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사/고서화(古書畵)

[스크랩] 묵포도도(墨葡萄圖)

감효전(甘曉典) 2012. 1. 12. 12:14

※ 명대(明代) 문인화가 서위(徐渭)의 <묵포도도(墨葡萄圖)>

 

半生落魄已成翁  獨立書齋嘯晩風
筆底明珠無處賣  閒抛閒擲野藤中
(반생낙탁이성옹 독립서재소만풍
 필저명주무처매 한포한척야등중)


불우한 반생 끝에 이미 늙은이 되어
서재에 홀로 서서 저녁 풍경 읊조리네
그려 놓은 밝은 구슬 팔 곳이 없어
심심하여 덤불 속에 던져버렸다네


☞ 서위(徐渭), <묵포도도(墨葡萄圖)> 제시(題詩)


- 서위(徐渭, 1521∼1593)는 절강(浙江) 산양(山陽, 지금의 紹興) 출신. 자는 문청(文淸, 나중에 文長으로 개칭). 호(號)는 청등도사(靑藤道士)·청등노인(靑藤老人)·천지산인(天池山人)·전단수(田丹水)·천지생(天池生)·천지어은(天池漁隱)·금회산인(金回山人)·산양포(山陽布衣)·전수월(田水月) 등 여러 가지를 사용했다.


그의 반평생은 시에도 나오는 것처럼 낙탁(落魄)한 삶의 연속이었다. 절민총독부(浙閩總督府) 호종헌(胡宗憲)의 막료가 되어 왜구(倭寇)를 토벌하는데 공을 세웠다. 그러나 호종헌(胡宗憲)의 다른 사건에 연루돼 투옥되었고, 정신이상 상태에서 아홉 번 자살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이런 와중에 정신이상이 악화되면서 의처증이 발동해 아내를 살해함으로써 7년 동안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만년에는 10여 년간 곡기(穀氣)를 끊고 개하고만 살았다고 하니 참으로 비참한 인생역정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작품과 관련하여 "서(書)가 첫째요, 시(詩)가 그 다음이며, 문(文)이 셋째, 그림이 넷째"(吾書第一, 詩二, 文三, 畵四)라 하였다 한다. 그는 독특한 화법으로 일가를 이뤄 '청등화파(靑藤畵派)'라는 일파를 형성했다.

 

훗날 정섭(鄭燮)과 제백석(齊白石)이 그를 흠모하여 인장에 '청등 문하의 주구'(靑藤門下走狗)라고 새긴 일은 유명한 얘기로 전해온다.

 

※ 서위(徐渭)의 <송서포도(松鼠葡萄)>

 

※ 서위(徐渭)의 <포도(葡萄)>

 

출처 : 청경우독(晴耕雨讀)
글쓴이 : 경화수월鏡花水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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