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심리학

[스크랩] 칼 융의 심리학적 유형 - 외향형, 내향형

감효전(甘曉典) 2012. 1. 24. 09:40

 

칼 융의 심리학적 유형  - 외향형, 내향형

 

 

1) 외향형

 

 외향형 사람의  일반적인 의식 태도

 

 중요한 결정이나 행동의 대부분이 주체의 의견에 의하지 않고 객관적인 상황에 좌우될 때 이를 외향적 태도라 하고, 이런 태도가 습성화 되어 특징을 이루면 그 사람을 외향적인 사람이라 부른다. 누구나 살아가자면 외부 세계가 주는 자료들에 따라서 자기 태도를 결정하지만 외향형은 주로 객체에 자신을 맞추며, 객체에 부합되는 방식으로 행동하고 판단해 가는 경향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즉 사는 법이 좋든 나쁘든 객관적인 사정이나 상황에서 오는 여러가지 요구에 직접 부합되는 것이면 그 사람은 외향적이다. 물론 외향형이라고 해서 주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관보다는 객체에서 오는 힘이 의식의 태도를 결정하는 경향이 훨씬 강하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외계로 향하고, 내적인 것은 외부의 요구에 의해서 억눌린다.

 

 도덕적인 행동 기준도 사회가 가지고 있는 도덕적 요구, 즉 일반적인 도덕관과 완벽히 일치한다. 일반적인 도덕관이 바뀌면 자기의 행동 기준도 바뀐다. 그 때문에 큰 갈등을 겪지 않는다. 그러므로는 그 사람은 내향형인 사람의 입장에선 곧잘 기회주의자, 지조 없는 사람, 뼈대가 없다. 비겁하다는 인상을 주기 마련이다(삼국지의 경우를 들면 조조와 같은 인물이 해당될 것이다). 물론 외향형의 입장에서도 내향형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외향형에게 내향형은 이해할 수 없는 고집불통, 시류를 외면하는 독선가, 이기주의자 라는 비난을 듣기 쉽다(조조의 입장에서 유비를 본다고 생각해보자).

 

  보다 높은 견지에서 볼 때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이 반드시 어떤 경우에나 정상적인 것이라 할 수는 없다.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이 비정상적이면 외향형의 태도는 곧바로 환경의 비정상성에 부합되는 행동을 하게 되고, 그는 사회에 함께 보편적인 생명윤리에 어긋나는 행동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그 사람은 사회와 꼭같이 멸망하게 된다. 여기에 외향형의 제약이 있다고 융은 말한다.

 

 외향형의 태도가 일방적으로 극단화될 때 자기의 주체를 소흘히 할 위험성을 안고 있다. 주관적인 사실로서 외향형의 사람이 가장 소흘하게 되는 것이 신체이다. 이것은 그 자신에게 너무 외적이고 객관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외향적인 태도가 너무 지나치면 신체가 고통을 받는데, 대게 외향형은 신체 감각의 이상화가 눈에 띄게 진전될 때에야 비로소 관심을 가지게 된다.

 

 외향형은 성격상 모든 것을 구체적, 객관적으로 보는 버릇이 있으므로 신체 증상도 그렇게 보는 것이다. 다른 한편 외향형은 지나치게 객체에 순응하는 나머지 객체에 완전히 흡수되어 주관적인 것을 잃어버릴 위험도 있다. 이런 주관적인 것은 의식에서 배제되어 분방한 환상작용으로 무의식에 억압되어 의식을 괴롭힐 수도 있는 것이다. 평소에는 아주 활달하고 적극적이고 남자다운 남자가 갑자기 건강에 대하여 염려하기 시작하고 신체기관의 조그만 이상에도 놀라는 경우가 있다면, 그 사람은 외향적 태도가 너무 극단으로 치달아 이제 다른 것으로 보충하지 않으면 안되는 단계게 이른게 아닌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융은 외향형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특징적인 신경증은 히스테리성 노이로제라고 했다. 히스테리의 특징은 항상 남의 관심을 끌고 주변에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것인데, 이것은 정상적인 외향성이 극도로 과장된 것이다. 또한 히스테리성 성격으 다른 특징은 극도의 환상작용인데, 이 때문에 히스테리 환자는 곧잘 거짓말쟁이라는 오해를 받거니와. 이는 의식의 외향적 태도를 보상하려는 무의식의 작용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삼국지에서 가장 대표적인 외향형 성격인 조조와 손책은 말년에는 극도의 히스테리와 환상작용에 시달렸음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무의식의 태도

