 사망한 후 장군 생전에 독립운동을 함께 했던 김기철 노인이 쌀 두 마대를 주고서 강석을 겨우 찾을 수 있었다. 그는 강석을 친딸처럼 길렀다.
김 노인은 일본에서 대학을 나온 뒤 독립운동에 뛰어든 지식인이었다. 그는 강석을 "조(鳥)야, 조야…"라고 부르면서도 김좌진 장군의 딸이라는 사실을 숨겼다. 혹시나 장군의 딸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피해를 볼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김 노인은 강석을 데리고 해남촌의 깊은 산골로 이사를 가서 살았다. 해방 후에는 북쪽 연수현으로 다시 옮겼다. 강석은 이 무렵 산조라는 이름에서 순옥(順玉)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강석이 아홉 살 되던 해 소아마비의 일종인 병에 걸리자 김 노인은 사방에 수소문 해 일본에 건너가 치료를 받게 했다.‘김좌진 장군의 딸을 살리자’고 밝히자 조선과 동북 연해주 및 일본에 있는 사람들이 암암리에 돈을 모아 치료비를 대기도 했다.
양부는 세상을 떠나기 전 김강석을 불러놓고 독립군 사령관 백야 김좌진 장군의 딸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려준다. 강석이 14세 되던 해였다. 김 노인은 자신이 간직하고 있던 장군의 유품과 관련 서류 등을 모두 강석에게 전해 주었다.
양부가 세상을 떠난 뒤 강석은 마적의 후예라는 오해를 받고 감옥살이를 하는 등 어려움을 겪는다. 이때 조선족 청년 위정규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 이듬해 딸(홍련)을 낳았으나, 1951년 6·25 전쟁에 끌려간 남편마저 전사하고 말았다.
1952년 어린 딸의 손을 잡고 그 뒤 죽을 때까지 살았던 흑룡강성 목단강시로 이주했다. 그녀는 숱한 세월을 가난과 생명의 위협 속에서 살아왔다.
1930년 1월 29일 음력 설을 앞두고 김좌진 장군이 피살된 후 처음으로 조선인들은 만주 땅에 남아있는 장군의 딸 강석을 찾게 된다. 당시 김순옥은 장군이 정식으로 결혼해서 낳은 유일한 피붙이였다.
그 뒤 1995년 강석은 광복 50주년 기념행사 때 해외독립 유공자로 초청받아 우리나라에 왔다. 그러나 막상 정부는 아버지 묘소에 성묘조차 못하게 하고 출국시켰다. 해외 독립유공자 후손이라고 초청은 했으나, 장군의 딸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아버지 묘소에 엎드려 평생 흘린 눈물보다 더 많이 울어보고 싶었던 그녀는 슬픔과 눈물 속에 절망하고 만다. 그녀의 삶은 어쩌면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는 여인네의 삶과도 같았다. 한이 서린 아리랑 가락은 김강석 할머니의 삶을 그대로 노래한 것이 아닐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아리랑 고개는 열두나 고개/ 넘어올 적 넘어갈 적 눈물이 난다./
`장군의 딸' 김강석은 오랜 지병인 관절염과 유방암으로 투병생활을 했다. 결국 지난 2003년 9월 14일 75세의 나이로 아버지 백야 김좌진 장군이 순국한 흑룡강성 해림사에서 승용차로 30여 분 거리에 있는 목단강 자택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전숙자=완주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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