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준비 저장文集/甘泳生 文集 ·65年만의 歸家

너는 왕대나무의 자손임을 절대 잊지말거라.

감효전(甘曉典) 2016. 7. 17. 19:34

 

 

 

 

 

 

 

 

 

 

 

 

 

 

 

 

 

 

너는 왕대나무의 자손임을 절대 잊지말거라.

 

 

의병 독립사를 연구하시는 역사학자인 이태룡 선생은 나를 보며 한말 의병과 3.1혁명에 참여했던 여성중에서 나와 운명과 열정을 닮기로는 동풍신이 가장 많이 닮았고 의기로는 약산 김원봉 장군의 부인 박차정과 닮았다고 하는데 그 분의 오래된 사진과 자료를 쭈욱 자세히 열람해보면서 왠지 나와 닮았다는 생각은 스스로도 하였다.

 

그 분이 왠지 전혀 낯설지가 않았고 밀양 내일동에 있는 그 묘소의 위치도 알아놨고 아직 직접 가보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초라하게 방치되어 있는 그 분의 봉분사진을 보며 가슴이 아리고 묘한 기분도 들면서 그곳에 언젠가 꼭 찾아가서 잔을 치고 절을 하고 싶었다.

 

부인의 유골을 이장할 때 그곳에 할아버지도 분명 가셨을 거라 생각되는게 그 시기가 할아버지가 와세다 정치학부 동경 유학을 마치고 오셨던 1946년 즈음이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를 공부하다보니 자연 약산 김원봉 장군도 연관되므로 그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고 수 년간 공부를 하였는데 할아버지와 서로 잘 아셨을 그 분들의 사진을 보며 하염없이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장군이 1946년돈가 부인 박차정의 유골을 밀양으로 모시고 와서 이장할 때 찍힌 스냅사진들을 보며 우리 할아버지가 찍었을 거라는 직감이 순간 번쩍하고 들었다. 어릴 때 우리집에 할아버지가 직접 찍은 옛사진들이 엄청 많았으며 사진첩에 잘 정리된 사진들을 아버지가 어린 내게 일일이 보여주시며 설명을 다 해주셨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증조부 조모는 어린 우리들에게 늘 입조심을 시키며 절대 밖에 나가 이런 거를 이야기하면 큰일난다시며 주의를 주셨기로 한 번도 입밖에 내지 않았다가 할아버지가 생수장 학살되셨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된 2011년 시월부터 집중탐구를 하게 되었으며 기막힌 사실에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부모형제가 밀양 산외에서 독립운동하시다 일경을 피해 시집간 막내딸인 할머니만 밀양에 두고 모두 만주로 이주를 하셨기로 만주와 백두산을 자주 왔다갔다 하셨다고 들었다.

 

김원봉 장군의 막내 여동생과 동갑이고 같은 학교를 다녔던 큰 고모가 여름방학때 한 달간의 일정으로 할아버지와 다른 독립군들과 함께 백두산에 가서 태극기를 꼽고 만세를 부르고 왔다는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큰고모는 독립군들의 편지 심부름을 했다는 이유로 보도연맹 명단에 올라가 학살을 당할 뻔하였는데 당시 정치범으로 마산형무소에 수감중이셨던 할아버지가 내 딸은 단지 아버지의 심부름을 했을 뿐이니 보도연맹에서 빼라고 강력히 항의하여 겨우 빼서 고모는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

 

약산과 밀양 표충사를 여러번 갔다하고 표충사에서 찍었다는 김원봉 장군의 원본사진이 우리집에 수 십장이 있었는데 할아버지와 단둘이 찍은 사진을 여러장 크게 확대하여 사진첩에 꼽혀 있었다. 아버지는 그 사진을 사진첩에서 빼서는

 

" 이 분이 약산 김원봉 장군이시고 우리나라 독립투사중 최고대장이시며 아주 훌륭한 분이시다. 너희 할아버지는 민족주의자시며 독립군이시며 이 분께 독립자금을 대시고 여러개의 가명으로 활동하셨던 진짜로 애국하신 비밀의열단이셨다. 너는 왕대나무의 자손임을 절대 잊지말거라." 라고 하셨다.

 

나는 그 말씀을 지금까지 늘 가슴깊이 새기고 다니며 단 한 순간도 잊지 않았으며 뭔가 힘든 일이 있거나 마음이 약해질 때는 그 말을 되새겼다. 나는 그냥 대나무가 아니고 왕대나무중에 왕대나무 자손이다. 내 반드시 공부 열심히 해서 할아버지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우리집을 전처럼 멋지게 다시 일으켜 세우고 말겠다고 마음먹었었다.

 

할아버지의 일을 알고나서부터 김원봉 장군의 위패를 할아버지와 조상분들과 또 한 날 한 시에 그 몹쓸 일을 당하신 1,681분도, 내가 설추석 차례제와 제사를 함께 모시니 내가 그 분들과의 인연이 보통 깊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장군이 국가서훈을 받고 할아버지도 그리되시기를 바라며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다 할 것이다.

 

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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