 

 외향저인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가 주관적인 것을 무시하고, 객관적인 상황에 따라서만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건전한 외향형은 항상 적절한 보상을 내향적인 작업을 통해서 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장점인 객관적 현실 참여가 건설적이고 유익한 방향으로 실시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외향적인 태도가 지나치게 일방적이고 과장되면 외향적이 아닌 것은 모두 무의식에 억압되고, 이것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 종국에는 무의식의 엄청난 압박이 의식에 일어나게 된다.

 

 이런 경우 그 사람의 무의식은 극단적인 내향적인 경향을 띄고 있는 것이다. 무의식에 억압된 내향적 경향은 분화 발달될 기회를 잃었으므로 억압이 오래 계속될수록 미분화되고 원시적이고 고착적인 특징을 나타내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런 내향적 경향은 무의식의 가장 본능적인 충동에 의해서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건전한 주체적 판단이나 이에 입각한 행동력이 점차 마비되고, 유아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이기적 성향이 차츰 그 사람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의식의 외향적 태도가 완전하면 완전할 수록 무의식적인 태도는 유아적이고 고착적이다." 극대화된 객체지향성은 미구에는 극도의 주관적 견해에 좌우되거나 욕망에 지배당할 바탕을 마련해두고 있다. 이때 그 사람의 무의식적 경향은 단순한 어린애 같은 유치함을 넘어서는 무자비한 이기주의와, 프로이트가 말하는 근친혼적 욕망에 까지 이를 수도 있다.

 

 외향형은 현재와 바깥 현실에 집착하는 나머지 과거와 역사를 무시하는 경향도 있다. 옜날에 무슨 일이 있었고 누가 뭐라 했는지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비난하는 사람은 대표적인 외향형이다. 미국의 프로그머티즘은 상당히 이와 같은 외향성을 띤 사상이다.

 그러나 이렇게 의식적으로 끊어버린 과거와 역사는 의식에서는 없어질 지 몰라도, 무의식에서 계속 연명하며 그 개인을 포함한 전인류의 과거가 하나의 요청으로서 의식의 현실주의와 대립하게 된다. 이 점에서 융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은 언제나 자기의 전연사와 인류의 역사를 마음속에 지닌다. 역사는 한상 그 현명한 운영을

   절실히 요청한다. '지금까지의 것'은 어떻게든 '새로운 것'에서 발언된 기회가 주어져야 하며 체

   험되어야 한다. 객체에의 전적인 동화는 그러므로 억압된 소수자인 '지금까지의 것'의 원초적인

   항의에 부딪치게 된다.

 

 이렇게 외향형의 의식적 태도에 상반되는 무의식적 경향이 적절한 대상의 정도를 넘어서서 의식에 대항하여 적대적인 반장용을 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도 깨닫지 못하는 모순된 경향이 의식 표면에 나타나 그 사람의 행동을 복잡하게 하는 것이다. 객관적 규준에 따라 공정무사하게 사무를 처리하며 항상 남과 사회를 위하여 일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때때로 자기 마음대로 무엇이든 해치우려는 아집과 횡포를 부러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 경우 겉으로만 보아서는 그 사람의 어느 것이 의식적이고 어느 것이 무의식적 태도인지 구별하기가 어렵다. 누가 무슨 유형에 속하는지 행동으로만 보아서는 판단하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2) 내향형

 

 일반적인 의식 태도

 

 세계는 결코 그 자체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에게 보이는 것으로 존재하기도 하는 것이다. (칼 융)

 

 외향형의 사람들은 곧잘 모든 지각과 인식이 객관적으로 규정되는 것이라 믿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실상 주관적으로 규정되는 경향이 훨씬 더 강하다.

