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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7. 중산리(中山里)

감효전(甘曉典) 2012. 1. 31. 01:30

17. 중산리(中山里)

도리산에서 덕암산에 이르는 산줄기가 창녕군과 밀양군의 경계를 이루고, 이 지맥에서 뻗은 여러 산줄기가 내려와 고라리와 가례리의 웅동리(熊洞里)의 경계를 이루는 중봉이 되었는데 이를 배경으로 형성된 마을이 중산리이다. 중산리는 원래 상서이동면에 예속되었으나, 1933년 행정 구역 개편 때에 무안면에 소속되었다. 행정리동명은 중산리이며,

 

자연 부락으로는 중산, 학교앞, 새터(험신골) 등이 있으며, 이 곳은 요진당(樂眞堂) 신승준 후손의 세거지이며, 현덕주(玄德周), 최만채(崔萬采)가 소거하였다고 한다.

 

재사로는 매죽당(梅竹堂) 신동현(申東顯) 추모재사인 중봉재(中峰齋)과 중봉서원(中峰書院), 낙진당(樂眞堂) 신승준(申承濬) 묘하재숙소인 낙남재(樂南齋), 참의(參議) 석성옥(石成玉) 묘하재숙소인 청덕재(淸德齋), 통찬(通贊) 박문손(朴文孫) 묘하재숙소인 경모재(景慕齋), 신현기(申鉉夔) 추모재사인 지성재(至誠齋) 등이 있는데, 중산리는 평산 신씨의 집성촌으로 일컬어진다.

 

(1) 중산(中山)

중산리의 본 마을로 뒷산인 중봉 아래쪽에 있다고 하여 중산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평산 신씨의 집성촌으로 평산 신씨들의 세거지이다.

 

○ 중봉서원터(中峰書院址)

중산 마을 서편 산기슭 일대를 말하는데, 중봉서원이 있었던 자리라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이조 고종 때 서원이 훼철되었다가 근래에 다시 복원하려 하고 있다.

 

○ 삼강동(三綱洞)

중산리 일대에서부터 그 안쪽에 있는 부락 전체를 일컬어 삼강동이라 부른다. 이는 임진왜란 때 서가정 출신의 손인갑(孫仁甲)과 그의 아들인 손약해(孫若海), 그리고 노개방(盧盖邦)과 그의 부인 여주 이씨, 고라리 출신의 사명당(泗溟堂) 등 이 곳에서 충신, 효자, 정열부가 5위나 배출되어 삼강을 빛낸 곳이라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지금도 중산리 동구의 산 밑 바위에 '삼강문'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이 부근의 들을 충절들,또는 충렬목들이라 한다.

 

○ 갈맷들(渴馬坪)

중산리 서북쪽의 장재터 아래에 있는 들 이름으로, 동래교수(東萊敎授)인 노개방(盧盖邦)이 말을 타고 가다가 이 곳에서 말에게 물을 먹였다고 해서 갈마평(渴馬坪) 또는 갈맷들, 갈마들이라 부른다고 한다.

 

○ 갈마보(渴馬洑)

중산 마을 위쪽에 있는 보로, 갈마들에 물을 댄다고 하여 붙인 지명이다.

 

○ 딱밭골(하청청, 재절골)

중산 마을 서당골에서 화봉리로 넘어가는 고개 아래쪽의 지대를 말하는데, 이 곳에 닥(楮)나무가 많이 있었다고 하여 붙인 지명이다. 옛날 이 곳에 민가가 있었다고 전하며, 재절골 또는 하청청이라고도 한다.

 

○ 배나무골(梨谷)

중산 마을 앞 석가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돌배나무가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 옛날 이 곳에서 배씨들이 살았다고 하여 붙인 지명이라고도 한다.

 

○ 석가골(石哥谷)

중산 마을 맞은 편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 석씨들이 이 곳에 우거하다가 마흘리로 이거했다고 하는데, 지금도 석씨들의 재사가 있다. 충주 석씨들이 살았던 곳이라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

 

○ 삼밭골

중산 마을의 배나무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 삼(麻),또는 인삼(人蔘)을 심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 새들(新坪)

중산 마을 동쪽에 있는 들로, 하천 부지를 개간하여 만든 논밭이 많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

 

○ 새칭잇골소

중산 마을에서 서가정으로 가는 산기슭에 위치한 곳으로, 지대가 낮아 물이 잘 고인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인데 이런 곳을 방언으로 굼이라고 한다.

 

○ 생기봉

중산 마을 앞 안산의 정상을 말하는데, 그 아래쪽에 생기바우가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바위의 아래쪽에 약물샘이 있는데, 피부병에 특효가 있었다고 한다.

 

○ 앞들

중산 마을 앞 들을 말하는데, 마을 앞에 있는 들이라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 밤밭등(栗田嶝)

중산 마을 석가곡 아래쪽에 있는 산등성이로, 밤밭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 청정골

중산 마을 서당골 북편에 있는 골짜기로, 이 곳의 층암절벽에서 맑은 물이 내려온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인데, 옛날 이 곳에 민가가 있었다고 한다.

 

○ 진등(長嶝)

중산 마을 뒷산 등성이의 이름인데, 산등성이가 길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 서재굼(書齋굼)

중산 마을 뒷산 기슭을 말하는데, 서재가 있었던 자리라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2) 학교앞(學校앞)

중산초등학교(1999년 폐교)지금은 앞에 위치한 마을로, 학교가 설립된 후 문방구점이 생기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 백성골(百姓谷)

학교앞 마을 위쪽 서편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 이 곳에 민가가 있었다고 한다. 주로 평민들이 거주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

 

○ 서당골(書堂谷)

학교앞 마을 서편에 있는 첫 골짜기로, 이 곳에 서당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 충절길(忠節길)

학교앞 마을 앞에서 무안리로 가는 길을 지칭하는데, 중산리 입구의 산기슭에 있는 바위에 삼강문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이다.

 

 

(3) 새터(험신골, 新基)

중산 본 마을 동편 산기슭에 위치한 마을로, 험성골(험성곡) 아래쪽에 형성된 마을이라고 하여 험성곡 또는 험신골이란 이름이 붙여졌으며, 또 새로 생긴 마을이라고 하여 새마(새로 생긴 마을이란 뜻)라고도 한다.

출처 : 밀양광장 ("동남권 신 국제공항" 밀양 유치, 밀양지리, 역사)
글쓴이 : 레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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