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현대 중국화가 유능창(劉凌滄)의 <장생전비서도(長生殿秘誓圖)> 성선(成扇) (1936年作)
七月七日長生殿 夜半無人私語時
在天願作比翼鳥 在地願爲連理枝
天長地久有時盡 此恨綿綿無絶期
(칠월칠일장생전 야반무인사어시
재천원작비익조 재지원위연리지
천장지구유시진 차한면면무절기)
7월 7일 장생전에서
아무도 없는 밤에 둘만이 속삭일 때에
하늘에서는 비익조(比翼鳥)가 되기를 원하고
땅에서는 연리지(連理枝)가 되기를 바랐네
높은 하늘 넓은 땅 다할 때가 있건만
이내 한은 끝도 없이 이어지네
☞ 백거이(白居易), <장한가(長恨歌)> 중에서
※ 청대(淸代) 화가 장운옥(張韻玉)의 <장생전도(長生殿圖)>
- 중국 역사상 4대 미인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양귀비(楊貴妃)의 본명은 옥환(玉環)이다. 원래 당(唐) 현종의 열여덟째 아들 수왕(壽王) 이모(李瑁)의 아내였다. 수왕 이모는 현종과 무혜비(武惠妃)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니 양귀비는 바로 현종의 며느리다.
현종은 옥환의 미모에 빠져 중신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그를 여도사(女道士)로 삼아 남궁에 거처하게 했다. 그리고 태진(太眞)이라는 호를 내려 남궁을 아예 태진궁(太眞宮)으로 개명해 버렸다. 남궁에 들어간 지 6년 뒤 태진은 귀비로 책봉되었으니 이때부터 역사에 양귀비로 등장한다.
옥환이 현종의 눈에 들어 남궁으로 거처를 옮길 때 그의 나이 22세, 현종은 56세였다. 그러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라는 '관계'도 문제가 아니었다.
옥환이 남궁으로 옮긴 후 두 사람은 급격히 가까워졌고 서로 떨어질 줄 몰랐다. 두 사람의 만남에 밤과 낮의 구별은 무의미했다. 옥환을 만난 이후 현종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 근현대 중국화가 장대천(張大千)의 <長生殿>
천보 10년(751) 칠월 칠석날.
현종은 화청궁에 거동하여 장생전(長生殿)에서 양귀비와 함께 노닐고 있었다. 밤이 깊어 하늘에는 은하수가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건만 웬일인지 칠석의 하늘을 쳐다보고 있던 양귀비는 갑자기 흐느껴 울기 시작하였다.
현종은 왜 우느냐고 달래듯 물었으나 양귀비는 그저 울음만을 계속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 했다. 이윽고 양귀비는 눈물을 닦으면서 띄엄띄엄 그의 심정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하늘에 반짝이는 견우성과 직녀성, 얼마나 아름다운 인연입니까. 저 부부의 지극한 사랑, 영원한 애정이 부럽습니다. 저 부부와 같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에도 나오지만 나이가 들면 '가을 부채'(秋扇)처럼 버림을 받는 여자의 허무함, 이런 일들을 생각하면 서글퍼 견딜 수가 없사옵니다…"
양귀비가 눈물을 흘리며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현종의 폐부를 아프게 찔렀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서로 손을 맞잡고 그들의 영원한 사랑을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두고 맹세했다.
"하늘에서는 비익조(比翼鳥)가 되고, 땅에서는 연리지(連理枝)가 되리라."
백거이(白居易)가 <장한가>에 담아 읊은 시(詩)의 내용은 바로 이 대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 청말근대 화가 손기서(孫基瑞)의 <칠석사맹(七夕私盟)> 성선(成扇)
※ 근현대 중국화가 서조(徐操)의 <칠석밀회(七夕密會)>
- 연리지(連理枝)는 두 나무의 가지(枝)가 서로 맞닿아 그 결(理)이 이어져(連) 마침내는 한 그루처럼 된 나무를 말한다. 반면 두 나무의 밑둥이 서로 엉겨붙어 한 그루처럼 된 나무가 있는 있으니 이를 연리목(連理木)이라 한다. 연리목은 연리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발견된다고 한다.
문헌에 보이는 연리지에 관련된 고사(故事)는 두 가지로 대별된다. 먼저 ≪수신기(搜神記)≫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춘추시대 송(宋)나라에 강왕(康王)이란 임금이 있었다. 그는 많은 여자를 거느리고 술로 세월을 보냈으며 자기에게 충언을 고하는 사람은 모두 죽였다. 신하 가운데 한빙(韓凭 또는 韓憑)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부인 하(何 또는 식息)씨는 절세미인이었다.
강왕은 한빙에게 죄를 씌워 변방으로 보내고 부인을 후궁으로 삼았다. 눈물로 세월을 보낸 하씨가 어느 날 강왕 몰래 남편에게 짤막한 편지 한 장을 보냈다.
其雨淫淫 河大水深 日出當心
(기우음음 하대수심 일출당심)
"비는 그칠줄 모르고 강엔 큰물이 흐르니 날이 개는 대로 당신을 맞으리다"
※ 근현대 중국화가 반지운(潘志雲)의 <장생전야(長生殿夜)> 성선(成扇)
그러나 이 편지는 소하(蘇賀)라는 간신에 의해 "당신을 사모하는 정은 끝이 없으나 방해하는 사람들이 많아 만날 수가 없으니 죽고 싶을 뿐"이라고 해석돼 강왕의 손에 들어갔다.
