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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준중주불공(樽中酒不空 )

감효전(甘曉典) 2012. 1. 13. 03:05

※ 청대(淸代) 화가 서양(徐揚)의 <양리도(讓梨圖)>. 공융이 네 살 때 벌써 큰 배(梨)를 형들에게 양보할 줄 알았다는 고사를 주제로 그린 그림이다. ≪삼자경(三字經≫에 나오는 얘기이다.

 

座上客常滿  樽中酒不空  吾無憂矣
(좌상객상만 준중주불공  오무우의)

 

자리에는 늘 손님이 가득하고
술독에는 술이 비지 않으니
내게 걱정이 없네

 

☞ 공융(孔融)

 

- 공융(孔融)은 공자의 20세 손으로 당대의 뛰어난 문사이자 풍류재자였다. 조조가 실권을 장악한 후한(後漢) 정권에서 승승장구해 북해 태수를 거쳐 조조의 측근이 됐다.


그러나 조조를 성실히 보좌하기보다는 틈나는 대로 그를 야유하고 조롱했다. 하지만 조조는 자신을 부단히 비판하고 비아냥거리는 공융을 관대하게 대했다.


한번은 조조가 여포와 원소·원술 형제를 제거하고 천하의 패자가 된 뒤 내쳐 손권과 유비를 정벌하려고 했다.

 

이때 공융은 "지극히 어질지 못한 자가 지극히 어진 자를 치니 어찌 패하지 않겠는가!"(以至不仁伐至仁 安得不敗乎)라고 탄식했다. 이 말이 조조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마침내 멸문의 참화를 당하고 만다.

 

조조가 공융 일가를 잡아들이라고 명하자 공융은 그의 어린 두 아들을 살려 주기를 빌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은 오히려 "어버님께서는 뒤집힌 새의 둥지 밑에 온전한 알이 있는 것을 보셨습니까?"(覆巢無完卵)라며 함께 잡혀갔다고 한다.

 

이로부터 覆巢無完卵(복소무완란)이라는 말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이는 멸문의 화를 당하여 하나도 살아남는 자가 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또한 전체가 전복되면 개체가 존재할 수 없음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 근현대 중국화가 채광보(蔡光甫)의 <공융양리(孔融讓梨)> (1948年作)

 

출처 : 청경우독(晴耕雨讀)
글쓴이 : 逍遙遊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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