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하신 님께(증취객·贈醉客)’ - 이매창(李梅窓)
醉客執羅衫 (취객집나삼)
술 취하신 님 날 사정없이 끌어 당겨
16세기, 조선 중기를 살았던 이매창(李梅窓·1573~1610) 이매창은 율곡의 모친 신사임당(1504~51),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의 누이 허난설헌(1563~89)과 더불어 조선시대 최고의 여류시인으로 알려진 여성이다. 아버지 이탕종은 부안 권세있는 집안의 아전이었지만 어머니는 두고두고 ‘천한 몸(?)’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첩의 신분이었다. 때문에 매창 역시 첩의 딸이란 ‘서녀’의 신분을 평생동안 떼어낼 수가 없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창의 시는 그런 칙칙하고 눈물겨운 구석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여유를 가지고 있음은 물론 품격을 잃지 않은 채 오늘에도 널리 회자되고 있지 않는가. 우선 앞에 소개한 시 ‘취하신 님께’만 해도 그렇다. 당시의 혹독한 신분사회 속에서 기구한 운명으로 태어나 최하위의 계급인 기녀(妓女)로 살아가지만 그녀의 시는 오늘날 현대시인들도 가히 흉내낼 수 없는 높은 ‘품격과 여유’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특히 그 여유가 그렇다. 규방을 찾아든 님(손님)의 몸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라 짖궂게 굴다가 그만 그녀의 단 한 벌 밖에 없는 명주 저고리를 찢는 실수(?)를 범하였지만, 그러나 그 다음 대목을 보라. 매창은 넌지시 “명주 저고리 하나쯤이야 아까울 게 없습니다만/님이 주신 온정까지도 찢어질까 그게 두려워요.” 하는 시구는 누가 읽어도 탄복할 만큼의 절창이다.
그까짓 명주 저고리 하나쯤 찢어지는 게 무슨 대수이랴. 님이 주신 온정이 안 찢어지는 게 다행이 아니겠는가 하는 여유는 그야말로 ‘속마음과 사랑의 아름다움’ 그 극치를 보여준다. 사실이지 이렇도록 격조 높은 시를 노래한 시인을 나는 그렇게 많이 만난 본 적이 없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 또한 그렇듯이 오늘날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이매창이 노래한 그 마음의 여유를 너무 잊고 살아가고 있다. 배화교도(拜火敎徒)들이 불을 보면 어찌할 바를 모르듯이 돈과 물질만을 정신 없이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그래서 16세기 조선의 여류시인 이매창의 ‘취하신 님께’ 같은 시는 상당한 의미를 가진 메시지로 읽혀지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할 때 그녀의 시는 21세기인 지금도 유효하고 지금도 낡은 시로는 느껴지지 않는다.
|
조선 시대 대표적 여류시인 중에 규수시인으로는 허난설헌을 이야기하며 기녀시인으로는 황진이와 매창을 이야기한다.
이화우(梨花雨)흩 날 릴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이것은 이매창이 한양에서 부안에 놀러왔던 선비와 눈이 맞아 죽을 때까지 몸과 마음을 바쳐 서로를 사랑했던 연인 유희경을 그리워하며 읊은 대표적인 작품으로 이때 일반인들은 상상하기조차 하지 못 할 28세나 차이가 나는 사랑이었다.
유화홍염 잠시춘(柳花紅艶暫時春) 버들꽃 붉은 몸매도 잠시동안 봄이라서/고운 얼굴에 주름지면 고치기 어렵다오/선녀인들 독수공방 어찌 참으리/무산에 운우지정 자주 내리세
멋드러진 이 글은 촌은(村隱) 유희경이 변산 3절로 꼽히는 부안의 명기 이 매창과 한창 깨가 쏟아지는 호시절에 진정한 사랑을 실어 지어준 노래다.
이매창은 변산의 절경인 채석강과 이 고장시인 신석정과 더불어 부안 3절로 자랑하는 대표적인 여류 시인이다 개성의 명기하면 황진이를 말하고 부안에 명기하면 이 매창을 말한다 이 매창은 기생으로서 문필가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인으로 조선 선조6년에 관아의 아전인 이탕종이라는 사람의 딸로 태어났는데 계유년(癸酉年)에 태어났다고 하여 계생(癸生)계량이라 부르기도 하였으나 기생이 되면서 아호를 섬초(蟾初)라 했다가 스스로 매창이라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매창이 성장하여 자태와 몸매가 남다르게 아름다운데다 ■시■를 잘 짓고 노래를 잘하자 소문을 듣던 고을의 태수 서진사(徐進士)라는 사람이 태수(太守)의 권력을 앞세워 매창의 정조를 빼앗은 다음 곁에 두고 희희낙락 거리다가 서울로 발령이 나자 마지못하여 매창도 서울로 함께 따라 갔으나 무엇이 여의치 않았는지 얼마 되지 않아 부안으로 다시 내려와 이때부터 기생으로 변신한다 .
매창이 황진이처럼 풍류를 잘하게 된 동기는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처럼 집안이 가난하여 아버지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훈장 노릇을 할 때 이곳 저곳 서당을 따라 다니면서 귀동냥으로 배웠다 한다.
사람이 죽으면 살은 물이 되고 뼈는 흙이 되며 성질은 불이 되고 의식은 바람이 되고 결국 남는 것은 인연과 가치뿐이라는데 도덕이 무엇이고 타락이 무엇인지 모든 죄악은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 때문이다 아무렴 동서고금을 통하여 색욕이라는 욕심은 욕심이라기보다 하나의 본능이라고 보아야 옳을 것 같다.
매창은 천대받는 기생의 신분이었지만 물질의 풍요보다 정신적 가치를 귀중하게 여긴 시인으로 언행이 조신하고 정결했으며 정절이 굳은 모범적인 여성이었으나 38세의 젊은 나이에 병들어 죽었는데 병석에 누워 있을 때도 허균이 몸조리 잘하라는 위안의 편지를 보내는 등 각별하게 보살펴 준 사람으로 후세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널리알려져있는 인물은 아니나 황진이와 버금가는 여류시인임에는 틀림없다.
|
'관심사 >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閒行/백거이 (0) | 2012.01.16 |
---|---|
[스크랩] 對酒問月(달에게 묻노니)/李白 (0) | 2012.01.16 |
[스크랩] 飮酒14/도연명 (0) | 2012.01.16 |
병든 비구 - 영암석각 (靈巖石刻) (0) | 2012.01.16 |
[스크랩] 이옥봉의 詩 (0) | 2012.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