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장애 특강
양종철 |전북의대 정신과 교수 대한불안의학회 국제이사 |
30대 여성이 엘리베이터를 못 타겠다고 정신과에 왔다. 어느 날 그녀가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자신의 집이 있는 9층으로 가던 중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깜깜해졌다. 이렇게 갇혀서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터질 듯이 심장박동이 빨라졌고 호흡이 가빠져서 멎을 것 같았다. 수분이 지난 후 엘리베이터가 다시 작동되어 큰일은 없었으나, 이때부터 엘리베이터 타기가 무서워서 9층까지 항상 걸어서 올라가야 했고, 엘리베이터를 생각만 해도 기분이 불쾌해지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이 생겼다. 그녀의 진단은 불안장애, 그 중에서 특정 공포증이다. 다행히 몇 차례의 인지행동치료를 받은 후 치료되었다.
불안장애는 비교적 흔한 정신과적 질환이고 그 종류와 임상양상도 다양하다. 불안 및 불안장애는 무엇이고, 불안장애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정신의학에서는 어떻게 진단되는지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본다.
불안이란 불쾌하고 모호한 두려움과 이와 더불어 각종 자율신경계통의 과민 증상들이 동반되는 상태를 말하며, 자주 동반되는 신체증상으로는 두통, 발한, 심계항진, 가슴 답답함, 위장 장애 등이 있다. 불안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주 경험하는 증상이므로 모든 불안을 다 병적인 상태라 규정지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병적인 불안과 정상 수준의 불안은 분명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길가다가 갑자기 무서운 동물을 만나거나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겪는 불안은 정상적인 불안이라 할 수 있지만, 위의 여성처럼 엘리베이터 생각만 해도 불안이 반복되는 것은 병적인 불안으로 볼 수 있다. 어느 정도 수준의 불안은 사람들이 위험에 미리 대비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도 한다. 따라서 정상적인 불안과 병적인 불안의 차이는 그 심각도의 차이와 일상생활에 얼마나 큰 장애나 후유증을 남기느냐에 의해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특정 양상의 병적인 불안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불안장애인데, 오늘날 대표적인 불안장애에는 공황장애, 범불안장애, 사회공포증, 특정 공포증,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강박장애 등이 있다. 불안장애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의학에 도입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정신의학에서 많이 통용되고 있는 미국정신질환 진단분류체계(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 DSM)에서 초기에는 ‘불안반응(anxiety reaction)’, ‘불안신경증(anxiety neurosis)’으로 불리다가 1980년에 DSM-III가 나오면서부터 불안장애가 본격적으로 분류되기 시작했으며, 이때 비로소 공황장애와 범불안장애가 독립적인 질환으로 구분되었고,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도 새로운 불안장애의 하나로 등재되었다. 이후 약간의 변화를 거쳐, 오늘날 DSM-IV 진단체계가 정리돼 있다. 각 질환의 진단기준 및 임상양상을 간단히 보면 다음과 같다.
(1) 공황장애(panic disorder)
공황장애는 심한 불안발작과 이에 동반하는 다양한 신체증상들이 아무런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불안장애다. 공황장애에서 발생하는 불안발작은 매우 심해서 거의 죽을 것 같은 공포심을 유발하는데, 이것을 공황발작(panic attacks)이라 한다. 이 외에도 심계항진, 온몸이 떨림, 호흡곤란, 흉통이나 가슴이 답답함, 어지럼증, 오심, 발한, 질식감, 손발의 이상감각, 머리가 멍함,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나 실제로 잠깐 실신하는 것과 같은 신체증상들이 나타날 수 있다.
공황장애는 이처럼 다양한 신체증상들을 수반하므로 흔히 심근경색이나 히스테리 증상, 심지어는 간질로 오인되기도 한다. 많은 환자들이 공황발작 증상이 나타나면 매우 당황하고 극심한 공포감에 사로잡혀 병원 응급실을 찾게 되나 검사상 특별한 이상소견이 발견되지 않고 응급실에 도착한 뒤 잠시 안정을 취하면 저절로 증상이 호전되는 경과를 밟는다.
공황장애는 광장공포증(agoraphobia)이 동반되는 경우와 동반되지 않는 경우로 나눌 수 있는데, 공황장애가 없이 발병하는 광장공포증은 상대적으로 드물다. 공황장애는 아직 임상의들의 관심이 비교적 적지만, 질병의 특성상 환자들의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최근에는 그 중요성이 더해지고 있다.