 

 똑같은 사물을 보아도 외향형은 객체가 그에게 요구하는 것을 주로 보지만 내향형은 객체의 인상이 주체 안에서 형성된 것에 의해서 사물을 본다. 내향적인 의식의 태도에도 외적인 조건을 인식하는 능력이 있지만 언제나 그 판단과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그 자신의 주관이다.

 이것을 두고 자기애적, 자기중심적, 주관적, 이기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순전히 외향적인 태도에서 오는 편견이라고 융은 비판한다.

 

 현대와 같은 외향적 시대에서는 내향적 태도는 외향적 태도와 동등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주관적인 생각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받기 일쑤다. 1920년대에도 그랬는지 융은 주관적이라는 말은 외향적 시대 풍조때문에 거의 비난처럼 들린다고 하고 있다. 그리하여 외향적인 태도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무기로 '단지 주관적'이라는 말은 주로 사용되나 그 말의 의미또한 충분히 검토된 적이 없다고 지적한다.

 

 주관적 요소란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존재해 와고 어느 민족에도 있어 온 것이므로 그만큼 보편적인 요소이다. 주관적 요소 또한 하나의 세계율이다. 이 위에 발을 딛고 선 사람은 객체에 근거를 둔 사람과 똑같은 지속성과 효용성과 확실성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주관적 태도가 객관적 태도나 마찬가지로 보편적인 태도임에는 틀림없으나, 객관적 태도가 우연성에 의하여 변할 수 있는 것처럼 주관적 태도도 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 하나도 절대적인 것이기보다 상대적이다. 그러므로 내향형의 특징인 주관 중심경향을 절대시하면 글자 그대로 주관주의적, 자기중심주의에 빠지게 되어, 외향형으로부터 단지 주관적이라는 비난을 받아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편협한 관점에 사로잡히게 된다.

 

 정상적인 경우의 내향적 태도는 원칙적으로 전승되어 내려온 정신구조에 순응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자아가 아니라 자아 이전에 존재하는 것, 다시 말해서 원형의 세계이며, 자아를 훨씬 능가하는 자기이다. 건전한 내향형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며 이에 입각해서 행동하고 판단하는 사람이며 자아에 매달리는 사람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내향형은 자아를 자기와 혼동해서 뒤바꿀 위험을 늘상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아를 자기의 위치로 무제한 높인다. 그 사람은 자아의 판단을 극대화하고 그것의 절대성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은 자기의 장점인 무의식에 대한 깊은 통찰을 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외향형에게도 내향적 기능이 있듯이, 내향형에게도 외향적 기능이 있다. 이 둘이 적절하게 보상함으로써 보다 효과적인 자기 관리를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내향적 태도가 극도에 다다르면 무의식에는 의식과 반대되는 외향적 경향이 지배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자아는 이와 같은 무의식의 제물이 되거나 전술한 것과 같이 자아의 팽창으로 인한 엄청난 권력욕에 사로잡히게 된다(항상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던 동오의 군주 손권이 말년에 암군이 된 이유를 상기해보자).

 

 내향형에게 객체가 왜 항상 결정적이어야 하는지 이해될 수 없는 것처럼, 외향형에게는 어째서 주관적인 입장이 객관적 입장보다 우위에 있는 것인지 의문이 될 수 밖에 없다. 외향형은 내향형이 저만 잘난 줄 아는 이기주의자나 아니면 독선적인 공상가라고 추측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외향형은 냐행형이 무의식적인 권력 콤플렉스에 영향하에 있다고 가정하기에 이를 것이다. 이런 외향형의 편견에 내향형은 어쩔 수 없이 걸려들 만한 행동을 하고 있다. 그는 그의 단정적이고 강한 표현을 통하여 마치 그가 모든 다른 의견을 처음부터 배척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 마련이다. 게다가 모든 객관적인 원인과 결과 위에 선험적으로 지배하는 주관적 판단에 대한 경직적인 믿음은 자기중심적이라는 인상을 주기에도 충분하다(칼 융).

