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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양정원의 교육활동 내용

감효전(甘曉典) 2012. 1. 30. 11:11

4-4 養正院의 기능

4-4-1 교육활동

1) 교육제도

◎ 學山은 養正院이 자리잡은 鳳崗里를 중심으로 會泉面 일대에서 300여 명이 찾아올 것으로 예상하고 그에 맞는 수업 체제를 갖추었다.

 

◎ 簡易學校처럼 1,2학년 기초과정을 두었다. 이를 마치고 계속 공부하기를 원  하는 학생은 다른 학교의 정규 3,4학년 과정에 진학할 수 있었고 養正院에서    더 공부를 하고자 하는 학생에게는 3학년 입학시험을 보게 하여 3,4학년 과정   을 이수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당시의 반의 구분은 초등반, 야간반, 진학반,(  급생반)이 있었는데 각 반은 전부 무료교육이었다.

 

◎ 학생의 입학 자격에는 제한을 두지 않았다. 즉 완전한 열린 학교이며 개방된  민족학교였다.

 

◎ 완전한 무상교육을 실시하였다고 증언되며, 책과 학용품은 모두 학교에서

제공하였다.

 

◎ 조선어와 역사를 가르쳤고 철저한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 공부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 받아준다는 열린 교육방침으로 특히

빈농자의 자녀, 만학자, 문맹인, 부녀자 등이 교육의 대상이 되었다.

 

2개의 교실로 1,2부 수업을 하였고 야학을 개설 운영하여 24시간 열려있는

학교로 운영하였다..

 

◎ 수업시간은 1,2학년 과정이 오전 9시부터 오후1시까지, 3,4학년 과정이

오전9시부터 오후2시까지였다.

 

◎ 오후 2시부터는 5,6학년 과정이 운영되었는데 이 반은 중학진학 대비반이었다 이를 통하여 당시의 재수생 및 중학교에 가고자 하는 학생들을 중점적으로 교육하였다.

 

◎ 양정원 사택에는 항상 7~8명의 학생들이 기숙하고 있었다. 이들은 하숙을 구하지 못하였거나 임시로 거처를 잡은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2) 교육내용

◎ 초등학교 과정에 필요한 것들, 즉 국어와 글짓기, 산술, 한자와 서예, 수신(修身)과 실습 등과 예체능 과목으로 음악 미술 체육이 포함됐던 것으로 증언되고 있다. 당시의 국어는 일본어인데 養正院에서는 오전에는 일본어를 가르치다가 오후엔 조선어를 가르쳤다.

 

◎ 계몽, 한학, 신문학을 가르쳤다

 

◎ 중등 반 과정이 있었는데 이 과정은 상급반, 가령 사범학교나 判任官 (公務員)시험준비를 하는 학생들을 따로 모아 공부를 시켰다. 이 과정을 수료하고 연희전문학교 경상과에 입학하였다고 보성군 웅치면 출신인 白炯敎(83/ 서울 합정  )씨가 증언하고 있으며 이 과정은 學山이 직접 교육하였다고 한다.

 

◎ 한글 및 역사교육은 초창기부터 조선어 교본을 가지고, 때로는 교재 없이 學山 이 칠판에 판서를 했다 지웠다 해가며 가르쳤고 한글노래도 가르쳤다

 

◎ 근면 자주(自主)정신을 교육했다.

 

◎ 기술 및 또 공작(工作) 과목을 가르쳤고 이론보다는 실용적인 교육을 실시하였다.

 

◎ 자주정신을 깨우치기 위하여 요일 별로 당번 조를 짜서 누에치기, 기왓장 찍어 내는 일, 와라지(日本식 슬리퍼)를 만드는 법 등을 가르쳐주었다.

 

◎ 학산은 양복차림에 짚신을 신고 운동장의 잡초를 뽑거나 돌맹이를 주웠다 이로  인하여 주위의 사람들이 rm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웃곤 하였는데 이는 그가 조선인임을 강조하며 은연중의 일본인들과의 차별을 강조한 행위였다고 증언된다.

출처 : 학산
글쓴이 : 윤영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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