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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순천 민간인 학살’ 딸지키려다…밥 해줬다고… 땅!

감효전(甘曉典) 2012. 3. 23. 08:40
[단독] ‘순천 민간인 학살’ 딸지키려다…밥 해줬다고… 땅!
[한겨레신문] 2009년 01월 08일(목) 오전 08:00   가| 이메일| 프린트 
[한겨레] ‘좌익반란’ 틀에 박힌 비극

생존자들 생생한 증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밝혀낸 ‘여순사건’의 진상은 ‘좌익반란’이란 틀에 갇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민초들의 비극의 일부를 국가기관이 구체적으로 재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진실위는 여순사건과 관련해 1차로 구례 지역 피해를 조사해 지난해 7월 발표한 데 이어 이번에 최대 희생자가 난 순천 일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순천지역에서만 군경에 의해 439명의 민간인이 집단학살됐다’는 진실화해위의 ‘진실 규명’은 순천시를 비롯해 승주읍·서면·월등면 등 주변 지역의 여러 생존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바탕으로 나왔다. 정아무개(77)씨는 증언에서 1949년 8월11일을 ‘떠올리기 싫은 악몽의 날’로 회고했다. 경찰은 이날 반란군을 토벌한다며 정씨가 살던 순천시 승주읍 유흥리에 들어와 집집마다 돌며 사람들을 끌어냈다. 정씨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머니와 단둘이 있던 집에 들이닥친 경찰은 어머니에게 밖으로 나갈 것으로 요구했다. “어머니는 저만 남겨두고는 못 나가겠다고 마당에서 버텼어요. 그러니까 한 순경이 어머니를 총으로 다짜고짜 쐈어요. 그리고 저를 쐈어요.” 정씨의 어머니는 이 일로 숨졌고, 태어난 지 100일도 안 된 정씨의 동생 역시 젖을 먹지 못해 4개월 뒤 어머니의 뒤를 따랐다.

군경 토벌대가 좌익 반군으로 위장하고 마을로 들어가 반군 협조자를 색출해 몰살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비가 많이 오는 저녁 10명 내외의 산사람 행색을 한 사람들이 마을에 와 강 반장이라는 사람의 집에 들렀어요. ‘예전에 밥을 해줘 고마워 은혜를 갚겠다’고 하며 밥을 해준 사람들의 집을 알려달라고 한 거지. 강 반장은 몇 사람의 집을 알려주었고 ….” 당시 순천 세동마을에 살던 박아무개(75)씨의 말이다. 반군들은 위장한 정부군이었다. 이날 밥을 해준 것으로 밝혀진 마을 주민들은 여자와 아이를 포함한 가족까지 전부 인근 앵기산으로 끌려가 몰살당했다. 진실화해위는 당시 군경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였다. 하지만 진실화해위는 “가해자 참고인 100여명 가운데 자신이 고문과 즉결처분 등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인정한 이는 여순 서면지서 학구출장소장을 지낸 구아무개(85)씨 한 명뿐이었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발표한 ‘경고문’이 민간인 집단 희생의 발단이 됐다는 점도 명확히했다. 이 전 대통령은 1948년10월22일 계엄령 선포 다음날 각 정부기관에 ‘남녀는 물론 아동까지도 일일이 조사해 불순분자는 다 제거하고, 조직을 엄밀히 해서 반역적 사상이 만연되지 못하게 하되, 앞으로 어떠한 법령이 혹 발포되더라도 전 민중이 절대 복종해서 이런 비행이 다시는 없도록 방위해야 될 것’이라는 지시를 내렸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이 경고문이 군경의 무리한 진압과 반군 동조자 색출로 이어져 민간인 집단학살을 부른 주된 원인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또 “이번 진실규명은 불법 행위로 숨진 이들만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고문과 모진 폭행으로 ‘정신적인 죽음’을 맞이한 이들에 대한 규명은 아직도 미완의 과제”라고 설명했다. 진실화해위는 올 상반기 안에 여수, 고흥·보성, 광양 등 다른 피해 지역에 대한 진상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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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 울
글쓴이 : hahnwoo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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