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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5. 김형직

감효전(甘曉典) 2012. 1. 31. 22:53

5. 김형직(金亨稷, 1894년 음력 7월 10일 ~ 1926년 양력 6월 5일)

 

북조선 국가주석 김일성의 아버지이다. 좌우명은 지원(志遠)이다. 일제 강점기의 군인, 독립운동가이다.

1) 생애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태어났고, 평양 숭실학교(숭실대학교의 전신)를 졸업했다. 조만식은 그의 학교 선배라 한다. 조국광복회를 창립한 독립운동가이다. 이후 후대교육사업과 대중계몽, 동지규합을 위한 활동에 집중해 왔다. 그는 1913년 봄 직업적 혁명가로 나서면서 「지원」의 사상을 전면에 내세우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지도해왔다. 그는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이 합작해 창립한 신간회 산하의 조선국민회에 가입하고, 무장 게릴라 전투(빨치산)을 통해 독립운동을 했다. 1917년 3월23일 조선국민회를 결성하고 그 두리에 광범한 민중을 묶어 세웠다. 이것은 반일지하혁명조직으로 한국 반일민족해방투쟁을 민족자체의 힘에 의하여 전진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하여 왔다. 그는 특히 많은 사람들을 항일투쟁의 길로 인도하여 주는데 평생을 바쳤고 김일성 주석을 어린 시절부터 항일혁명의 길로 나서도록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혁명적 스승이라고도 볼 수 있다. 1918년에 일본에 대항하여 조국광복회를 설립했는데, 조국광복회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조국광복회 십대강령”을 발표한다. 그는 이 강령을 발표하면서 신분차별을 두지 않고 농민, 백정, 노동자가 협동, 일제에 대항할 것을 주장했다. 평양에서 항일운동을 펼치다 대거 조직원들이 일본에게 체포되자, 중강진으로 피신하여 게릴라전을 펼쳤다. 1925년 1월 일정의 경찰에 체포되었다 한다. 그의 체포소식에 김일성은 조선이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비장한 맹세를 다지며 결연히 만경대를 떠났다. 그 후 만주로 도망쳐 항일운동을 했다고 한다. 그의 좌우명은 지원(志遠)이다. 장남 김일성의 본명인 성주라는 이름을 직접 지었는데, 이름을 장차 나라의 기둥이 되라는 뜻에서 성주라 지었다 한다. 사후 평양시 대동군 김일성의 생가 만경대 근교에 안장되었다. 혁명활동거점을 무송으로 옮긴 후 일제경찰의 고문과 심한 동상의 후 과로 극도로 쇠약해졌지만 고려혁명당 결성과 정의부 조직에 적극 관여하며 몸소 「무송회의」도 조직 지도하면서 독립운동의 통일단결을 위하여 노력하다가 1926년 6월 5일에 사망하였다.

 2) 가족사항

관계

성명

조부

김응우(金膺禹)

조모

미상

김보현(金輔鉉)

1971년(음력) 8월 19일 ~ 1955년 9월 2일

리보익(李寶益)

1876년 5월 31일 ~ 1959년 10년 10월 18일

김형록(金亨禄)

김형권(金亨權)

1905년 11월 4일 ~ 1936년 1월 12일

강반석(康盤石)

1892년(음력) 4월 11일 ~ 1932년 7월 31일

장남

김일성(金日成)

자부

김정숙(金正淑)

김성애(金聖愛)

1928년 ~

손자

김정일(金正日)

다른 이름 : 김유라(金有羅)

김만일(金万一)

다른 이름: 김슈라(金修羅)

김평일(金平一)

김영일(金英一)

차남

김철주(金哲柱)

1916년 6월 12일 ~ 1935년 6월 14일

삼남

김영주(金英柱)

1920년 ~

일본제국 육군관동군의 통역관

장인

강돈욱(康敦煜)

1871년 ~ 1943년

처남

강진석(康진石)

?

처숙

강량욱(康良煜)

1904년 12월 7일 ~ 1983년 1월 9일

조카

김정숙

출처 : 순창 광덕교회
글쓴이 : 구원천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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