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사/고서화(古書畵)

[스크랩] 조상들의 여름나기

감효전(甘曉典) 2012. 4. 27. 14:24

자양분이 풍부한 뜨거운 음식으로 기운과 입맛을 돋궈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소서가 지나면서 30도가 넘는 찜통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낮 더위뿐만 아니라 잠 못이루는 열대야까지 겹치면서 몸이 축축 늘어져 손에 일이 잡히지 않기 쉽다. 조상들에게 배우는 ‘자연피서법’.


"자연을 거스리지 않고 그 속으로 너럭바위에 걸터 앉아 흐르는 물에 발을 맡기니 탁족지유라.
풍진을 떠난 은둔·고답에다, 간·콩팥·위와 관련된 경혈을 자극하는 효과도 있단다.
“맑으면 갓끈 씻고 흐리면 발을 씻는다니,
물 스스로가 그런 사태를 빚은 것이요,
사람도 자신을 욕되게 한 뒤에야 남이 그를 모욕하니...”   (맹자)

 

죽부인에 다리를 걸치고 낮잠을 자면 대통발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와 저절로 잠이 든다
 
지금은 각 가정마다 선풍기나 에어컨을 끼고 살다시피하고 언제든지 냉장고에 보관된 차가운 음식과 음료수를 즐길 수 있지만 이도저도 없던 옛날에는 과연 어떻게 여름을 보냈을까. 요즘 사람들이 갖가지 문명의 이기를 이용해 무더위를 이겨내듯이 옛 사람들도 더위를 쫓는 슬기로운 피서법을 갖고 있었다.

                        

옛 사람들은 초여름에 해당하는 단오 무렵(음력 5 월 5 일)에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 아이들은 멱을 감고 어른들은 등목을 했다.  또 폭포가 있는 지방에서는 `폭포 물맞기'를 하고 해안 지방에서는 백사장에서 모래찜질을 하면서 더위를 이겨냈다. 점잖은 처지의 양반들은 가까운 벗들과 시원한 계곡을 찾아가 계곡물이나 쏟아지는 폭포를 바라보며 더위를 잊었다.

 

윤두서(尹斗緖)의 송하관폭도(松下觀瀑圖)

 

이인상(171O - 176O) 윤두서(1668 - 1715) 등 조선 후기의 이름난 문인화가들이 즐겨 그린 〈송하관폭도〉에는 폭포수 아래서 더위를 식히고 있는 선비의 모습이 잘 묘사돼 있다.

 

그러나 찜통더위에는 옛 선비들도 직접 물에 들어가고픈 유혹을 떨치기 힘들었든 듯하다. 신분과 체면 때문에 맨몸을 드러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 흐르는 차가운 물에 발만 담가 그 시린 기운을 즐기며 더위를 식혔다. 바로 탁족(濯足)으로 당시 선비들의 최고 피서법이었다.

 

“나물 먹고 배불러서 손으로 배를 문지르고 얇은 오사모를 뒤로 제껴 쓰고, 용죽장 손에 집고 돌 위에 앉아서 두 다리 드러내어 발을 담근다. 그 시원한 물을 입에 머금고 쭉 뿜어내면 불 같은 더위가 저만치 도망을 가고 먼지 묻은 갓끈도 씻어낸다. 휘파람 불며 돌아와 시냇바람 설렁설렁하면 여덟자 대자리에 나무베개를 베고 눕는다…”-이인로 <탁족부>

 

“서울 풍속에 남산과 북악의 계곡에서 탁족 놀이를 한다”는 <동국세시기>의 기록도 당시 양반 선비들의 탁족 피서법을 보여주고 있다.

고려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중기의 문인 이경윤(1545 - 1611)은 얼마나 무더운지 선비 체면에도 불구하고 저고리를 풀어 헤친 채 시리도록 차가운 물에 두 다리를 담그고 발가락를 꼼지락거리고 있는 선비의 모습을 고사탁족도라는 작품으로 남겼다.

 

이경윤(李慶胤)의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

 

실제로 한방에선 발이 온도에 민감해 찬물에 담그면 온몸이 시원해질 뿐더러, 흐르는 물이 간장 신장 방광 위장 등의 기(氣)가 흐르는 길을 자극해 건강에도 좋은 것으로 치고 있다.

 

또 요즘처럼 바람 한점 없는 열대야 때문에 잠을 설칠 때에 옛 사람들은 바람 잘 통하는 뜰이나 마당에 두어자쯤 높이의 평상을 내어다 댓자리나 돗자리를 깔고 잠을 청했다. 지체높은 선비들은 사랑방에서 체온이 뜨거운 마나님대신 대줄기를 엮어 긴 원통형으로 짜 만든 `죽부인'을 껴앉고 잤는데 허전함을 덜 뿐 아니라 대나무의 서늘한 기운과 통풍이 잘돼 쉽게 잠에 빠지곤 했다.

 

또 죽부인은 모기나 감기 때문에 홑이불을 덮고 자더라도 홑이불이 몸에 직접 밀착하지 않게 해 쾌적한 온도를 유지시킬 뿐 아니라 대나무 고유의 탄력을 빌어서 안고 자면서 다리까지 걸칠 수 있는 잇점도 있었다.

 

한편 복날같이 무더운 날에는 삼계탕이나 보신탕 등 뜨거운 보신 음식으로 무더위를 이겨내는 이열치열의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무더위 때문에 땀을 많이 흘리다보면 갈증을 채우기 위해 찬 것을 많이 먹게 되고 입맛이 떨어져서 쉽게 기운이 빠지기 쉽다.

 

영양 보양식, 삼계탕

 

이처럼 `더위를 먹었을 때'는 자양분이 풍부한 뜨거운 음식으로 기운과 입맛을 돋궈 건강을 지켰던 것이 옛 사람들의 대표적인 여름나기 지혜였던 것이다.

 

특히 1 년중에 가장 더위가 심하다는 초·중·말 `삼복'에는 햇병아리를 잡아 삼계탕을 해먹거나 개를 잡아 큰 가마솥에 파를 썰어 넣고 삶아서 보신했다. 애견가에게는 듣기 싫은 소리겠으나 옛 사람들은 복날에 구(狗)탕을 먹으면 허약해진 몸을 보신하고 영양을 보충하며 잔병을 물리치고 잡귀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

 

<동국세시기>의 기록에도 “상고하면 <사기>에 이르기를 진덕공 2 년에 처음으로 삼복 제사를 지냈는데 4 대문 안에서는 개를 잡아 충재를 방지했다”는 내용이 있다. 또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개고기는 오장을 편안하게 하며 혈맥을 조절하고, 장과 위를 튼튼하게 하며, 골수를 충족시켜, 허리와 무릎을 따뜻하게 하고, 양도를 일으켜 기력을 증진시킨다”며 그 효능을 설명했다.

 

여름철이면 이름난 곳이 아니더라도 계곡과 바다 등 피서지에는 인파와 자동차 행렬로 넘쳐나 열을 피하려다 오히려 열받는 것이 요즘 피서세태다. 또 에어컨이나 냉장고가 널리 보급돼 손쉽게 시원한 음식과 음료수를 즐길 수 있게 되었으나 이런 문명의 이기의 지나친 사용으로 몸을 해칠 수도 있다. 이럴 때 호들갑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더위를 다스렸던 옛 사람들의 지혜를 빌어보는 것도 건강하게 여름을 나는 피서법일 수 있겠다.

 

 

출처 : 호시탐탐(好視探貪)
글쓴이 : 먼 발치 매운 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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