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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조상들의 멋과 슬기가 담긴 생활도구들 (6)

감효전(甘曉典) 2012. 8. 16. 21:58

 

가마니 치기 대회

일제강점기에는 가마니 치기 대회를 열었다.

이를 이어받아 1960년대에도 가마니 치기 대회를 했다.

아래 사진은 1960년대 충북 괴산에서 있었던 가마니 치기 대회.

쇠신

소가 마차를 끌거나 무거운 짐을 싣고 바닥이 단단한 실을 오랫동안 걸어야 할 때 소의 발굽이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앞발에 신기는 일종의 짚신이다. 발굽사이에 기우고 발목에 묶어 고정한다.


길마

옹구·걸채·거지개를 쓰기 위해 소의 등에 올려좋은 일종의 안장이다. 보통 두툼한 소나무 널빤지 두쪽을 합쳐 말굽쇠 모양으로 만든 앞가지와 뒷가지를 등어리 막대로 질러박아 단단히 고정한다. 길마 밑에는 짚으로 멍석 처럼 짠 언치를 대어 소의 등이 헐거나 상처가 나지 않게 한다.

 

걸채

옹구와 틀은 같지만, 망이나 자루 대신 듬성듬성 줄을 걸쳐 그 안에 볏단이나 보릿단과 같이 부피가 큰 물건을 실어 나른다. 지방에 따라 「배걸채·발구·발채」라고도 부르는데 한 번에 100~150kg의 짐을 나를 수 있다.

발구

소멍에에 양쪽에 긴통나무를 대고 그 끝에 턱을 붙인 후 턱위에 물건을 얹어 운반하는 운반용구로 눈이 많이 내리는 강원도 산간 지방에서 주로 사용되었다.

 

달구지

네 바퀴를 가니 수레로 소나 말이 끈다. 소가 끄는 것을 「우차」말이 끄는 것을 「마차」라고 하지만 보통 통툴어「마차」또는「우마차」라고 부른다. 앞바퀴의 굴대는 가는 방향에 따라 좌우로 회전할 수 있으며, 짐을 싣거나 내릴 때는 소가 쉴 수 있다. 바퀴가 두 개인 수레는 달구지라 한다. 한 번에 1000 kg가량의 짐을 실어 나를 수 있다.

 

나락뒤주

가을에 타작한 뒤 나비질한 벼를 저장하는 뒤주로, 대쪽을 엮은 다음 안쪽은 진흙을 발라 벼가 흘러나오지 않도록 했으며, 바깥쪽 밑부분에는 밤송이를 꽂아 쥐가 침입하지 못하도록 했다.

 

지역에 따라 나락두지(경상남도 영산), 두대통·볏두지(전라남도 보성), 둑집(전라북도 진안)이라고 부른다. 이에는 다음과 같은 네 종류가 있다.

 

① 짚으로 엮은 날개를 둥글게 둘러세우고 위에는 비가 스미지 않도록 주저리를 씌운다. 이것을 마당 한 귀퉁이에 세우고 나락을 갈무리하는데, 겨우내 조금씩 꺼내므로 봄이 되면 자연히 철거하게 된다.

곳간과 같은 수장공간이 부족한 집에서 세우는 임시 뒤주인 것이다. 근래에 와서는 쥐의 피해를 막기 위하여 함석판으로 만들기도 한다.

 

② 나락을 갈무리하기 위하여 한 칸 내지 서너 칸의 독립건물을 짓기도 한다. 네 벽은 널벽으로 처리하고 지붕에는 짚이나 기와를 덮는다. 바닥에도 널을 깔며 지면과는 30∼50㎝의 간격을 둔다.

어느 한 면의 설주에 홈을 파고 여러 개의 쪽널을 차곡차곡 끼워넣어 문으로 삼는다. 농사가 많지 않은 집에서는 부엌 모퉁이에 지어 사용하는 일이 많다. 이러한 ‘둑집’은 호남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다.

 

③ 대로 항아리처럼 배가 부르고 아래쪽이 홀쭉하게 짠 것이다. 위에는 짚으로 엮은, 송낙 모양의 모자를 씌운다.바닥 네 귀에는 주추를 놓고 널을 깐 다음 쥐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철사로 뜬 그물을 깔아둔다.

