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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옛 추억속의 오두막집 /

감효전(甘曉典) 2012. 8. 16. 22:11

◆ 오두막집                

 

오두막집 이라면 방 두개에 부엌 하나 돌을 쌓으며 사이사이 황토를 발라 짚으로 지붕을

인 초가집을 떠올립니다 물론 그 벽 중간쯤엔 작은 문을 내어 사람이 드나들수

있도록 문틀에 돌저귀를 박고 창호지 바른 살문이 달리게 되었구요
여닫는곳엔 둥근 쇠 손잡이도 달았으니 그것이 문고리 랍니다

 

 

 

낮으막한 천장에 때로는 지붕 아랫부분 황토를 입힌 부분이 들어나기도 했지만

 

어렵게 구한 신문지로 얼기설기 철사를 매고 떨어지는 흙이라도 막아보고져

반자틀 흉내를 낸 집도 있었습니다

아궁이에 불을 넣으면 아랫방 윗방을 거쳐 방 고래를 관통하고

마지막엔 굴뚝을 통해 연기는 공기중에 흩어졌답니다

그래도 그 오두막집은 그 가족에게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안식처요

행복한 공간이었으니 구들을 달군 따듯한 방안에서는 허리 아픈 아낙네의

찜질방 이었고 옛날 이야기가 들리고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들리고

장죽을 문 영감님의 마른 기침 소리가 들리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공간은 너무도 협소했으니 아이들이 자라남에 누워서 다리 뻗을 공간이 없을때는

지그재그로 눕고 검은솜 이불 하나로 엄동설한 삭풍에 서로 이불을 끌어 덮기 위한

이불 쟁탈전이 수시로 열리던 곳이었습니다

그 경쟁에서 밀리는 막내는 기어이 아랫방 부모님 잠자리로 파고 들고....

가난은 대물림 한다고 했던가요 그렇게 장성한 아들이 장가를 가는날

가까운 곳에 터 하나 잡고 산에서 베어온 나무 얽어매고 도끼로 투덕투덕

또다시 초가삼간 집 하나 지어주면 그 또한 그런 삶을 이어가게 되는 것이고

우리 조상님들은 그런 생활을 수백년간 이어오며 살아 왔습니다

그래도 큰 아들은 부모곁을 떠나지 않는 법이라고 꼭 한집에서 기거하며 봉양하는 효를 행했는데

옹색한 살림에 돈이라도 있으면 사랑채라도 하나 들이련만 홀아비는 아랫방에

자식 내외는 윗방에 사는 가족이 있었습니다

 

 

 

어느해 가을 아들은 멀리 돈벌이 나가고 집에는 시아버지 새 며느리 두사람만 남았더라나요
붉은 고추는 따 들였는데 마침 비가 내리니 윗방에 그 물고추 펴서 널어놓고

부득이 시아버지 며느리 아랫방에서 자게 되었더랍니다

그러지 않아도 싱숭생숭 영 잠들지 못하던 홀 시아버지

잠깐 잠든사이.. 며느리가 잠결에 신랑인줄 알고 다리를 올리니

무게감에 눈을 뜬 시아버지 며느리 다리가 자신의 다리 위에 올랐으니......

슬그머니 그 다리를 내려 놓고 밖으로 나왔다만 "허 참 !".
고얀지고 그 길로 같은 동네 재종 형제네 사랑방으로 가서 자고

그 이튿날도 재종집에 머무니 "형님 왜 집에서 안 주무시고.....".

묻는 동생에게 "좀 그럴일이 있네".

그 눈치 아는 새 며느리는 그저 좌불안석 죄송스럽기 그지없고...

 

 

 

보통 한칸 방이라면 사방 여덟자 2400 미리 정도 되는 공간을 말합니다

 

그저 사람 하나 눕고 머리 맡에 짐 하나 둘만한 공간.. 때로는 갈라진 방바닥으로 연기도 올라왔고

천장엔 거미가 줄을 친 집도 많았습니다 참으로 어렵게 살던 시절이었습니다
물론 드물게 부잣집은 넓은 공간을 가지기도 했지만.....

그 시절에 비하면 요즘은 너무도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보다 더 넓은 공간만을 원하더군요

(울님들!!! 님의 집 공간은 어떠하시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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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닷가의 오두막집/순천만           
 

 

 

 

 

 

출처 : 영영소나무
글쓴이 : 영영소나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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