그런저런 일로 해서 한빙은 자살을 했고 하씨도 남편과 같이 묻어 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따라 죽고 말았다. 이에 화가 치민 강왕은 그들을 각각 따로 묻고서 이렇게 일갈했다.
"정말 너희들이 그토록 사랑한다면 시신이나마 너희들 힘으로 한번 합쳐보아라." 그러자 그만 이상하게도 하룻밤 사이에 두 무덤에서 나무가 자라나 서로 얽히고 설키더니 이윽고 한 그루의 아름드리 나무가 되었다.
나무 위에는 한 쌍의 새(원앙 鴛鴦)가 앉아 서로 목을 안고 슬피 울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사람들은 이 나무에 깃들인 한 쌍의 새를 한빙 부부의 넋이라 여겼다.
이를 본 송나라 사람들은 함께 슬퍼하며 이 나무를 상사나무(相思樹 Acacia confusa Merr.)라 불렀다. "서로 그리워한다"는 뜻의 '상사(相思)'란 말도 여기에서 나왔다(宋人哀之 遂號其木曰 相思樹 想思之名起於此也)고 한다.
여기에 나오는 '상사수'가 바로 '연리지', '연리목'에 해당할 것이다. 죽음조차도 두 사람을 갈라놓을 수 없었던 애절한 사랑의 전설이 바로 '연리지'라는 나무 속에 형상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 근현대 중국화가 임솔영(任率英)의 <장생전(長生殿)>
한편 ≪후한서(後漢書)≫ <채옹(蔡邕)>전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온다.
"채옹은 어머니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다가 돌아가시자 무덤 곁에 초막을 짓고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했다.
얼마 후 채옹의 방 앞에 두 그루의 나무가 서로 마주 보면서 자라나더니 차츰 두 나무는 서로의 가지가 맞붙어 마침내 이어져 연리지(連理枝)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채옹의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와 자식이 한 몸이 된 것이라고 칭송해 마지 않았다. 이 때부터 연리지는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을 나타내는 효(孝)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이처럼 연리지는 자식의 부모에 대한 효성을 의미하기도 하고, 남녀 사이의 변치 않는 사랑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연리지가 있는 고을에선 효자가 많이 나고 이혼하는 가정이 거의 없다고 한다.
唐代 시인 백거이는 현종(玄宗)과 양귀비(楊貴妃)의 로맨스를 <장한가(長恨歌)>라는 시에 담아 읊으면서 연리지(連理枝)와 함께 비익조(比翼鳥)를 등장시키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비익조'(比翼鳥)는 눈과 날개가 하나씩만 있어 두 마리가 서로 나란히 해야 비로소 날 수 있다고 하는 전설적인 새[≪이아(爾雅)≫ <석지(釋地)]로 연리지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당(唐)나라 초기 사걸(四傑)의 하나로 꼽혔던 노조린(盧照隣)의 시에 등장하는 전설상의 물고기 비목(比目)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 청대(淸代) 화가 우지정(禹之鼎)의 <장한가시의(長恨歌詩意)>
중국의 전설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동쪽 바다에 비목어(比目魚)가 살고 남쪽 땅에 비익조(比翼鳥)가 산다. 비목어는 눈이 한 쪽에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두 마리가 좌우로 달라붙어야 비로소 헤엄을 칠 수가 있다. 비익조는 눈도 날개도 한쪽에만 있어 암수가 좌우 일체가 되어야 비로소 날 수 있다.
그렇다면 연리지(또는 연리목)와 비목어는 언제 나타나는 것일까.
후한(後漢) 때 재야 지식인이었던 무량(武梁)은 자신이 세운 무량사(武梁祠) 천정에 "나무가 서로 얽히는 연리목(連理木)은 왕의 덕이 윤택하고, 팔방이 하나의 가족으로 합쳐졌을 때 나타난다"(木連理 王者德治 八方爲一家 則連理生)고 새겨놓고 있다.
또 천장의 새겨진 글과 그림에 대한 설명을 붙인 ≪서도(瑞圖)≫라는 책에서 "왕의 밝은 덕이 멀리 그리고 깊숙이 미칠 때 서로 눈이 붙어 있는 비목어가 보인다"(王者明德幽遠 則比目魚見)고 밝히고 있다.
다소 다른 얘기가 되겠지만 암수가 하나가 되어야 비로소 구실을 하는 동물로 낭패(狼狽)라는 것도 있다. 뒷다리가 짧은 이리가 낭(狼)이고, 앞다리가 짧은 이리가 패(狽)라는 설명도 있다.
아무튼 어느 한 쪽이 쓰러지거나 상하게 되면 둘 다 위험에 빠지게 되는 동물이 낭패다. 흔히 "낭패났다"든가, "낭패를 봤다"고 하는 말이 여기에서 유래한다.
※ 근현대 중국화가 임솔영(任率英)의 <장생전사어시(長生殿私語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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