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
허만하
여울 바닥에 갈앉아 살이 삭은 가랑잎 한닢. 여린 그물엽맥을 흔들며 파란 하늘과 하나가 되어 버린 고추잠자리의 눈부신 잠적.
빈 손이 잡고 있었던 것은 손가락 사이에 끼고 있었던 금빛 잠자리 날개가 흔적처럼 남긴 갈잎 서걱이는 소리였다.
바람의 그늘이 바람을 앞서서 들길처럼 흐르기 시작할 때 손은 윤곽부터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바람은 바닷가 앙당그러진 외딴 헛간 같은 내 몸을 무시로 드나들고 있다.
한때 캄캄한 사랑의 살을 용암처럼 더듬었던 손. 지금 내 손이 거머쥐고 있는 것은 저무는 하늘을 찌르고 있는 솟대 끝에서 일렁이고 있는 밤의 그늘이다. 별자리 뒤켠에서 조용히 피 흘리고 있는 시원의 어둠이다.
출처 :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글쓴이 : eve 원글보기
메모 :
'관심사 >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오라! 불 같은 사랑이여 - 권천학 (0) | 2012.02.01 |
---|---|
[스크랩] 노라 - 나혜석 (0) | 2012.02.01 |
[스크랩] 동천 -서정주 (0) | 2012.02.01 |
[스크랩] 선물 - 나태주 (0) | 2012.02.01 |
[스크랩] 귀소(歸巢) - 나태주 (0) | 2012.0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