 

 무의식의 태도

 

 내향형이 자기 자신에 입각해서 사물을 판단하고 이에 따라 행동할 때 그는 이 세계와 인간 마음의 심층적인 세계를 깊이 통찰할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이라는 엄청난 세계를 대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향형이 자기의 전인격인 자기 자신에게 입각하지 않고 단지 의식의 중심인 자아에만 사로잡히면, 의식의 경향은 독선과 오만에 사로잡히게 되고 객체에 대한 관심과 고려를 무시하게 된다. 그결과 모든 객체와의 관련성은 무의식에 억압된다. 의식의 태도가 자기 중심적인데 비해서 무의식의 태도는 객체 중심이 되며 객관적 규준, 외부 세계, 타인 등 모든 객체에 대한 관심이 자기도 모르게 커져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 모든걸 맞추려고 하는 경향이 강해지는 등의, 평소의 의식적 태도와는 모순된 특징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한 개인이 나를 내세우면 내세울수록 그 사람의 마음 깊숙한 곳에는 남에 대한 두려움이 싹트고 있는 것이다. 내향형은 자아의 우월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고의적으로 객체와의 관계를 끊어버리고 자기의 성속에 숨어들려는 경향이 강하다. 진정한 의미의 은둔과는 다른 것은 그 사람은 무의식에 놓여 있는 객관 세계와의 관계를 아주 끊어버릴 수는 없다는 데 있다. 그리고 객체로부터의 자극을 통제하기도 어렵고, 이것은 권력욕, 지배욕의 환상을 자극한다.

 

 극단적인 내향형 태도에 생기기 쉬운 신경즉은 신경쇠약증이다. 이런 사람들의 무의식을 살펴보면 수없는 권력환상을 볼 수 있다. 자아를 둘러싼 강대한 적들에게 공격을 당하며 도망치는 꿈들이 나타난다. 꿈속에서 때로는 이들과 대결하여 영웅적인 전과를 올리기도 하지만, 현실에서는 바깥세상와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에 외계와의 접촉을 피하려 하는 소심한 사람이다. 이 경우 이들은 객관세계에 있는 것, 구체적으로 타인, 현실, 정치, 법률, 경제, 행정, 단체와 같은 것들을 실지로 있는 것보다 지나치케 크게 평가하고 두려워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이 사람들이 무의식 속에 있는 강대한 외향적 경향을 외부 세계에 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향형은 그런 면에서 내향형처럼 외부 세계를 과대평가하거나 두려워 하지는 않는다.

 

 내향형은 때때로 무의식적 충동에서 자아를 방어하기 보다는 스스로 그 충동에 내맡김으로써 무의식의 외향적 경향에 지배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내향적 학자가 상아탑을 나와 사업을 시작하거나 정계에 투신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그러나 대게의 내향형은 이런 외향적 태도를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 그런 사람들을 일찍 지치고 허무해진다. 그 사람은 미구에 스스로의 외향적인 사회 역활을 포기하거나 신체적 정신적 쇠약으로 그 역활을 그만두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그가 자기의 장점인 주체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되찾으면 마치 강으로 돌아간 물고기처럼 별안간 활기를 띠고 삶의 보람을 찾는 것이다.

 

 

 

 

 

심리학적 인간학

- 칼 융의 분석심리학-

 


★ 들어가는 말 ★

 


  칼 융은 심리적으로 인간을 이해하려고 했다. 즉 자아를 통해 인식되는 의식 뿐 아니라 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무의식에도 집중하는 것이다. 오히려 겉으로 드러나는 의식보다는 인간이 다가가기 힘든 무의식이 인간의 성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라고 역설한다. 융은 인간이 무의식의 세계에 귀 기울이고 인정함을 통해 원만한 성격을 가진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고 결국은 진정한 자기를 발견할 수 있음을 기대한다.

  융의 사상을 맛보기 위해 본 발제는, 융이 사용하는 심리학적 용어들이 신학하는 우리에게 생소하기 때문에 의식과 무의식을 설명하는 용어에 대한 해설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나아가 융이 밝힌 심리유형, 성격의 발달 단계, 마지막으로 자기 실현에 대한 설명을 제시하였다.

