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겸재(謙齋) 정선(鄭敾)의 <심화춘감(尋花春感)>. 일명 <취주취화(醉酒醉花)>로 불리는 이 그림은 봄 산에 취흥이 도도한 고사(高士)가 꽃을 찾는 모습을 담고 있다. 오릉중자(於陵仲子)의 고사를 주제로 그린 것이다.
夫子左琴右書 樂在其中矣
結駟連騎 所安不過容膝 食方丈於前 所甘不過一肉
今以容膝之安 一肉之味 而懷楚國之憂
亂世多害 恐先生不保命也
(부자좌금우서 낙재기중의
결사연기 소안불과용슬 식방장어전 소감불과일육
금이용슬지안 일육지미 이회초국지우
난세다해 공선생불보명야)
당신 왼쪽에는 거문고가 있고 오른쪽에는 책이 있으니
즐거움은 그 가운데에 있습니다
성대한 수레를 탄다하더라도
편안한 것은 두 무릎을 들여놓을 공간에 불과하고
앞에 진수성찬을 늘어놓고 먹는다하더라도
맛있는 것은 고기 한 점에 불과합니다
지금 무릎을 들여놓을 만한 공간의 편안함과
한 점의 고기 맛 때문에
초나라의 근심을 떠안게 된다면
어지러운 세상에는 해로움이 많은지라
당신이 목숨을 보존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 진중자(陳仲子)는 전국시대 제(齊)나라 사람이다. 그는 자기 형 진대(陳戴)의 녹봉이 만 종(鍾)에 이르렀으나 의롭지 못하다 하여 먹지 않았다.
또 형의 집이 의롭지 않다 여겨 거처하지 않았다. 결국 부모형제를 떠나 초(楚)나라 오릉(於陵)에 가서 살면서 스스로 오릉중자(於陵仲子)라 불렀다.
빈궁했지만 구차하게 구하지 않았고, 의롭지 않은 음식은 먹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신발을 짰고, 부인은 삼실을 자아 입을 것, 먹을 것과 바꾸었다.
초나라 왕이 그가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재상으로 삼고자 사신을 보내 황금 100일(鎰: 1鎰은 24냥)을 전해왔다.
진중자는 부인에게 "오늘 재상이 되면 내일 성대한 수레를 타고, 한 상 가득 진수성찬을 늘어놓고 먹을텐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진중자의 물음에 대한 부인의 대답이 위의 글이다.
※ 청대(淸代) 화가 신라산인(新羅山人) 화암(華嵒)의 <진중자고실(陳仲子故實)>
※ 於陵(오릉): 지금의 산동(山東)성 장양(長陽)현. 於는 지명이나 감탄사로 쓰일 때 '오'로 읽는다.
※ 結駟連騎: 結連駟騎와 같다. 훌륭한 수레에 네 필(匹)의 준마를 연결하다. 즉 화려하고 성대한 행차, 또는 부귀영화를 뜻한다.
※ 食方丈: 사방 1장(丈)이나 되는 식탁에 음식을 차려놓고 먹다. 곧 진수성찬(珍羞盛饌)을 먹는다는 뜻.
※ 청말근대 화가 심심해·왕곤(沈心海 汪琨)의 <금서반유(琴書伴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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