(2) 범불안장애(generalized anxiety disorder)
범불안장애는 스스로 조절이 안 되는 지나친 걱정과 불안 증상이 6개월 이상 지속되는 만성적인 질병이다. 이런 지나친 걱정은 직장이나 가정생활에서의 일상적인 일과에 대해 모두 일어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안절부절못함, 피로감, 근육의 긴장, 과민함, 집중이 안 됨, 수면장애와 같은 6가지 증상 중 적어도 3가지 이상이 동반된다. 범불안장애 환자들은 흔히 일상생활의 기능이 현저히 떨어져서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기 쉽다. 환자들이 주로 신체적인 문제 때문에 병원을 찾게 되므로 아직도 정신과적 질병으로 잘 진단되지 않고 있으며, 우울증이나 물질남용, 다른 불안장애와 같은 다른 정신과적 합병증이 동반될 때만 정신과에 오는 경우가 흔하다.
(3) 사회공포증(social phobia)
사회공포증은 당혹감을 줄 수 있는 특정한 사회적 상황 또는 활동상황을 지속적으로 두려워하고 피하려 하거나, 피할 수 없는 경우엔 즉각적인 불안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사회적 불안이나 수행불안(performance anxiety)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정도가 심각하여 반복적으로 사회적 상황들을 회피하고, 그런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심각한 불안을 경험하는 경우 사회공포증으로 진단할 수 있다.
(4) 특정 공포증(specific phobia)
공포증이란 특정한 사물, 환경 또는 상황을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회피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정 공포증은 특정한 대상이나 상황에 대하여 강력하고 지속적인 두려움을 갖고 이를 피하는 것이다. 대상이나 상황이 일상생활에서 쉽게 피할 수 있는 것이면 치료받지 않고 지낸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 일상생활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5)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ost-traumatic stress)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란 심각한 외상을 보거나 직접 겪은 후에 나타나는 불안장애이다. 외상이란 전쟁, 사고, 자연재앙, 폭력 등 생명을 위협하는 충격적인 경험을 의미한다. 환자들은 이러한 외상적 경험들에 대하여 공포심과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는 느낌을 갖게 되고 반복적으로 사건이 회상되지만 다시 기억하는 것을 회피하려고 애쓴다.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에서 가장 잘 나타나는 양상은 꿈이나 반복되는 생각에서 외상적 사건을 재경험하는 것, 감정적 무감각, 자율신경계의 과잉각성 상태 등이다.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는 기간이 1개월 이상인 경우에 진단되며, 극심한 외상에 노출된 후 1개월 이내에 특징적인 불안, 해리증상 및 기타 증상들이 나타나는 것은 ‘급성 스트레스 장애(acute stress disorder)’라고 진단한다.
(6) 강박장애(obsessive-compulsive disorder)
강박장애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특정한 생각이나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다. 강박사고(obsession)가 생기면 불안이 유발되고, 이러한 불안은 강박행동(compulsion)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완화될 수 있지만, 강박행동을 중지하면 다시 불안증세가 나타나므로 불합리한줄 알면서도 강박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최근에는 이러한 분류체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특히 강박장애가 그러한데, 강박장애는 불안의 양상이 다른 불안장애에서 나타나는 불안보다는 특이적이지 않고, 불안 증상보다는 강박사고와 강박행동 및 다른 영역의 증상들을 더 현저하게 나타낼 때가 많다. 예를 들면, 신체에 대한 집착, 충동성, 반복된 행동 등이다. 이런 증상들은 강박장애의 심각성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고 지속적으로 반복되기 때문에 중요한 임상적 의미를 가진다. 한편, 오랫동안 여러 임상가들이 관찰한 바에 의하면, 신체추형장애, 식이장애, 병적 도박, 자폐증 등 몇몇 질환들에서도 강박장애처럼 강박사고나 강박행동과 유사한 증상들이 자주 관찰되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강박장애를 불안장애의 일종으로 분류하기보다는 이러한 질환들과 묶어서 강박 스펙트럼 장애(obsessive-compulsive spectrum disorder, OCSD)로 새롭게 분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범불안장애의 진단 및 분류에 대해서도 몇 가지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는데, 특히 우울증과의 공존율이 너무 높다는 점, 진단을 내리기 위해서 필요한 유병기간이 6개월로 너무 길기 때문에 진단율이 실제 임상상황과는 달리 너무 낮게 나타난다는 점 등의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점들을 반영하여 향후 새롭게 재정리될 DSM-Ⅴ에서는 우울증과 범불안장애의 경계를 규정짓는 것,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디스트레스 양상의 불안 반응과 갑작스럽게 반복되는 공포반응을 구분하는 것, 강박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재고 등에 대해서 집중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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