楊柳絲絲弄輕柔 煙縷織成愁
海棠未雨 梨花先雪 一半春休
而今往事難重省 歸夢繞秦樓
相思只在 丁香枝上 豆蔻梢頭
(양류사사농경유 연루직성수
해당미우 이화선설 일반춘휴
이금왕사난중성 귀몽요진루
상사지재 정향지상 두관초두)
버들가지 하늘하늘 가볍게 휘날리는데
뿌연 안개 실타래처럼 피어올라 수심의 비단 짜는구나
해당화엔 아직 비 내리지 않았는데 배꽃에 먼저 눈이라니
봄도 벌써 반이 지났구나
이제 지난 일은 다시 생각하기 어려운 것
꿈속의 혼이라도 옛 진루 휘감아 맴돌거나
상사의 정 아직 남았거늘
정향의 가지 위인가
두구나무 끝이런가
☞ 왕원택(王元澤), <안아미(眼兒媚)>
※ 현대 중국화가 소옥전(蕭玉田)의 <납촉유심환석별(蠟燭有心還惜別)>
※ 秦樓: 춘추시대 진(秦)나라 목공(穆公)이 딸 농옥(弄玉)과 그의 남편 소사(蕭史)를 위해 지어준 누각. 소사(蕭史)는 피리를 잘 불어 봉황을 울렸다고 하며, 농옥이 소사에게 시집 가 피리 부는 것을 배운 뒤 봉황을 울리게 했다 한다. 두 사람은 10여 년을 함께 살다가 각각 봉황과 용을 타고 승천했다 한다.
※ 왕원택은 송나라의 유명한 개혁 정치가 왕안석(王安石)의 아들. 원택은 字이고 이름은 왕방(王雱). 그는 자태가 매우 곱고 총명한 방적(龐荻)이라는 여인을 아내로 맞아 결혼했다. 그러나 하늘의 시샘인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폐결핵의 일종인 채병(瘵病)에 걸려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영위하지 못한 채 떨어져 살아야 했다.
과부나 다름없는 며느리의 딱한 처지를 보다 못한 시아버지 왕안석이 며느리를 개가(改嫁)시키기로 했다.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파격적인 조치였다. 지아비인 원택도 고민 끝에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아내의 개가 상대는 신종 임금의 동생이자 원택의 친구인 창왕(昌王) 조호(趙顥).
이 사(詞)는 원택이 아내의 결혼식을 하루 앞두고 지어 아내에게 보낸 것이라 한다. 그러니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 그는 아내가 재가(再嫁)한 지 3년이 못되어 이승을 하직했다. 향년 33세.
※ 명대(明代) 화가 구영(仇英)의 <취소인봉도(吹簫引鳳圖)>
'관심사 > 고서화(古書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우애골여철(尤愛骨如鐵) (0) | 2012.01.12 |
---|---|
[스크랩] 복산자(卜算子) (0) | 2012.01.12 |
[스크랩] 유마힐경변(維摩詰經變) (0) | 2012.01.12 |
[스크랩] 도역수(渡易水) (0) | 2012.01.12 |
[스크랩] 심안시역과(心安時亦過) (0) | 2012.0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