 


★ 몸 말 ★

 


1. 의식과 무의식 - 칼 융Carl Jung의 인간 분석

  융이 말하는 인간의 심리는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심리를 구성하는 두 가지는 서로 정반대되는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으나 철저한 분리가 아닌 상보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1.1. 의식

  의식은 자아1)와 심리적인 내용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기능이나 혹은 활동이다. 외면 세계와 내면 세계에 대한 모든 우리들의 경험은 자아를 통해서 지각된다. 이들 경험들이 자아에 의해서 지각되지 않는 한, 자아에 대한 관계는 무의식적이다.

의식의 부분에 해당하는 것은, 외향성과 내향성 그리고 심리적 기능이 있다. 융은 2가지 태도와 4가지의 기능이 상호 작용하는 8가지 심리유형2)을 밝힌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8가지 중에 하나의 유형에 속하여 지배받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1.1.1. 외향성의 태도와 내향성의 태도

  이 2가지의 태도는 세상을 보는 방법이 서로 정반대이다. 외향성을 지닌 사람은 외부 세계(객관적 사물, 집단 규범 및 시대 정신 등)를 긍정적인 관계로 바라보며 성격 형성에 있어 주변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다. 반면, 내향성을 지닌 사람은 자기의 내면 세계(주관적)에 관심한다. 때문에 그의 태도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객관적인 대상은 다만 이차적이고 간접적으로 여겨질 뿐이다. 그가 직면하는 모든 상황에서 일차적으로 하는 행동은 자기에게로 돌아오는 것이다.

  융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이들 태도 가운데 어느 하나가 우세하여 행동과 의식을 지배하는 것을 발견했다. 하나는 의식의 영역에, 다른 하나는 무의식의 영역에 속한다고 본다. 그러나 무의식 영역에 속하는 하나는 무시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1.1.2. 심리적 기능

  이것 역시 우리 주변의 세계와 내부의 세계를 지각하고 반응하는 방식이다. 융은 심리적 기능을 인식 기능(감각 기능3), 직관 기능4))과 판단 기능(사고 기능5), 감정 기능6))으로 분류한다. 그리고 인식 기능을 비합리적 기능으로, 판단 기능을 합리적인 정신 기능으로 보았다. 왜냐하면 인식 기능은 옳고 그름의 판단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직접적으로 무엇을 감지하는 기능이고, 판단 기능은 주어진 관념 내용을 서로 연결하는 기능으로 규준에 따라 판단하고 결정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외향성과 내향성에서와 마찬가지로, 심리적 기능에 있어서도 한 가지의 기능만이 의식부에 있어서 지배적이고 다른 나머지 세 기능은 개인 무의식의 부분이 된다.

 


1.2. 무의식

  융은 성격에 있어서 의식부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무의식보다는 훨씬 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즉 인간 성격의 전반을 결정짓는 것은 인간의 깊은 내면에 존재하는 무의식의 세계임을 밝힌다. 따라서 인간은 온전한 자기를 발견하고 건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무의식의 세계에 귀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무의식에 대한 이해에서 융의 독특점이 발견되는데, 그것은 바로 개인 무의식과 집단 무의식을 구분 짓고 있다는 점이다.

 


1.2.1. 개인 무의식

  인간은 여러 가지 경험들을 갖는다. 그러나 순간에 그 경험들을 의식하는데 있어서 한계를 지닌다. 즉 1가지 내지 2~3가지의 경험들만을 주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의식에서 벗어난 경험들을 잠시 보관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 그 장소가 바로 개인 무의식이다. 개인 무의식은 좀더 상부에 있고 표면에 있으며, 의식 속에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으나 쉽게 의식부로 떠오를 수 있는 자료의 창고이다. 이것은 의식되었지만 억압, 억제 혹은 망각된 기억과 생각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처럼 의식부와 개인 무의식 사이에는 서로 빈번한 왕래가 있다.

