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虹縣詩(宋ㆍ米?)
이는 미불의 큰 행서 작품으로 모두 37행이고 행마다 2-3자씩을 쓴 지본 묵적이다. 끝에는 유중유(劉仲遊)ㆍ원호문(元好問)ㆍ왕홍서(王鴻緖) 등의 제발이 있다.
이 작품을 감상하려면 먼저 미불이 말한 ‘쇄자(刷字)’를 이해해야 한다. 그는 『해악명언』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서학박사로 휘종의 부름에 대하니, 황상이 본조에 글씨로 세상에 유명한 몇 사람을 물음에 나는 유명한 사람으로 대답하길, “채경은 필법을 얻지 못하였고, 채변은 필법은 얻었으나 표일한 운치가 결핍되었고, 채양은 새기듯이 썼고, 심료는 배열하듯 썼고, 황정견은 그리듯이 썼고, 소식은 화법으로 썼습니다.”라고 했다. 황상이 다시 묻기를 “경의 글씨는 어떠한가?”라고 하자, 대답하길 “신의 글씨는 쓸듯이 씁니다.”라고 하였다.
海嶽以書學博士召對, 上問本朝以書名世者凡數人, 海嶽名以其人對曰, 蔡京不得筆, 蔡卞得筆而乏逸韻, 蔡襄勒字, 沈遼排字, 黃庭堅描字, 蘇軾?字. 上復問, 卿書如何. 對曰, 臣書刷字.
여기서 자칭 ‘쇄자’라고 한 것은 당연히 폄하한 말이 아니다. 이는 그가 심수합일(心手合一)과 흉유성죽(胸有成竹)을 하여 낙필할 때 “떨치고 빠르며 천진함이 뜻의 밖에서 나온다[振迅天眞, 出于意外].”라는 작품에 이를 수 있음을 설명한 말이다. 필획마다 다름이 천진함에서 나와 천마행공(天馬行空)하면서 홀로 오고가는 정신 풍모를 나타내었다. 만약 그가 말한 ‘쇄자’를 구체화하려면, 이 작품과 또 다른 명작인 <다경루시(多景樓詩)>를 증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 2작품은 미불의 대도활부(大刀闊斧)와 풍장진마(風檣陣馬)의 ‘쇄자’ 풍격을 가장 잘 표현했다. 만약 서예를 ‘호방파(豪放派)’와 ‘완약파(婉約派)’로 나눈다면, 미불은 분명히 ‘호방파’에 속한다. 글씨가 커짐에 따라 더욱 종횡무진으로 달려도 뜻에 맞지 않음이 없어 그의 작품은 마치 배민의 검무, 이백의 시, 소동파의 사를 연상시키니, 이른바 법도가 이미 그의 창작을 구속시킬 수 없다.
결자를 보면, 대소사정(大小斜正)과 경중완급(輕重緩急)이 모두 필요에 따라 정해져서 리듬감이 매우 강하다. 또한 후인들이 항상 말하는 창작의 맛이 전혀 없고, 단지 자연과 천진한 운치만 느끼게 한다.
용필을 보면, 제안과 사전도 엄격하게 법도를 지키지 않았다. 예를 들면, 가로획에서 수필 혹은 가볍게 머무르거나 필봉을 내는 곳은 모두 똑 같은 느낌이 없고, 행서에 초서 필세를 띠고 있으며, 선은 굵고 가늠을 배합하고, 먹은 마르고 진함을 서로 섞어 더욱 유창하게 했다. 비록 크게 벌리고 합하는 곳과 긴 별과 날획, 예를 들면 제2행의 ‘題’와 5행의 ‘天’과 7행의 ‘健’자 등이라도 오히려 “긴 뱀을 나무에 거는[長蛇掛樹]” 것과 같은 병폐가 없이 자유스러운 점은 아마도 황정견보다 한 수 위인 것 같다.
이 작품에서 미불의 운치가 잘 나타난 것은 아마도 용묵인 것 같다. 미불은 항상 사람을 가르칠 때마다 “글씨를 배우려면 모름지기 진적을 보아야 한다. 만일 진적을 보지 않고 단지 비첩만 알면 이전 사람 용필의 묘함을 알지 못한다.”라고 했다. 이 작품을 보고 미불이 한 말을 생각하면 진실로 그러하다. 이른바 ‘기운생동(氣韻生動)’이나 ‘묵분오색(墨分五色)’이라는 것은 비판(碑版)에서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이 작품을 보면, 먼저 먹을 묻혀 연달아 ‘虹縣舊題’라고 쓰고 다시 먹을 묻혀 연달아 ‘云快霽一天淸淑’이라고 7자를 써내려갔다. ‘霽’자에서 이미 먹이 다했지만 오히려 눌러서 ‘淑’자까지 써내려갔다. 이는 이일화(李日華)가 『평첩(評帖)』에서 “뜻은 팔꿈치를 믿고 팔목을 믿지 않았으며, 손가락을 믿고 붓을 믿지 않았으며, 휘두름이 빠르고 신속한 가운데 마르고 윤택함을 머금었으니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묘함이 있다[意信?而不信腕, 信指而不信筆, 揮?迅疾中含枯潤, 有天成之妙].”라고 평한 것과 같다.
작품 전체를 보면, 고필(枯筆)ㆍ갈필(渴筆)ㆍ비백(飛白)의 운용이 자유롭고, 조윤(燥潤)을 섞고 허실을 겸하며 오색이 서로 마땅하여 진정 ‘임리감창(淋??暢)’의 경지에 이르렀다. 가장 귀한 것은 이러한 장점들이 이 작품에서 섬세하게 나타나 모든 것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송 고종은 『한묵지(翰墨志)』에서 미불의 글씨를 칭찬하며 “침착하고 통쾌하여 마치 준마를 타고 나아가고 물러남이 여유로워 번거롭게 채찍이나 재갈을 물리지 않아도 사람의 뜻에 합당하지 않음이 없다[沈著痛快, 如乘駿馬, 進退裕如, 不煩鞭勒, 無不當人意].”라고 했다. 이 작품을 잘 감상하면 이러한 칭찬이 결코 허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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