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야화 김재진 신동집申瞳集편 능금꽃이 붉으레하게 필 때쯤이면 난 예없이 생각나는 백발이 성성한 노시인 중에 우리가 단연코 현당玄堂 신동집 선생을 손꼽게 됨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한여름의 찜통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폭염의 도시 대구에서 한 줄의 시에 운명을 걸고 한평생을 살다간 선생은 말 그대로의 천성적 시인이었다. 한때 도심 속의 전원을 만들어 놓고 소수 텃밭을 가꾸며 홀로 시심을 키우며 무언의 침묵으로 일관된 생애를 살다 갔다. 우리 시단에서도 평소에 과묵하기로 널리 소문이 났던 선생은 기인적인 괴벽으로 악명이 높음을 과시하면서 독설을 마구 남발함을 자랑삼아 독불장군을 자처하는 여느 작가들과 다르게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로 초지일관한 고독한 단독자이기도 했다. 스승을 부모처럼 따르며 극진히 숭배했던 문하생이었던 이한호(본명 종찬)시인은 항상 선생을 뵙는 자리에서 자세를 흩트리는 법이 없이 우리 고유의 동양적 미풍양속을 존중한 나머지 큰 절을 올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한편 경제학을 전공했던 그의 문학적 재능을 발견한 선생의 권유로 나중에 시단에 뒤늦게 진출한 이한호 시인은 첫 시집에서 두꺼비 인상이었던 선생의 모습을 팔공산 은두꺼비로 비유하므로써 일약 시단에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소동을 벌여 유머 감각이 빼어남을 과시하는 계기를 가져왔다. 하여튼 선생의 유명세를 떨치게한 팔공산 은두꺼비라는 작품은 급기야 경상도 사나이의 익살스럽고 투박한 기질을 엿보이게 하는 시집 제호와 더불어 마침내 문단일각에 소문이 무성하게 되면서 나중에 문학상까지 타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또한 현당玄堂이라는 아호 역시 어느 면에서 보면 천자문에서 따온 듯한 냄새를 은근히 풍기는가 하면 고지식할만큼 평생토록 천상의 별을 노래했던 선생의 시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일면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대구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유성다방은 전매특허가 안붙어도 날이면 날마다 선생이 드나드는 단골다방으로 유명세가 나 있었으며 언제나 감미로운 실내악이 잔잔하게 흐르는 라이브 카페 비슷한 음악다방인 셈이다. 평상시에 누구나 들리게 되면 으례껏 한눈에 얼른 보아도 대번에 알 수 있음은 한쪽 구석진 자리에 백발이 희끗한 머리에 가늘은 테의 안경을 쓴 점잖은 노신사를 발견하게 되는데 선생의 위풍당당하고 근엄한 모습에서 고사성어에 나오는 말대로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라는 말을 대번에 실감하게 된다. 현당선생은 우리 시단에서 보기 드물게 장강의 흐름 같은 굳센 의지를 가지고 유래 없는 어쩌면 팔공산 갓바위 같은 우람한 체격으로 일사불란하게 장시의 선구자로 군림해 오면서 어느 누구에게도 뒤떨어지지 않을 든든한 기반을 구축해왔다. 호흡이 긴 장시의 창작은 대부분 주제를 길게 끌고 가는 인내력을 필요로 하며 이런 경우 아무리 대가급 작가라도 큰 모험을 걸지 않고는 감히 엄두도 못 내게 되는데 그런 노력의 결정체가 다름 아닌 송별과 송신 또는 자전등의 거작들을 열거할 수 있으며 인간내면 세계의 실상을 심도 깊게 다루므로 인하여 현대 장시의 신기원을 세운 것이다. 생전에 선생의 문하에서 사사를 받아 시단에 진출한 수많은 제자중의 대다수 작가들이 도중에서 낙오되는 법이 없이 후일에 문단 일각에서 하나같이 장래가 총망 되는 유명작가로 두각을 나타내게 된 이면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음은 물론이다. 경향각지에서 발간되는 각종 문예지에는 으레껏 약방의 감초처럼 심사위원명단에 이름이 빠진 적이 없을 만큼 선생의 명성과 귄위는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대단했지만 평생을 대쪽처럼 살아온 청렴한 천성 때문에 심지어 문하에서 사사받은 제자들에게도 추천과정에서 특혜를 주기는커녕 까다롭고 엄격한 심사를 거쳐 문단에 진출시켰다. 평소에 패거리 문학 풍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맥을 통한 줄대기식 추천 사례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철두철미 배제해온 선생은 여타 원로작가들이 함부로 추천을 남발한 것과 대조적으로 고지식 할만치 공명정의하기 때문에 신인 등용문을 통과하기란 하늘에 별을 따거나 낙타가 바늘구멍을 뚫고 지나갈 만큼 어려워 아예 포기한 채 도중하차하는 사례를 빚기도 했다. 생전에 선생은 지인들을 만나는 술자리에서 부담 없이 누구나 가볍게 마실 수 있는 서양식 주류인 생맥주를 상대편에게 권유하면서 즐겨 마시는 습성이 있는 반면 음악도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였고 문단인 중의 다른 작가들처럼 독주를 마시는 법이 없었다. 대구의 텃주대감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이 널리 정평이 나 있었지만 숱한 인재를 배출하기 위해 일찍이 대학 강단에서 추진 양성에 전념하면서도 손아래 문하의 제자들에게 권위주의에 사로잡힌 다른 원로 작가들마냥 존대어 대신 함부로 반말을 상습적으로 남발하는데 비해 늘 존재말을 사용하므로써 듣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유쾌함을 전해 주는 겸양의 미덕을 생활철학의 일순위로 삼았다. 한번은 대구 근교의 문단 원로들이 두루 배석한 자리에서 술에 만취한 모 신인작가 한 사람이 오만방자한 자세로 술주정을 하면서 온통 아수라장을 만들은 불미스러운 사퇴가 발생하였는데 이런 광경을 목격하다가 참지 못한 일행 중의 어느 한 원로가 상대방을 향해 호통을 치며 타박을 주었지만 이를 목격한 선생은 오히려 야단을 치기보다 무언의 침묵을 지키므로 하여 조용히 수습하는 용단을 보여 주었다. 평생토록 서구 신사풍의 생맥주를 즐겨 마시며 오직 장시 창작에 몰두하면서 이조선비처럼 청빈도락의 삶을 살았던 현당 신동집 선생은 어느 날 별안간 예고 없이 찾아온 병마로 인해 죽음과의 피투성이 나는 투쟁을 하는 가운데 생사의 기로에서 사생결단의 투철한 작가정신을 발휘함과 아울러 주옥같은 불후의 걸작들을 탄생시키므로써 달관의 경지에 당도한 채 문학인생의 금자탑을 이룩하였다. 현대 문명의 둔탁한 기계공해가 현기증을 일으키는 해짧은 날의 백주 대낮에 장남의 문패가 나란히 달린 소음의 도시인 대구시 수성구 중동에 있는 자택 서재에서 목숨 내걸은 무서운 병마와 투쟁하며 한 편의 시가 기약 없이 찾아오기를 학수고대하며 때늦은 귀향을 서둘러야 했던 생전의 선생의 모습은 이제 찾아 볼 수가 없다.
월간 신문예 11-12월호에 발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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