전면의 상부에 작은 널문을 달아 나락을 넣으며 꺼낼 때에는 아래쪽의 작은 구멍을 이용한다. 안쪽에는 진흙으로 초벌 바른 위에, 모래·토사·밀풀 따위를 잘 섞은 것을 덧발라서 틈새를 메운다.

크기는 일정하지 않으나 스물 네 가마의 나락이 들어가는 대형도 있다. 이것은 경상남도 진양군 일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④ 바닥에 전이 달린 큰 방석을 깔고 이에 맞추어 짚으로 멍석처럼 짠 발을 두르고 나락을 담아두는 것이다. 나락이 많을 때에는 발을 덧대어 늘일 수 있으므로 편리하다. 이러한 나락뒤주는 전라북도 지방에서 많이 쓴다.

사진은 김제 장화리에 있는 나락뒤주

짚독

새끼줄을 이중으로 날줄하여 곱게 다듬질한 짚으로 아주 섬세하게 짠 독이다.
뚜껑가지 만들어 수확한 벼를 갈무리한다.

 

뒤웅박

 

 

씨앗을 갈무리해 두는 그릇이다.
지방에 따라  "두베, 됨박, 주름박"이라고도 부르는데, 박의 꼭지 부분을 따내거나 주먹만한 구멍을 내서 속을 파고, 그 속에 씨앗을 담아 광이나 벽에 걸어 매둔다.
일반적인 형태는 바가지처럼 둥글지만, 호리병처럼 위가 좁고 밑이 넓은 박으로 만들기도 한다. 터지거나 깨지지 않도록 대오리로 그물처럼 만들어 덧싸기도 하는데, 이 때에는 대오리를 윗부분에서 모아 묶어 고리로 삼는다.

뒤웅박에는 습기를 흡수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여름철에 밥을 담아두면 잘 쉬지 않는다. 메뚜기를 잡아 넣는 통으로 쓰기도 한다. 그밖에 씨앗을 갈무리하거나 달걀 따위도 두며, 흔히 처마 밑이나 보꾹 밑 또는 방문 밖에 매달아둔다.

 

경상북도 상주지방에서는 오짓물로 구운 것을 쓰며, 박이 나지 않는 데에서는 짚으로 호리병처럼 엮어 사용한다. 한편 함경도 지방에서는 뒤웅박에 구멍을 뚫고 속이 빈 작대기를 꿰어 씨를 뿌릴 때 사용하는데, 옛말 그대로 드베 또는 두베라고 부른다.

쌀뒤주

나무로 만든 곡식을 담는 궤櫃. 통나무로 만들거나 널빤지를 짜서 만든다.

통나무로 만드는 것은 밑둥과 머리에 따로 널빤지를 대어 막고, 머리 부분의 한쪽을 열도록 문짝을 달아 낟알을 넣거나 퍼낸다.

널빤지를 짜서 만드는 뒤주는 네 기둥을 세우고 벽과 바닥을 널빤지로 마감하여 공간을 형성하고, 머리에 천판天板(천장을 이루는 널)을 설치한다. 천판은 두 짝으로 만들어 뒤편의 것은 붙박이로 하고 앞쪽으로 여닫는다. 여닫는 데는 쇠장석을 달아 자물쇠를 채운다.

 

또 네모반듯한 상자를 여러 개 만들어 차곡차곡 쌓고 그 위에 이엉을 덮어 만든 것도 있다. 이 밖에 네 기둥을 세우는 뒤주의 서너배 크기로 만들어, 기둥의 앞면에 따로 기둥을 세워 문벽선을 삼고, 그 문벽선에 물홈을 파고 널빤지를 드린 것도 있다. 이런 거대한 뒤주는 동화사桐華寺의 요사채 등에서 볼 수 있다.

 

이러한 유형의 것을 한층 더 크게, 곳간만하게 만들어 마당 한쪽에 세우고 지붕을 이어 비바람을 가리게 하거나, 집의 한 끝에 따로 한칸을 설치하고 정면에 빈지 드린 문얼굴을 만들어 완성하기도 한다. 이것도 곡식을 수장하는 시설이라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뒤주라고 할 수 있다.

 

넓은 의미의 뒤주로는 버드나무 굵은 것이나 가는 싸리나무, 대나무오리를 써서 큰 독과 같은 형태로 엮은 것도 있다. 여기에 서까래를 걸고 이엉을 이어 초가처럼 꾸민다. 밑둥 한쪽에는 네모난 창을 내고 문을 닫아두었다가 필요할 때 열어 낟알이 쏟아져 나오게 한다.