  융은 개인 무의식에서 콤플렉스를 중요하게 살핀다. 핵요소7)와 연상8)으로 구성되는 콤플렉스는 하나의 공통된 주제에 관한 정서와 기억 및 사고의 무리들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전체 성격 속에 있는 한층 더 작은 성격이며, 어떤 것에 강하게 집착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열등감 콤플렉스 혹은 권력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때는 그 사람이 열등감 혹은 권력에 사로잡혀 있으며, 이러한 집착이 그의 행동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은 콤플렉스가 인식되는 의식 부분이 아니라 개인 무의식 속에 있기 때문에 자기가 콤플렉스에 의해 얼마나 통제받고 있는가를 알지 못한다. 콤플렉스는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지각하며, 어떤 가치와 흥미와 동기를 가질 것인가 하는 점 등을 결정한다.

 


1.2.2. 집단 무의식

  융에 의하면 집단 무의식은 성격의 가장 접촉하기 어렵고 깊은 수준에 존재하며, 한 개인의 성격의 토대가 된다. 융이 말하는 집단무의식은 개인의 특성보다 인류 일반의 특성을 부여하는 요소이다. 여러 가지 근원적 원형9)으로 구성된 집단무의식은 인간의 태고적 경험을 간직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표출된다. ‘나’라는 개체는 인류의 집단무의식을 공유하는 집합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고대와 현대 사이의 일치성이 발견되고 보편적 경험들이 가능해지는 것이다(예: 어둠을 두려워하는 것, 어머니상 등).


1.2.2.1. 페르소나(persona)

  페르소나10)는 일반 여론이 개인에게 고착시킨 성격의 국면, 즉 공적인 성격이다. 즉 한 개인은 각각의 상황이나 상대에 따라서 그때그때의 요구에 맞추어 행동하거나 태도를 취한다. 융은 누구나 이러한 수법을 쓰고 있으며 원만한 사회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가면을 쓰는 것이 필수적이라고까지 한다. 그러나 문제는 페르소나와 자기 본성을 동일시할 때 발생한다. 그 결과 그 사람의 자아는 오로지 페르소나와만 같아지려고 하여 다른 국면은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다. 이러한 현상이 계속된다면 페르소나와 다른 성격간의 사이에 긴장과 갈등이 생기게 되고 결국 자기로부터의 소외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1.2.2.2. 아니마(anima)와 아니무스(animus)

  우리는 종종 남성에게서 여성적인 측면을, 여성에게서 남성적인 측면을 발견할 때가 있다. 융은 이러한 특성을 원형에 귀착시켰고 아니마와 아니무스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러한 원형들은 남녀가 수없이 오랫동안 함께 생활해 온 경험으로부터 발달된 것인데, 함께 생활하는 과정 속에 양성은 모두 이성의 성격을 일부 습득하게 되었다. 이러한 원형들을 통해서 우리는 어느 정도 이성을 이해할 수 있다.

 


1.2.2.3. 그림자(shadow)

  그림자는 인간 이전의 조상으로부터 진화하면서 지녀온 원시적인 동물 본능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근본적인 것이다. 그것은 인간 본성의 양측이 모두 표현되어야만 하는 가장 악한 면과 가장 선한 면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특히 문제가 되는 원형이다.

  부정적인 면에서 그림자는 사회가 사악하고 죄가 많으며 부도덕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충동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회성을 갖춘 인간이 되기 위해서 그림자는 억압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림자를 전적으로 차단시켜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자칫 그림자의 긍정적인 면(자발성, 창의성, 통찰력, 깊은 정서 등 완전한 인간성에 필수적인 모든 특성의 원천)까지도 억누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자가 완전히 억압당하면, 성격은 경험의 원천인 과거의 본능적 지혜로부터 차단당하여 무기력하고 생기가 없어지게 된다.

 


1.2.2.4. 자기(self)

  가장 중요한 원형으로서, 융은 그것이 인생의 궁극적 목표라고 생각했다. 자기는 성격의 모든 국면의 통일성, 통합성, 전체성을 향해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자기 원형은 성격의 모든 부분을 한데 묶어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즉 성격의 중심을 의식적인 자아로부터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으로 옮겨 놓는 것과도 같다.

  완전한 자기 인식이나 자기 실현은 오랜 시간과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자기 본성을 알아야하며, 자기 본성을 알기위해 자기에 대한 객관적인 지식을 얻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성격의 모든 체계가 충분히 나타나서 발달할 때 비로소 자기 실현을 성취할 수 있다. 이것은 중년층에 가서야 비로소 이루어진다.

