貯椒八百斛 千載笑其愚
如何碧玉斗 竟日量明珠
(저초팔백곡 천재소기우
여하벽옥두 경일량명주)
후추를 팔백 곡(斛)이나 쌓아 두다니
천년 두고 그 어리석음을 비웃는다
어찌하여 푸른 옥으로 됫박을 만들어
하루 종일 맑은 구슬을 담고 또 담는가
☞ 최해(崔瀣), <우하(雨荷)>
※ 최해(崔瀣, 1287년 忠烈王13∼1340년 忠惠王1): 고려시대 문인으로 호는 졸옹(拙翁)·농은(農隱). 유밀후인(儒密後人)을 자처하기도 했다.
※ 근현대 중국화가 장대천(張大千)의 <우하(雨荷)>
'후추 800곡' 이야기는 당나라 원재(元載)의 고사를 말하는 것이다. 원재(元載)는 대종(代宗)때 재상을 지낸 인물로 직분을 이용해 뇌물을 받아 축재했다. 그가 죽은 뒤 창고를 뒤져보니 후추가 800곡(斛)에 종유(種油)가 500량(量)이나 나와 나라에서 몰수했다. 모두 탐욕이 빚은 결과였다.
원재(元載)와 관련한 재미있는 일화 한토막. 당나라 제12대 황제 대종(代宗: 李豫) 때 어조은(魚朝恩)이라는 환관이 있었다. 그는 현종(玄宗)과 덕종(德宗)·대종(代宗)의 3대에 걸쳐 천자를 모셔 세도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웬만한 문무대신은 안중에도 없었다.
어느 날 대종이 직접 참석한 가운데 강연(講筵)이 펼쳐졌다. 이 때 어조은은 강연을 핑계로 평소 눈밖에 난 대신 몇 사람을 은근히 공격했다. 천자를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이에 왕진(王晉)이라는 대신이 발끈하며 즉각 반발하고 나섰으나 원재(元載)만은 태연히 웃기만 했다.
강연이 끝나고 나서 어조은이 "왜 욕을 듣고 가만히 있었을까? 아무래도 원재가 마음에 걸리는걸…" 하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 어조은은 원재에게 죽임을 당했다.
감정을 있는 대로 드러낸다고 당장 상황이 무마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 아닌가. 오히려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렸다가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좀더 지혜로운 처신일 수 있다. 원재가 그것을 확인시켜 준 셈이다.
하지만 그런 원재도 얼마 뒤 탄핵을 받고 지방으로 좌천됐다가 결국 피살당하고 만다. 노회한 관리로 재상의 지위에까지 올랐지만 재주만 믿고 덕을 잃었으니 사필귀정이었을까.
벽옥두(碧玉斗): 푸른 옥으로 만든 됫박. 여기서는 푸른 연잎을 말한다. 무수한 빗방울이 맑은 구슬 되어 푸른 연잎 위에 굴러 떨어진다. 한참 모였다가 묵직해지면 꽃잎이 기우뚱하며 연못 위로 말(斗) 구슬 되어 쏟아진다.
구슬을 되는 됫박은 하나 둘이 아니다. 수면 위로 나온 연잎마다 됫박질이 이루어진다. 종일 비가 내린 뒤 연못은 그렇게 주워 담은 구슬로 가득해진다. 연잎에 모인 물방울이 구슬 되어 떨어지는 모습을 원재(元載)의 탐욕에 비겨 시로 승화시킨 것이 실로 이채롭다.
- 하(荷): 연꽃(芙)
- 초(椒): 후추
- 곡(斛): 휘(10斗) 들이 그릇 또는 용량단위
- 경일(竟日): 온 종일
※ 청말근대 화가 오창석(吳昌碩)의 <雨荷)> (1916年作)
'관심사 > 고서화(古書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약야계변희완사(若耶溪邊喜浣紗) (0) | 2012.05.16 |
---|---|
[스크랩] 비파행(琵琶行) (0) | 2012.05.15 |
[스크랩] 우하(雨荷) (0) | 2012.05.15 |
[스크랩] 장경오훼(長頸烏喙) (0) | 2012.05.15 |
[스크랩] 조선시대 겸재(謙齋) 정선의 진경산수화 그림세계(1) (0) | 2012.05.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