짚으로 거칠게 쳐서 두끝을 안으로 우겨 넣고 꿰맨 것으로, 곡물 따위를 갈무리 하는 데 쓴다

채독

 

 

콩이나 감자 옥수수 등 마른 곡식을 갈무리하는 데 쓴다.

싸리로 배가 부르게 독처럼 엮는다.
엮고 나서 겉에 소똥을 바르거나 진흙을 덧바르기도 한다.

중태

가마니처럼 곡류와 감자 등을 갈무리하는 데 쓰는 도구로 모양은 가마니와 비숫하다.
쓰지 않을 때에는 접을 수 있도록 바닥이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강원도 산간 마을에서 주로 썼다.

 

 

도롱이

비가 올 때 등에 걸치는 일종의 비옷으로「등구지·느역」이라고도 한다. 띠풀이나 볏짚을 부풀게 엮어 만든 것을 「도롱이」라 하고, 자리를 자서 머리까지 덮을 수 있도록 한 것을 「접사리」라고 한다. 도롱이를 두를 때는 머리에 삿갓을 쓴다.

나무독

아름드리 통나무의 속을 파내고 곡식 등을 담아두는 갈무리 도구다.
보통 50~100리터를 담을 수 있다.
강원도 산골에서는 피나무로 만들어 김칫독으로도 쓴다.

 

논밭의 새를 쫓는 도구. 짚·삼 또는 실 등으로 고은 줄을 장대에 매어 휘휘 휘두르다가 거꾸로 잡아채면 딱 소리가 크게 나 새가 놀라 달아난다.

잠박

누에를 치는데 쓰는 네모진 채반

 

 

씨아

목화의 씨를 빼는 연장으로 「쐐기·타리개·씨앗이」라고 도 부른다. 가락과 장가락을 귀(헬리컬 기어)에 맞물리고 한 사람이 손잡이로 돌리면 가락이 따라 도는데 가락과 장가락사이에 솜이 물려 들어가면 목화씨만 남는다. 귀가 없는 씨아는 두 개의 장가락을 반대 방행으로 박아 두 사람이 마주보고 돌린다. 한사람이 하루 30~40리터의 목화씨를 뺀다.

구유

 

소·말 돼지와 같은 가축의 먹이를 담아 주는 그릇으로 지방에 따라 「구시·기승·귀영·소죽통·여물통」이라고도 한다. 통나무를 파내거나 두툼한 널빤지로 짜서 만드는데 큰소의 것은 30~40리터, 송아지 것은 10~20리터 가량 담을 수 있다. 어미 소와 송아지가 한 우리에 같이 있을 경우에는 긴 통나무에 각각의 것을 따로 파는데 세 마리가 함께 쓰는 구유도 있다. 나무 구유는 오래 쓸 수 없기 때문에 돌로 만들기도 한다.

 

작두

 

소나 말에게 먹일 짚이나 풀을 잘게 써는 도마가 달린 칼이다. 넓적한 칼날의 앞쪽을 고리쇠로 통나무 도마에 연결하고 발판에 줄을 매어 당겨 올렸다가 발로 밟아 여물을 써는 것을 「발작두」라 한다. 또 칼을 통나무 위에 세워 박고 날 사이를 통과하는 틀을 손으로 눌러 여물을 써는 것은「손작두」라고 한다. 두 사람이 한 시간에 10가마 정도의 여물을 썰 수 있다.

약 절구

약을 빻을 때 쓰는 도구.

여물주걱

 

토시

논에 김을 맬 때 벼가 많이 자라 억센 잎에 손목이나 팔목이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끼는 용구. 주로 가는 대나무를 이용해 만든다.

 

논호미

호미 자루에 짚을 감아 두레 논매기를 할 때 썼던 호미로 물이 묻어도 미끄럽지 않으며, 부드러워 손바닥이 잘 상하지 않는다.

갈퀴질하는 소년들

보리밭인가?

두 소년이 갈퀴질을 하고 있다.

시기는 아마 봄인듯.

물동이를 인 아이들

아이들은 어느 정도 힘이 생기면 집안일을 거들었다.

여자아이들은 물 긷기, 동생 보기 등.

남자아이들은 땔감하기, 소 풀먹이기 등.

출처 : 영영소나무
글쓴이 : 영영소나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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