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는 무조건 쏴 죽여도 좋다는 개연놈들에게 이 글을 보낸다.!!!!!
해방이 되자 마자 약산 김원봉 장군은 밀양경찰서로 끌려가 악질친일경찰인 노덕술로부터 뺨을 수차례 맞는 등 모독을 당하고 이승만으로부터 계속 암살테러위협을 느끼자 차드렁크에 부인과 아이 둘을 숨기고 회의차 북에 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당시 나의 조부 감영생도 약산과 같은 밀양사람이고 비밀의열단으로 일본 와세다에 유학중에도 일본, 만주등지에서 활동하고 거금의 독립자금대준 사이였으므로 밀양경찰서로 체포되었다.
해방이후 최초의 대규모 전국 민주항쟁이었던 1948.2.7항쟁 주모,동참건으로 연루, 고문과 주동자를 다 불면 풀어주겠다는등 온갖 회유에도 불지않자 1948.8.22.
마산형무소에서 정치범으로 미군정 포고령 위반죄로 5년 구형, 복역중에 이감한다고 1950.7.24 끌려나가 마산 구산 괭이바다에 다른 정치범1681명과 함께 돌덩거리달려 생수장, 확인기관총난사 학살은폐,
김원봉이 북에서 돌아오지않자 그의 친형제 4명및 사촌 6촌 형제해서 총 35명인가 빨갱이로 몰려 총살또는 생매장 당했으며 그의 부친은 무서워 1년간 산에서 숨어지내다가 내려오지못해 산에서 굶어죽었다.
당시 나의 조부 감영생은 밀양의 만석거부로 독립자금대며 비밀의열독립군으로 활동을 했는데 학살은폐당했다.
1948.8.22, 이 날은 김원봉 장군의 친형제가 집으로 들이닥친 서북청년단 대한청년단에 의해 그 자리에서 바로 총살당했으며 나의 조부 감영생은 미군정포고령위반죄로 5년구형을 받았다.
그 무렵 밀양 바닥전체가 생난리가 났었다. 우리집에 들이닥친 30여명의 그 개잡놈들이 연로하신 우리 증조모를 몽둥이로 구타,두골이 함몰되고 혼절했었다.
서북청년단,대한청년단 30여명이 우리집에 쳐들어와 "감영생이 어디있냐, 어서 내놔라" 고 하자 혼자 있던 증조모가 모른다고 하자 우리집을 향해 기관총으로 수 백발 난사했고 200m 떨어진 동네어귀 당산나무까지 증조모의 쪽진 머리채를 질질 끌고가서 나무몽둥이로 개패듯이 패서 증조모가 혼절했고 두골이 달걀크기만큼 함몰했었다.
30여명의 몽둥이를 든 서북청년단 대한청년단 그 놈들이 우리집을 향해 기관총을 수 백발을 난사했는데 마루고 안방이고 사랑채고, 집안전체, 여러 곳간들, 쌀창고, 그리고 수 백년 내려온 종갓집인 우리집 큰 장독대를 향해 기관총을 쏜 바람에 된장.간장 고추장이 마당에 범벅되었으며 한옥인 우리집 문마다 총자국이 수 백발이 있었다. 생전에 아버지와 증조모 할머니는 어린 나를 두고 총자국으로 구멍이 난것을 일일이 보여주며 이 말씀을 하셨다.
이만기가 빨갱이는 보이는대로 쏴죽이도 된다는 글을 공유한 것을 보고 분노를 금할 길 없다. 이만기한테 묻겠다, 당신 아비가 혹시 우리 증조모를 몽둥이로 두골이 함몰되도록 팬, 우리집에 수백발 기관총 난사한 그 인간백정, 서북청년단,대한청년단원이었나?!!!!
자랑스런 독립비밀의열단 감영생 손녀 효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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