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 무덤
지금으로부터 만 66년전 1950.7.24(음6.10) 월요일 밤. 밀양 약산 김원봉과 함께 했었던 독립비밀의열단이었던 나의 조부 감영생과 당시 마산형무소에서 정치범으로 수감중이던 1,681명을 이감시킨다고 밖으로 불러낸 다음 이승만이 정치보복으로 두 눈 두 손발 꽁꽁묶고 다리에 돌덩거리달아 야밤에 살아있는 채 10명씩 묶어 낄낄 웃으며 발로 차서 바다에 밀어넣은 후 순시선을 돌면서 그 위에다 기관총으로 확인난사 잔혹하게 학살은폐시켰다.
오늘 마산 구산 괭이바다, 생수장학살시킨 그 현장에서 그 분들의 선상합동위령제가 있어 연꽃 몇송이 따고 정종하고 육포, 그리고 담배 사들고 배타고 나도 거기에 갔었는데 도무지 뭐라고 할 수 없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물결을 가르며 바다를 달리는 배위에서 나는 이렇게 바다에게, 세상사람들에게 말을 했다.
" 그래요, 그래요, 맞습니다, 맞아요, 여기가 바로, 바로 그 빨갱이 무덤입니다. 우리들은 사랑하는 부모형제, 할아버지. 피붙이들이 이곳에서 갈기갈기 찢어져 고깃밥이 되어버린 유가족들입니다."
" 아, 아 아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 제가 왔습니다. 셋째 아들 인목이 여식, 손녀 감효전이가 밀양 감영생이, 할아버지 찾아 왔습니다. "
할아버지와 그 몹쓸 일을 당하신 분들을 대신하여 내가 절명시를 썼다. 나는 언젠가 괭이바다 그 학살 현장에 가면 꼭 이것을 할아버지와 그 분들이 들릴 수 있을만큼 큰 목소리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울부짖으며 읽고 싶었다.
이걸 낭독하다가 너무 원통하고 절통하여 심장에 과부하가 걸렸는지 약을 먹고갔음에도 순간적으로 심장이 반발작, 온몸에 쥐가 쫘악하고 났으며 손에 경련이 나서 옆에서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면 하마터면 넘어질 뻔하였다.
말미에 이 말을 비감에 젖어 절규하듯 물에 젖은 비단을 쫙하고 찢어버리듯 울부짖으며 나는 말했다.
" 감영생이는, 밀양 감영생이는 아무 죄없다, 아무 죄 없다고, 대한민국이 우리 할아버지 감영생이를 죽였어!!!! 아 아, 할아버지, 사랑합니다.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이 목숨 다 하도록 최선을 다해서 할아버지와 여기 계신 그 분들을 찾겠습니다. 반드시 할아버지를 찾아 등에 업고 할머니가 누워계신 선산으로, 고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라고 소리쳐, 소리쳐 나는 울부짖었다.
오늘 들은 충격적인 사실 하나는
1950.7.24 이승만이 조부 감영생포함 마산 형무소재소자 1,681명포함, 총2,300명 생수장 학살은폐, 시체를 못알아보게 얼굴에다 페인트칠을 했다는거다.
일본으로 만주로 뛰어다니며 독립자금대며 독립운동한 우리 할아버지 감영생이 왜 돌덩거리달려 이 괭이바다에 그것도 증조부 기일밤에 1,681명과 함께 생수장 학살은폐를 당해야했는지를 대한민국이라는 뭣같은 나라에 묻고 싶다.
밀양 의열단 감영생이 손녀 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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