藥徑深紅蘚 山窗滿翠微
羨君花下醉 蝴蝶夢中飛
(약경심홍선 산창만취미
선군화하취 호접몽중비)
약초 캐러 가는 길에 붉은 이끼 짙은데
멀리 산 창에는 푸른 산 빛 가득하네
부럽구나 그대가 꽃 아래서 취하여
꿈속에 나비 되어 날아다님이
☞ 전기(錢起), <제최일인산정(題最一人山亭)>
※ 窗은 窓의 古字./翠微: 먼 산에 아른아른 보이는 푸른 빛.
※ 근현대 중국화가 부한(溥僴)의 <추국호접(秋菊蝴蝶)> 성선(成扇) (1932年作)
※ 전기(錢起): 중당(中唐) 시인. 청신수려한 시를 많이 남겨 '대력십재자(大曆十才子)'의 필두로 칭송받았다. '대력십재자'는 대력(大歷)년간과 당덕종(唐德宗) 정원(貞元) 년간에 활동했던 당나라의 대표적인 젊은 시인들을 일컫는 말이다.
친구들과 주고받은 이야기와 자연을 제재로 삼은 온화한 시를 많이 썼으며 오언율시(五言律詩)에 뛰어나 당대 사람들로부터 "앞에 심송(沈宋: 沈佺期·宋之問)이 있고, 뒤에 전낭(錢郞: 錢起·郞士元)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가 진사시험 때 지었던 시 <상령고슬(湘靈鼓瑟)> 속의 "曲終人不見, 江上數峰靑"[곡종인불견 강상수봉청: 곡이 끝나도 상수(湘水)의 여신은 보이지 않고, 강 위의 뭇 산봉우리만 푸르구나] 두 구(句)가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뒷 구절의 '江上數峰靑'은 중국 모택동(毛澤東)의 처(妻) 강청(江靑)과 결부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강청은 문화대혁명을 주도했던 사인방(四人幇)의 한 사람으로 본명이 이운학(李雲鶴/兒名은 李進孩)이다. 영화배우 남평(藍苹)이라는 이름을 거쳐 다시 강청(江靑)으로 개명했다.
그는 1937년 8월 말 중국공산당 중앙이 웅거(雄據)하고 있던 연안에 도착해 서북여사(西北旅社)에 투숙했다. 이 때 숙박부에 남평이라는 이름대신 강청(江靑)이라는 이름을 써넣었다. 이로써 한 시대를 뒤흔들었던 강청(江靑)이라는 이름이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그가 강청(江靑)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 배경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靑出於藍而靑於藍'이라는 글자에서 청(靑)자를 취했다는 설이다. 청색(靑/강청)이 남색(藍, 藍苹)에서 나왔지만 남색보다 더 푸르다(더 뛰어나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는 것. 두 번째는 앞서 언급한 '江上數峰靑'의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에서 따온 것이라는 주장이다.
※ 서병오(徐丙五, 1862∼1936)는 대구(大邱) 출신으로 근대 영남 문인화(文人畵)의 개척자다. 행서를 잘 쓰고 사군자를 잘 그렸으며, 문장·시·글씨·그림·가야금·바둑·장기·의약에 두루 달통해 팔능거사(八能居士)로 불렸다.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이 며느리인 명성황후 민씨에게 밀려나 운현궁에 칩거하고 있을 때다. 대구의 17세 젊은이 서병오가 서화(書畵)에 뛰어나고 바둑을 잘 둔다는 말을 듣고 불러 시험해본 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며 경탄해 마지 않았다 한다.
서병오의 호 석재(石齋)도 이 때 흥선군이 지어준 것이라 한다. "내 호(號)가 석파(石坡)인데, 네 호는 석재(石齋)로 하라"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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