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숙자 칼럼 14> 이매창의 사랑 이야기
‘이화우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하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여라’
이 시조의 지은이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여류시인의 한 사람인 이매창(1573-1611)이다. 매창은 부안 출신의 기생으로 한시에 능했을 뿐 아니라 거문고 연주 또한 뛰어났다. 그 명성이 전국에 퍼져 수많은 시인과 문장가들 그리고 사대부들이 그녀를 만나기 위해 부안을 찾았다.
그러나 그녀가 사랑한 단 한 사람의 연인은 유희경(劉希慶 1545-1636)이다. 유희경의 신분은 조선시대에 가장 업신여김을 받던 천민이다. 당대 최고의 명성을 얻은 기생이 사랑한 남자가 천민이라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매창은 부안현의 아전 이탕종의 첩에게서 태어났다. 본래 이름은 계생이고 어린 시절부터 한문 공부와 거문고 연주를 즐겼다. 기생이 된 이후에는 이름을 계량으로 바꾸고 직접 자신의 호를 지어 매창이라고 했다.
매창은 비록 기생 신분이었으나 행동거지가 바르고 절개가 곧은 여인이었다. 손님 중에는 그녀를 유혹해보려는 남자들도 많았지만 모두 허사였다. 많은 사람들이 매창을 사랑한 까닭은 그가 끝까지 절개를 지켰기 때문이다.
한편 천민 출신인 유희경은 열세 살 되던 해 아버지를 여의었다. 어린 유희경은 혼자 3년상을 치렀다. 이 사실이 당대 이름난 학자 남언경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그 뒤 유희경은 남언경에게 정통 예법을 배운다. 그러면서 천민의 신분으로는 드물게 당대 손꼽히는 상.장례(喪.葬禮) 전문가로 성장한다.
오래지 않아 그의 명성은 널리 알려졌다. 유희경은 또 한 사람의 스승으로 영의정을 지낸 박순을 만난다. 박순을 만난 것은 독서당을 드나들면서였는데, 그에게는 시를 배웠다.
매창과 유희경이 처음 만난 것은 1591년 봄날의 일이다. 남도를 여행하던 유희경이 그녀를 찾아온 것이다. 매창은 유희경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두 사람이 서로 만나기 전부터 시를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매창의 나이 열아홉 살 때의 일이다. 반면 유희경은 매창보다 무려 스물여덟 살이나 많은 마흔여섯 살이었다. 이들은 이처럼 나이 차이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유희경의 문집인 <촌은집>에는 유희경이 그때까지 뭇여성을 가까이 하지 않았는데 이 때 비로소 파계했다고 적고 있다. 그 어느 남자에게도 정을 주지 않던 매창과 뭇여성을 가까이 하지 않던 유희경, 이 두 사람은 첫 만남에서 깊게 맺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듬해 찾아온 임진왜란은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유희경이 의병활동을 결심하면서 두 연인은 이별을 맞게 된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매창은 유희경과의 사랑을 잊지 못하고 그리움 속에서 세월을 보내야 했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첫 만남이 있은 지 15년이 지나서였다. 뭇 남성을 상대해야 하는 기생과 이미 처자식이 있는 유부남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은 다시 시작된다.
두 연인에게는 시라는 공통의 언어가 있었다. 매창과 유희경은 부안의 명소를 돌아다니며 함께 시를 읊고 사랑을 노래했다. 짧은 재회의 시간이 지나고 유희경은 다시 서울로 돌아갔다. 두 번째 이별은 매창에게 더욱 깊은 그리움을 남긴다.
매창은 유희경과 함께 다니던 장소를 홀로 헤매거나 늦은 밤 거문고를 타는 것으로 외로움을 달랬다. 매창의 죽음은 이별 뒤 3년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매창은 유희경에게 자신의 죽음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것이 유희경에 대한 그녀의 마지막 사랑이었던 것이다. 그 때 나이 38세였다.
매창을 사무치게 그리워한 유희경의 시 한수도 <회계랑>에 남아 전한다.
그대의 집은 부안에 있고/ 나의 집은 서울에 있어/ 그리움 사무쳐도 서로 못보고/ 오동나무에 비뿌릴 제 애가 끊겨라
/전숙자=완주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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