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송(北宋) 화가 이공린(李公麟)의 <단하방방거사(丹霞訪龐居士)>
단하천연(丹霞天然, 739-824)은 당(唐)나라 때의 선승으로 석두희천(石頭希天)의 법사(法嗣)다. 그는 평범하지 않은 삶의 궤적과 기행(奇行), 독특한 행각으로 불법(佛法)을 펼친 고승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일찍이 그가 낙양(洛陽) 동쪽 혜림사(慧林寺)에서 하룻밤을 묵을 때다. 마침 그 날은 날씨가 몹시 춥고 눈까지 분분히 내렸다. 그는 법당의 목불(木佛)을 꺼내 쪼갠 뒤 불을 지펴 몸을 녹였다. 이에 절 안팎이 발칵 뒤집혔다.
연락을 받은 원주(院主)가 황급히 달려와 "어쩌자고 목불을 태웠소"(爲何燒我木佛) 하고 꾸짖었다. 선사가 작대기로 타고 있는 숯 덩이를 뒤적이며 "나는 부처님을 태워서 사리(舍利)를 얻으려 하오"(吾燒取舍利) 했다.
원주가 "목불인데 어찌 사리가 있겠는가"(木佛那有舍利) 하고 힐난했다. 선사는 "사리가 안 나올 바에야 나무토막이지 무슨 부처이겠는가"(旣無舍利) 라며 "나머지 두 목불도 마저 태워야겠다"(再取兩尊燒之)고 했다.
이 이야기(丹霞燒佛)는 나중에 선가의 공안(公案)이 되었고, 참선수행하는 학인들의 상량(商量)·참구(參究)하는 화두가 되었다.
※ 근현대 중국화가 사치류(謝稚柳)의 <단하용취도(丹霞聳翠圖)> 성선(成扇)
선사는 만년에 등주(鄧州) 단하산(丹霞山)에서 머물다가 세수 86세에 입적했다. 그는 이승과 이별하는 마지막 순간에도 기행(奇行)을 멈추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문인(門人)들에게 "내 이제 떠나려 한다"고 했다. 목욕을 하고, 갓을 쓰고 지팡이를 들고, 신을 신더니 한 발을 떼었다. 그 발이 미처 땅에 닿기 전에 이승을 하직했다(乃戴笠策杖垂履一足未及地而化). ≪송전등록(宋傳燈錄)≫(11), ≪조당집(祖堂集)≫(4), ≪전등록(傳燈錄)≫(14) 등에 이야기가 전해온다.
※ 원(元)나라 화승(畵僧) 인타라(因陀羅)의 <단하소불도(丹霞燒佛圖)>
※ 근현대 중국화가 오정산(吳靜山)의 <단하산색(丹霞山色)> (1981年作)
단하소불(丹霞燒佛)의 끝자락에는 늘 중세 일본에서 벌어졌던 후미에(踏繪) 사화(史話)가 따라붙는다.
후미에(踏繪)란 기독교(가톨릭) 신자(기리시탄 吉利支丹, 切支丹)를 색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예수나 마리아의 초상이 새겨진 동판(銅版)을 사람들로 하여금 밟고 지나가게 한 것을 말한다. 기독교 신자라면 아무래도 동판을 밟고 지나가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얘기는 임진왜란 직전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각지에서 할거하던 군웅들을 제압하고 천하를 독패(獨覇)하려는 야심을 불태우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큐슈(九州) 원정길에 올랐을 때다. 그는 한동안 큐슈의 영주인 아리마의 영내에 머물렀다. 그리고 밤마다 현지의 미녀들을 골라 자신의 수청을 들게 했다.
그런데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뽑혀온 미인들이 하나같이 정결(貞潔)을 지키겠다며 수청을 거부하고 자결해버린 것이다. 봉건시대인 당시 일본의 관습과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황당하고 기막힌 일을 당한 도요토미는 즉시 내막을 조사토록 했다. 큐슈 일대가 이미 기독교의 영향권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 미녀들은 기독교 신자로서 종교적 순결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도 초개같이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도요토미는 즉각 일체의 기독교 전도를 금지시키고, 기독교 선교사들을 모두 추방하며, 기독교의 자산을 몰수하는 조치를 내렸다. 일본에서 기독교 탄압과 박해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후미에(踏繪)는 기독교 박해의 긴 여정 속에서 하나의 정점을 이룬 사건이다.
나가사키(長崎)를 시작으로 각지의 주민들이 애매하게 끌려나와 동판 위를 밟고 지나가야 하는 시험대에 올랐다. 동판을 밟고 지나가는 사람은 그냥 통과시키고, 밟지 않고 피하거나 거부한 사람은 현장에서 가차없이 목을 벴다.
눈앞에서 멀쩡한 사람이 칼을 맞고 쓰러지는 참혹한 광경이 곳곳에서 벌어졌지만 기독교 신자들은 기꺼이 목을 내밀었다. 이리하여 무려 28만여 명이나 되는 사람이 생떼 같은 목숨을 잃었다고 하니 그 참상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 후미에(踏繪) 광경을 그린 그림(왼쪽)과 실제 후미에 때 쓰였던 성화 동판(銅版).
단하소불(丹霞燒佛)과 후미에(踏繪).
이 두 사건은 묘한 대비를 이루며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두 사건이 불교와 기독교의 본질을 전적으로 대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각각 불교와 기독교가 지향하는 것이 무엇이며, 또 그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지를 일깨워주는 의미 있는 단서로서 손색이 없다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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