 


2. 성격 발달의 4단계

  융은 프로이트나 다른 많은 심리학자들과는 달리 사람의 성격은 일생을 통해 계속 발달하며 35세와 50세 사이에 결정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고 제안했다. 그는 성격 발달을 아동기, 청년 및 성인 초기, 중년기, 노년기의 4단계로 나누어 기술했다.

 


2.1. 아동기

  융은 발달 단계에서 아동기가 성격 형성에 특히 중요하지는 않다고 믿었다. 유아의 행동은 본능에 의해 지배되며 이러한 어린 시절 동안에는 심리적 문제가 없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는 의식적인 자아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아는 아동기에 초보의 상태로 처음 발달하기 시작하지만 독특한 정체 의식은 없다. 아동의 성격은 그 부모의 성격을 반영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부모는 아동에 대한 그들의 행동을 통해서 성격 형성에 도움을 주기도 하고 완전한 성격 발달을 저해하기도 한다.

 


2.2. 청년 및 성인 초기

  청년기로부터 성인 초기에 이르기까지 에네르기는 밖으로 향하고 이 기간 동안의 태도는 보통 외향적이다. 의식이 지배적으로 생의 목표는 이 세상에서 성취하여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다지는 일이다. 성인 초기는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인생에 도전하는 시기이며, 새로운 전망과 영역과 성취의 연속이다. 젊은 성인은 인생의 자극에 대해 열정적이다.

 


2.3. 중년기

  중년기는 40세 즈음에 닥쳐와 우울증과 급격한 성격 변화를 나타낸다. 이 시기는 직업에 있어서나 사회적, 가정적으로나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안정되며, 추구하던 성과가 나타나 인생을 편안하게 즐기기 시작할 수 있는 시기이다. 그러나 절망과 비참, 그리고 무가치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 때 중년기의 사람들은 인생의 의미를 잃어 공허와 무감각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융은 에네르기에서 찾고 있다. 즉 40대 이전의 준비 과정에서 충분히 방출되고 투자되던 에네르기가 40대 이후로 에네르기는 여전히 충분하지만 더 이상 소비할 곳이 없는 것이 문제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생의 다른 측면에 그것을 재투자해야 한다.

  인생의 후반기는 인생의 전반기에 소홀히 해왔던 내면적이고 주관적인 세계에 몰두해야 한다. 외향성에서 내향성으로,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관심에서 종교적ㆍ철학적ㆍ직관적인 관심으로 이동해야하며, 지금까지의 편중성은 성격의 모든 국면의 균등으로 대치되어야만 한다. 중년기의 사람은 청년기의 가치11)의 의미를 상실하였기 때문에 새로운 의미를 찾아야만 한다.

 


2.4. 노년기

  융은 노년기에 대해 거의 서술한 바가 없지만 인생의 초기와 말기는 유사한 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노년기와 아동기는 다함께 무의식이 지배적이며 성격은 그 안에 완전히 잠겨 있다. 나이가 지긋한 사람은 과거를 되돌아보아서는 안되고 그들에게도 미래를 향한 목표가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의 심리적 건강은 그것에 달려 있는 것이다.

 


3. 건강한 사람들의 성격

  융이 말하는 진정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중년기 혹은 그 이후에 나타난다. 이들은 이 시기를 겪으면서 성격 본성의 변화로부터 생겨나는 냉혹한 위기를 견디어 낸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무의식이 나타나도록 허용했기 때문에 이전에 억압되었던 본성의 측면을 인식하게 된다. 그 결과 건강한 사람들은 높은 수준의 자각을 성취하게 된다. 즉 그들은 의식과 무의식 수준에서 모두 자기 자신을 알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자기를 수용하는 것도 발달하게 된다. 자기의 장점과 약점까지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갖으며, 페르소나를 드러내고 있으나 자기와는 동일시하지 않는다.

  또한, 건강한 사람들은 성격의 모든 측면들이 통합되고 조화를 이루어 모든 것이 표출되도록 한다. 지금까지 어느 하나의 성격에 편중되던 모습을 과감히 버리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성격의 어느 한 면이 지배적이기 않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심리적 유형에 속한다고 설명할 수가 없다. 

