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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만리건곤일국기(萬里乾坤一局棋)

감효전(甘曉典) 2012. 1. 12. 12:00

天下叢林飯似山  鉢盂到處任君餐
黃金白璧非爲貴  惟有袈裟被最難 
朕乃大地山河主  憂國憂民事轉煩
百年三萬六千日  不及僧家半日閒 
悔恨當初一念差  黃袍換却紫袈裟
我本西方一衲子  緣何流落帝王家
未生之前誰是我  我生之後我是誰
長大成人裳是我  合眼朦朧又是誰 
百年世事三更夢  萬里乾坤一局棋
禹疏九州湯伐桀  秦呑六國漢登基 
兒孫自有兒孫福  不爲兒孫作馬牛
古來多少英雄漢  南北東西臥土泥 
來時歡喜去時悲  空在人間走一回
不如不來亦不去  也無歡喜也無悲 
每日淸閑自己知  紅塵世界苦相離
口中吃得淸和味  身上願被白衲衣 
四海五湖爲上客  逍遙佛殿任君棲
莫道出家容易得  昔年累代重根基 
十八年來不自由  山河大戰幾時休
我今撒手歸山去  那管千愁與萬愁

(천하총림반사산 발우도처임군찬
 황금백벽비위귀 유유가사피최난 
 짐내대지산하주 우국우민사전번
 백년삼만육천일 불급승가반일한 
 회한당초일념차 황포환각자가사
 아본서방일납자 연하유락제왕가
 미생지전수시아 아생지후아시수
 장대성인상시아 합안몽롱우시수 
 백년세사삼경몽 만리건곤일국기
 우소구주탕벌걸 진탄육국한등기 
 아손자유아손복 불위아손작마우
 고래다소영웅한 남북동서와토니 
 내시환희거시비 공재인간주일회
 불여불래역불거 야무환희야무비 
 매일청한자기지 홍진세계고상리
 구중흘득청화미 신상원피백납의 
 사해오호위상객 소요불전임군서
 막도출가용이득 석년루대중근기 
 십팔년래부자유 산하대전기시휴
 아금살수귀산거 나관천수여만수) 

 

곳곳이 총림이요 쌓인 것이 밥이어니
대장부 어디간들 밥 세 그릇 걱정하랴
황금과 백옥만이 귀한 줄을 아지 마소
가사 옷 얻어 입기 무엇보다 어려워라
이내 몸 중원천하 임금 노릇하건마는
나라와 백성 걱정 마음 더욱 시끄러워
인간의 백년 살이 삼만 육천 날이란 것
풍진 떠난 명산대찰 한 나절에 미칠 손가
당초에 부질없는 한 생각의 잘못으로
가사 장삼 벗어 치우고 곤룡포를 감게 됐네
이 몸을 알고 보면 서천축 스님인데
무엇을 인연하여 제왕가에 떨어졌나
이 몸이 나기 전에 그 무엇이 내 몸이며
세상에 태어난 뒤 내가 과연 뉘이런가
자라나 사람 노릇 잠깐 동안 내라더니
눈 한 번 감은 뒤에 내가 또한 뉘이런가
백년의 세상일은 하룻밤의 꿈속이요
만리의 이 강산은 한판 노름 바둑이라
우(禹)임금 구주 긋고 탕(湯) 임금 걸(桀)을 치며
진시황 육국 먹고 한고조(漢高祖) 새 터 닦았네
자손들은 제 스스로 제 살 복을 타고났으니
자손을 위한다고 마소 노릇 그만 하소
수 천년 역사 위에 많고 적은 영웅들이
동서남북 사방에 한줌 흙으로 누워 있네
올 적에는 기뻐하고 갈 적에는 슬퍼하니
속없이 인간세에 와서 한 바퀴를 돌단말가
애당초 오지 않았으면 갈일 또한 없을 것을
기쁨이 없으려니 슬픔인들 있을 손가
나날이 한가로운 내 스스로 알 것이라
이 풍진 세상 속에 온갖 고통 여의고
입으로 맛들임은 시원한 선열미(禪悅味)요
몸 위에 입는 것은 누더기 한 벌 원이로다
사해와 오호(五湖)에서 자유로운 길손 되어
부처님 도량 안에 마음대로 노닐세라
세속을 떠나는 일 쉽다 말을 하지 마소
숙세(宿世)에 쌓아 놓은 선근(善根)없인 아니 되네
18년 지나간 일 자유라곤 없었노라
강산을 뺏으려고 몇 번이나 싸웠던가
내 이제 손을 털고 산 속으로 돌아가니
천만 가지 근심 걱정 내 아랑곳 할 것 없네 

 

☞ 청세조(清世祖) 순치황제(順治皇帝), <찬승시(讚僧詩)>/<출가시(出家詩)>

 

 ※ 명(明)나라 때 그려진 작가미상의 그림 <불문도(佛門圖)>
 

※ 이 시는 순치(順治) 황제가 어느 날 옥림국사(玉琳國師)와 만나 그로부터 ≪능엄경(楞嚴經)≫ 가운데 칠처징심(七處徵心)의 요체를 듣고 지은 찬승시(讚僧詩), 또는 <출가시(出家詩)>라 한다.

 

순치(順治)는 그의 연호(年號)이며, 묘호(廟號)는 세조(世祖)다. 이름은 애신각라 복림(愛新覺羅 福臨). 1644년 대청(大淸)을 세우고 북경(北京)에 도읍을 정했다.

 

재위는 18년. 전반기 7년은 숙부인 예친왕 도르곤(多爾袞)이 섭정을 하며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했으므로 그의 실제 통치기간은 10여 년에 불과하다. 그의 시대에 청(淸) 제국의 기틀을 닦았다. 그것이 다음 치세인 강희성세(康熙盛世)의 초석이 되었으며, 나아가 청조(淸朝) 268년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는 이 시에서 자신이 본디 서방(인도)의 한 수행납자였는데 무슨 인연으로 제왕의 집에 태어났느냐고 자문하고 있다. 또 18년 왕 노릇이 너무 힘들었다면서 이제 손을 털고 산으로 돌아가니 천만 가지 근심걱정 무슨 관계 있을소냐며 홀가분한 심사를 토로하고 있다.

출처 : 청경우독(晴耕雨讀)
글쓴이 : 경화수월鏡花水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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