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이래 이따금 피카소는 남 프랑스의 앙티브 지방들을 들르고 있었다. "나는 예언자라고 자처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사실 내가 여기에 와서 놀란 것은 여기에 있는 모든 것이 일찍이 내가 파리에서 그리던 그 모든 것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것이다. 이곳의 풍경은 일찍이 내것이었다고 말해야겠다."라고 피카소는 말 했다. 피카소의 독특한 조각적인 형태를 말하여 지중해적인 인간의 특색이라고도 한다. 피카소가 그린 여인은 지중해의 여신이며, 푸른 배경, 거침없이 당당한 여성상, 피카소에 있어서는 그림이란 우상에 가깝다.
"나는 전쟁을 그린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카메라처럼 한 가지 주제만을 좇는 화가가 아닌 까닭에, 그러나 내가 그린 그림 속에 전쟁이 존재한 사실은 부정할 수 없고, 필경 후세 역사가들은 내 그림이 전쟁의 영향 아래서 변화한 것이라고 지적할 것이나, 이 또한 내 알 바가 아니다." 제 2 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45년에 피카소는 이와 같은 피카소다운 말을 남겼다. 피카소는 1930년 말, 브뤼겔이나 고야의 <전쟁의 참화>를 거쳐, 이어지는 유럽의 정신적 위기에 대한 경고라도 하듯이, 전쟁의 암시적 주제를 많이 택한 것이다. 피카소에 있어서 역사는 이러한 무수한 희생에 의
하여 성립되는 시간의 경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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