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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 노동당

감효전(甘曉典) 2012. 1. 26. 13:12

1946년 11월 조선인민당·조선공산당·남조선신민당 3당이 합동하여 결성한 정당.

약칭인 남로당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46년 8월 조선인민당의 여운형(呂運亨)은 "조선 민족통일의 기초를 구축하고 민주진영의 주도체를 완성"하기 위해 남조선신민당과 조선공산당에 3당 합동을 제안했다. 그러나 합동과정에서 조선인민당 내의 48인파와 31인파, 남조선신민당 내의 간부파와 대회파, 조선공산당 내의 추진파와 반대파 등이 각각 찬성과 반대로 분열했다. 결국 박헌영(朴憲永) 계열이 중심이 되어 11월 23, 24일에 천도교의 한 분파인 시천교 교당에서 남조선노동당이 결성되고, 여운형·백남운(白南雲) 등은 사회노동당을 결성했다. 남로당은 각 지방대의원 508명 및 중앙대의원 628명이 참석하여 허헌(許憲)의 개회사에 이어 임원선출과 강령·규약 등을 통과시켰다. 허헌은 개회사에서 "근로인민의 역량을 결집하고 좌익진영의 통일을 강화하여 반동세력을 분쇄하고 조국의 민주독립을 전취(戰取)할 수 있는 강력한 정당을 창건할 것"을 역설했다.

1946년 9월 4일 3당합동준비위원 연석회의에서 발표한 남로당 강령을 보면 민주주의 자주독립국가 건설, 정권을 인민위원회로, 무상몰수·무상분배의 토지개혁, 8시간 노동제와 사회보장제 실시, 주요산업의 국유화, 언론·출판·집회·결사·시위·신앙의 자유, 20세 이상의 국민에게 선거권과 피선거권 부여, 남녀동등권, 초등의무교육제 실시, 진보적 세금제 실시, 민족군대 조직과 의무병제 실시, 평화애호국가와의 친선강화 등을 주장했다. 간부를 보면 위원장 허헌, 부위원장 박헌영·이기석(李基錫), 중앙위원 이승엽(李承燁)·김삼룡(金三龍)·이현상(李鉉相)·유영준(劉英俊) 등 총 29명, 감찰위원장 최원택(崔元澤) 등이었다. 중앙상무위원회의 각 부서로는 조직부·간부부·선전부·노동부·농민부·청년부·부녀부·구호부·재정부·협조부·문화부·조사부·총무부 등이 있었다. 남로당은 당시 세계적 조류인 전위정당의 대중정당으로의 전환추세와 북조선노동당의 창설에 맞추어 결성되었지만, 이미 1946년 9월 7일 박헌영 등 주요 좌익간부들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지고 좌익에 대한 탄압이 강화됨으로써 오히려 지하조직화해갔다. '9월 총파업'과 '10월대구폭동사건'을 주도해나가면서 남로당의 대중조직이 대부분 무너졌으며 일부는 무장유격투쟁으로 전환했다. 이는 1950년 6·25전쟁을 거치면서 완전히 붕괴되어갔다.→ 10월대구폭동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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