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6·25 전쟁 영웅으로 미화시킨 백선엽 씨는 간도특설대 출신의 친일파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 전쟁 이후 한국군에 파벌을 형성해 부패의 온상이 됐던 인물이었으며 결국 이 때문에 5·16쿠데타 준비세력에 의해 옷을 벗어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사실은 5·16 쿠데타 당시 주한미대사관의 필립 하비브 정치담당 참사관이 본국에 보낸 장문의 기밀문서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하비브 참사관은 5·16 쿠데타 발생 1년이 조금 지난 1962년 8월 17일 한국군내 세력판도를 자세하게 분석 정리한 장문의 비밀전문 ‘한국 군부 내 주요 파벌주의’를 본국 국무장관에게 보냈다. 하비브 참사관은 이 전문에서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승승장구하던 백선엽 씨를 비롯해 정일권 등 친일 군벌세력(‘구파벌’)이 박정희·김종필 등 쿠데타 세력(신진 장교들)에 의한 ‘부패척결’ 등 청군운동으로 군 조직 내에서 숙청됐다고 기술했다.
하비브는 이 전문에서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부터 군사쿠데타 전까지 군을 구성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세력을 크게 만주파, 일본파, 중국파로 구분하고, 이 가운데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세력은 만주파였으며, 백 씨를 만주파의 두 거두 가운데 하나로 보았다. 만주파는 만주군관학교에 입학 또는 졸업했거나 다닌 적이 있는 이들로 구성되는데, 출신 지역의 연고에 따라 정일권의 함경도파, 백선엽의 평안도파로 나뉜다. 박정희도 범 만주파로 분류됐다. 일본 본토 군사학교 출신인 일본파(이범석)와 중국에서 광복군 등으로 활동한 중국파(이범석)도 있었지만 이들은 소수 그룹으로 실제 군 조직은 모두 일제 때 만주군관학교를 나온 만주파 정일권과 백선엽 두 거두에 의해 장악됐었다고 하비브는 분석했다.
한국군에서 북한지역 출신 군인들이 조직을 장악한 이유에 대해 하비브는 “뿌리가 없고 연고가 없는 이방인들이며, 친가와 처가의 대가족을 데리고 내려왔기 때문에 가난했고, 생계유지에 대한 욕구가 컸다”며 “이러한 욕구가 그들을 한데 결속시켰고, 그들은 조직을 통제하기 위해 자신들의 지역적인 연대를 이용했다”고 설명했다. 하비브는 이같은 지역연고와 파벌이 결국 군내 엄청난 부패의 한 원인이었다고 기술했다. 하비브는 특히 백선엽과 정일권이 이끌던 파벌의 부패상에 주목했다. 그는 “정일권과 백선엽은 모두 자신들의 군사적 국가적 임무에 덧붙여서 자기 파벌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그들은 자기 파벌의 성원들이 파벌에 대한 반역이 아니라면 위법행위를 하더라도 이들을 보호하고 계속 활동하게 할 뿐 아니라, 처벌을 받을 경우 복권시켜 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들이 이른바 후에 ‘하나회’로 까지 이어지는 군내 파벌의 뿌리였다는 것이다.
하비브는 그 중에서도 백선엽을 부패한 장군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았다. 하비브는 이 비밀전문에서 백선엽에 대해 “혜택과 진급, 적절한 사면등의 방법을 통해 자신의 파벌적 역량을 축적했다”고 분석하고 백씨의 ‘한 가지 단점’으로 “백 장군은 다른 참모총장들보다도 더욱 부패한 것으로 유명했다”고 기술했다. 하비브는 5·16 쿠데타는 창군 세력들의 이같은 파벌과 부패에 대한 군내 소외세력과 젊은 장교세력들의 반발에서 비롯된 점이 없지 않다고 보았다. 그는 “당시 젊은 장교들은 백선엽이나 정일권을 자신의 선배로 분류하고 싶어 하지 않을 정도로 부패구조가 만연됐었다”고 분석하고, “(청군운동과 5·16 쿠데타는) 백선엽·정일권 등 선배들의 지역적 파벌과 그로 인한 돈과 친인척의 등용으로 얼룩진 부패에 분노한 젊은 장교들의 감정을 그들의 선배를 제거하고 오랫동안 적체된 진급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발판으로 이용했다”고 풀이했다.
하비브는 백선엽과 정일권이 거느린 파벌세력의 부패 고리는 1960년 4·19혁명 1년 전인 1959년 군내 파벌과 부패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조선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5~9기 장교들의 ‘청군(정군)운동’에 의해 와해되기 시작했다고 기술했다. 군사쿠데타를 기획하던 이들 ‘신진장교’들은 4·19혁명으로 쿠데타 기도가 불발에 그치자 ‘청군운동’으로 방향을 돌려 혁명 직후인 5월 송요찬 당시 참모총장과 백선엽 연합참모회의 의장이 퇴역했다. 하비브 참사관은 이들의 퇴역에 대해 “직접적으로는 (4·19)혁명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는 부패사건으로 함께 숙청됐다”고 기술했다. A4용지 36쪽에 달하는 하비브 참사관의 이 비밀전문은 마상윤 가톨릭대 교수가 미국 국립문서보관소(NARA)에서 찾아낸 것으로 <신동아>가 지난해 3월 전문을 번역 공개했다. 하비브 전 참사관은 1962∼1965년 주한 미대사관의 정무담당 참사관을 거쳐 베트남 주재 대사관 참사관, 국무성의 동아시아 ·태평양담당 차관보, 1967년 국무성 부참사관보 등을 맡았고, 1971년엔 주한 미대사를 지냈다. 그 뒤 1976년 정무담당 국무차관에 취임한 데 이어 R.레이건 대통령의 중동 특사로 활약, 미국의 대중동정책의 추이와 함께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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