  건강한 사람들은 융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미지와 신비를 수용하는 특성을 지닌다. 그들은 꿈과 환상에 주의하며, 한편으로는 이성과 논리를 사용하면서 무의식의 힘으로 그러한 의식의 과정을 조정한다. 더 이상 이성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넓은 우주적 세계인 무의식, 비이성적인 세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집단 무의식에 개방적이기 때문에 인간 상황을 훨씬 잘 인식하며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한 층 더 깊이 통찰 할 수 있다.

 


4. 개별화 과정을 통한 자기 실현

  융이 말하는 건강한 사람은 개별화(개성화, individuation)의 과정에 성공한 사람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되어간다는 뜻으로, 모든 사람은 이런 개별화의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자기답게 되고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건강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즉 의식의 중심으로서의 자아가 무의식의 중심에 있는 자기에 도달함으로써 본연의 자기를 실현시키는 것이다.

4.1. 이를 위해서는 대담하게 마음의 문을 열고 무의식에 직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무의식의 소리를 인식 속으로 가져와 그것이 말하는 것을 듣고 받아들이고 따라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꿈과 환상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꿈과 환상은 무의식이 자신의 모습을 의식에게로 드러내는 하나의 통로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4.2. 개별화를 위해 두 번째로 요구되는 것은 성인 초기의 물질적 목표와 그러한 목표 달성을 가능케 했던 성격 특성을 버리는 일이다. 개별화가 되면 하나의 기능이나 태도가 지배적이지 않고 모든 기능과 태도들이 표출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래야만 한다.

4.2.1. 이 때, 우리는 심리적 유형의 변화를 살필 수 있다. 융은 한 개인은 한 가지의 태도와 기능에 지배를 받는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것이 인간의 척도가 된다고 여겼다. 그러나 개별화 과정을 거친 사람은 더 이상 한 유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모든 유형들을 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4.2.2. 또 다른 변화는 원형 본질의 변화이다. 즉 페르소나,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에 변화가 일어난다. 이것은 심리적 유형의 변화에서와 마찬가지로 각 원형의 한 가지 특성에만 종속되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원형들의 특성들을 조화롭게 발산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조화를 위해서는 원형들의 특성들이 나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정-비록 부정적인 면일지라도-하는 것이 중요하며, 더 발전시켜 그것들을 나의 성격과 나의 경험들에 적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 나가는 말 ★

 


  인간들은 눈앞에 드러나는 것들만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또한 이성과 논리를 통해 가늠할 수 있고 증명할 수 있는 것들을 선호한다. 그러나 칼 융은 사람들에게 무의식에 귀기울이기를 요청한다.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는 마치 광활한 우주체계와도 같이 신비한 무의식의 세계가 있음을 역설한다. 그리고 무의식 세계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으며 우리의 전인격을 결정짓는 자기를 실현하는 것이 인간의 목표요, 올바른 인간 이해라고 말한다. 즉 진정한 자기를 발견했을 때 비로소 인간은 삶의 가치를 느끼며 건강한 사람으로 설 수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나를 발견할 때 비로소 타인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리라.

  칼 융의 심리학적 인간이해가 우리에게 독특한 의미를 던져 주는 것은 바로 집단무의식에 대한 개념이다. 전 인류는 끊임없이 조상의 특징들을 다음 세대에 유전시켜 왔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무의식세계에도 마치 유전자와 같은 원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융이 발견했다. 이 원형은 고대 조상들과 현대인들, 그 시대의 각 사람들에게서 비슷한 형태로 발견되는 보편적 경험을 간직한다. 따라서 사람들이 자기 실현 과정을 통해 공통분모적인 원형을 발견할 때, 타인과의 대화와 이해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인간을 이해함에 있어 개체의 독특성을 인정함과 동시에 하나의 집합체로서 유기적인 대화의 지평을 열어 놓았다는 사실이 칼 융의 강점인 것이다.

 

 

출처 : 성공으로 가는 자기최면
글쓴이 : 마리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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