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설(詠雪)
이 색
松山蒼翠暮雲黃(송산창취모운황)-송악산 푸르름에 저녁 구름 물들더니
飛雪初來已夕陽(비설초래이석양)-눈발 흩날리자 이미 해는 저물었네.
入夜不知晴了未(입야불지청료미)-밤들면 혹시나 이 눈이 그칠려나
曉來銀海冷搖光(효래은해랭요광)-새벽엔 은 바다에 눈 빛이 차갑겠지.
이색(李穡) 1328(충숙왕 15)~1396(태조 5)
고려말의 문신·학자.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영숙(潁叔), 호는 목은(牧隱).
아버지는 찬성사 곡(穀)이다. 15세에 부음(父陰)으로 별장(別將)의 직을 얻고,
1341년(충혜왕 복위 2) 진사가 되었다. 1348년(충목왕 4) 아버지가 원에서
중서사전부(中瑞司典簿)가 되자 조관(朝官)의 아들로 원나라 국자감의 생원이 되었다.
이색은 이제현(李齊賢)을 좌주(座主)로 하여 주자성리학을 익혔고,
이 시기 원의 국립학교인 국자감에서 수학하여 주자성리학의 요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1352년(공민왕 1) 아버지가 죽자 귀국해 토지문제·왜구대책·학교교육론·이단배척 등의
상소를 올렸다. 1353년 고려의 과거에 합격했으며, 이듬해 정동행성(征東行省) 향시(鄕試)에
1등으로 합격하고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원에 가 회시(會試)·전시(殿試)에 합격하여
응봉한림문자 승사랑 동지제고(應奉翰林文字承事郞同知制誥) 겸
국사원편수관(國史院編修官)을 지냈다. 이어 고려에 돌아와 전리정랑(典理正郞)·
내서사인(內書舍人)을 지냈다. 1355년 공민왕의 개혁정치가 본격화되자 왕의 측근세력으로
활약하면서 〈시정8사 時政八事〉를 올렸는데 그중 하나가 정방(政房)의 혁파였다.
이 일로 이부시랑 겸 병부시랑에 임명되어 문무(文武)의 전선(銓選)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색은 원나라에서의 유학과 이제현을 통하여 이 시기 선진적인 외래사상인 주자 성리학을
수용했고, 이를 바탕으로 고려 말기의 사회혼란에 대처하면서 정치사상을 전개했다.
그는 원의 주자학을 받아들였으므로 그 영향을 강하게 받게 되었다. 이(理)·기(氣)·
태극(太極)과 같은 주자학의 핵심개념을 사용하여 만물의 생성과 변화를 설명했고,
주자학의 수양론인 성학론(聖學論)을 전개했다.
그러나 주자학에서 말하는 수양론과 달리 죽음과 인간적 고뇌와 같은 초인간적·
종교적 문제는 여전히 불교에 의존했다. 또한 송대의 혈연·의리·도덕·윤리 등을 말하는
도통론(道通論)을 전개한 것이 아니고 원의 형세론적 도통론을 전개했다.
즉 그의 주자성리학의 발원지인 원의 영향과 불교의 영향 속에서 송대의 주자학과 구분되는
정치사상을 전개했다. 저서로 〈목은유고〉·〈목은시고〉 등이 있다.
장단 임강서원(臨江書院), 청주 신항서원(莘巷書院), 한산 문헌서원(文獻書院),
영해 단산서원(丹山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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