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은 가무를 하는 유녀의 형태로 고대부터 존재했었다고 합니다.
고려시대에도, 조선시대에도 기생은 궁중연회에서 노래와 춤으로 흥을 돋구었었다고 전해집니다..
대한제국 시기인 1908년에 궁중의 관기가 해체됐고 갈 곳을 잃은 기생들은 일제 강점기에 요릿집 등에서 공연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다 기생 조합이 만들어져 일본식의 권번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권번이란? 쉽게말해 기생들의 조합이라고 할수있습니다 춤과 노래를가르쳐 기생을 양성함과
요정 출입을 지휘하고 화대를 받아주는 중간 역할을 담당하였다고 합니다.
이당시 기생은 허가제여서 권번에 기적을 올리고 세금을 바쳐야 했습니다.
권번은 제2차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일제의 강압정책으로 폐쇄되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기생들은 패션리더였다고 합니다. 신문이 들어오던시절 기생들은 당시의 유행스타일을 이끄는
주체세력이었다고.... 기생들의 패션은 옛것에 새로움을 추가하던 방식
아래에 보이는사진엽서는 당시에 유행했던 스타일이라고 합니다.
이엽서의 기생이름은 김농주
남보라색 치마와 흰 저고리를 입고 숄을 걸친 김농주
20세기 초에 유행하던 화장법에 따라 앞이마를 살짝 덮은 머리카락과 입술을 붉게~
언뜻 얼굴만 보면 영화같은곳에서 나오는 일본기모노를 입고나오는 얼굴같은,..ㅎㅎ
앳되어보이는 어린 기생들 사진입니다.. 체구가 작아보이는데 10대정도로 보이네요..
예전엔 어린나이에 시집이나 장가를 갔었으니....
위사진은 권번에서 기생들에게 춤을 가르치는 한장의 사진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양옆의 두명은 배우는 사람인것같고 가운데 사람은 가르치는사람?
이당시에는 카메라가 들어온지 얼마안돼 사진찍을때 표정없이 찍은사진인것같군요
당시 기생들은 화려한 춤과 노래외에도 서예와 서화에도 능했다고합니다.
당시 계급은 천민에 속했지만 교양인으로 인정받았다고....
위사진은 서화를(글+그림)연습하고 있는모습
이런 수많은 기생들중에서도 당대 최고의 기생이라고 할수있는 장연홍이라는 기생이 있었다고합니다.
장연홍은 1911년 평양 출생이며 14살에 평양기생 권번이 되어 뛰어난 미모와 지조를 이름을 날리다가
21세에 중국 상하이로 유학길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한명의 유명한 기생 왕수복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우측)의 연인이었던 그는 당대의 대중스타 12살 때 평양 기생권번의 기생학교에
입학한 왕수복은 졸업 후에 레코드 대중가수로 진출 하여 유행가의 여왕으로 불리었다고 합니다.
이후 이효석과 결혼하여 가요계를 은퇴하고 해방후 월북하였다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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