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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예림서원, 점필재 문집 책판 및 이존록

감효전(甘曉典) 2012. 1. 8. 20:08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9호 "예림서원(禮林書院)"은 경남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이 자리하고 있는데, 김종직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위하여 지은 서원으로 조선 명종 22년(1567년)에 짓고 위패를 모셨다. 임진왜란으로 불탄 것을 선조 39년(1606년)에 다시 지었다. 인조 12년(1634년)에는 이름을 예림서원으로 바꾸고, 박한주와 신계성을 더하여 모셨다. 숙종 6년(1680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었다. 현종 11년(1670년)에는 사액을 받아, 나라에서 공인과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 고종(재위 1863∼1907년) 때 서원철폐령으로 헐리었다가 고종 11년(1874년)에 강당을 짓고 예림재라 하였으며, 다시 예림서원으로 복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의 구조는 교육공간은 앞에, 제사공간은 뒤에 위치한 전학후묘의 배치를 하였다. 사당인 육덕사와 유생들의 모임 및 학문을 닦는 곳인 강당, 생활공간인 돈선재와 직방재, 그리고 전사청, 독서루 등이 남아있다. 김종직의 저서인 『이존록』과 『점필재문집』의 목판이 보관되어 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75호 "점필재 문집 책판 및 이존록(佔畢齋文集冊板및彛尊錄)"의『점필재문집』은 조선시대 영남사림학파의 영수인 김종직(1431∼1492년)의 시문집 책판이다. 김종직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1459년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제학, 공조 ·이조참판 등 여러 벼슬을 거쳤다. 문장과 역사에 뛰어나 조선시대 도학(道學)의 정수를 이어가는 중추적 구실을 하였다.

 

 

이 문집은 성종 24년(1493년)에 김종직의 조카 장중진이 최초에 작성된 원고를 모아 김종직의 문도였던 조위가 편집을 하였으나, 미처 간행하지 못하고 무오사화로 인해 모두 소실되고 말았다. 다시 장중진이 그 나머지 글을 모아 중종 12년(1517년)에 선산에서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점필재문집』은 시집이 23권, 문집 2권으로 총 25권이며, 연보, 무오사적, 문인록 등이 부록으로 붙어 있다. 이 책판은 1789년 이관하여 현재 예림서원에 소장되고 있다.

『이존록』은 김종직의 부친 김숙자의 가계도인 보도(譜圖)와 기년, 그리고 친구들이 함께 놀았던 일들과 제례의식, 가훈 가운데 본받을 만한 것을 싣고, 다음 김종직의 외조부의 행장을 덧붙인 가족사적 내용을 지닌 책이다. 연산군 3년(1497년)에 발간된 것은 임진왜란 때 불타서 없어지고, 그 이후 다시 예림서원에서 거듭 간행한 것이다. 상하 2권으로 되어 있다.(자료출처 : 문화재청)

 

 

 

예림서원의 외삼문에 해당하는 독서루(讀書樓)와 "讀書樓" 편액(扁額)

 

 

 

 

옛서적을 열람하는 집이라는 뜻의 열고각(閱古閣)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집이라는 뜻의 몽양재(蒙養齋)

 

 

돈선재(敦善齋)

 

 

직방재(直方齋)

 

 

 

예림서원의 교육공간에 해당하는 구영당(求盈堂)과 현판이며, 求盈은 가득찬 것, 즉 완성됨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구영당 건물에 걸려 있는 "禮林書院(예림서원)" 현판이다. 좌측의 관지(款識)를 보면 "崇禎後己酉 賜額(숭정후기유 사액)"이라고 적혀 있는데, 숭정(崇禎)은 중국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의종(毅宗) 장렬제(莊烈帝) 때의 연호로 서기로는 1628년에서 1644년까지이다. 즉 이 현판은 헌종 10년(1669년)에 사액되었다.

 

 

구영당 건물에 걸려 있는 또 다른 "禮林書院(예림서원)" 현판이며, 乙卯三月上浣(을묘삼월상완)에 裵吉基(배길기)가 쓴 글이다.

 

 

구영당 건물에 걸려 있는 "日新齋" 현판

 

 

구영당에는 또 다른 현판이 눈길을 끈다. "克遵條約旡生過失(극준조약무생과실)"이라고 적힌 여덟자의 이 글은 밀양부사 이몽억이 쓴 것인데, 이치와 규약을 지극히 잘 따르면 잘못이 생겨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됨으로 결국 이 글은 김종직 선생을 위해 쓴 것이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75호 "점필재 문집 책판 및 이존록(佔畢齋 文集 冊板 및 彛尊錄)"

 

내삼문인 육덕사와 사당은 잠겨있어 사진을 찍어 오진 못했지만 예림서원은 앞에서 부터 독서루와 구영당, 육덕사(育德祠)를 일직선으로 배치하여, 앞쪽에는 교육을 하는 영역으로, 뒤쪽에는 제례의 영역을 두어 전학후묘(前學後廟)의 건물배치 양식을 하고 있는 서원이다.

출처 : 무지개빛 사찰이야기
글쓴이 : 무지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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