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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일제 강점기 가수 이화자님과 노래 목단강 편지

감효전(甘曉典) 2012. 2. 10. 23:02

 

  

 

목소리가 요즈음 용어로 말하면

색시하기로 소문난 이화자는 1916년에 태어나

36년부터 그의 노래가 레코드에 취입되면서 그 레코드가

 날개 돟힌듯 팔려 나갔습니다. 1940년을 전후, 최고의 스타로

자리 메김 하면서 장안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실제로는

 별로 웃는 법도, 말도 별반 없이 쌀쌀한 편이어서 가까이 하기가

 어려웠던 가수였습니다. 40년대 초까지 인기절정이었던 이 화자는

 이 무렵부터 아편과 무리한 술, 담배에다가 원만치 못한 결혼

생활등으로 건강이 나빠져 활동에 제약을 받기 시작해서

 해방될 무렵부터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1950년 짧은 생을 마감 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가수 이화자님과 노래 목단강 편지

 

지금 듣고 계시는 목단강 편지을 비롯해서,

월명사창, 가거라 초립동, 삽살개타령, 겁쟁이 촌처녀,

꼴망태 목동, 화류춘몽 등이 그 히트곡이었습니다.  목단강은

흑룡강성에 있는 강 이름이자 도시 이름입니다. 흑룡강성은 길림성,

요녕성과 더불어 우리 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는곳입니다. 만주라고 하면 이

3개 성을 이름이고 광개토대왕때 고구려 땅이기도 합니다. 이곳은 일제 강점기

 광복군의 근거지이도 했습니다. 우리민족의 애환이 깃든곳입니다. 그때 가요계에서

  활동하셨던 이영열님의 기록에 따르면  “39년 3월 오케 그랜드 쇼 공연 때 '어머님 전

상백'을 부르는데, 관객들도 울고, 본인도 조선의 부모님이 그리워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난다.”고 추억담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 노래가 친일노래라고

하신분도 있지만 저는 친일 노래라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목단강 편지

 

 

작사 : 조명암

작곡 : 박시춘

노래 : 이화자

 

 

1. 한 번 읽고 단념하고 두 번 읽고 맹세 했소

목단강 건너가며 보내주신 이 사연을

낸들 어이 모르오리 성공 하소서

 

2. 오빠라고 부르리까 선생님이 되옵소서

사나이 가는 길에 가시넝쿨 넘고 넘어

난초 피는 만주 땅에 흙이 되소서

 

3. 밤을 새워 읽은 편지 밤을 새워 감사하며

여자의 마음 둘 곳 분접시가 아닌 것을

깊이 깊이 깨달아서 울었나이다.

 

 

 

 

춘하추동방송 이장춘

 

이화자 목단강 편지-1.wma

 

 

 

출처 : 춘하추동 방송
글쓴이 : 춘하추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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