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잘먹고 잘사는 법

[스크랩] 미녀 목욕시키기 (420회)

감효전(甘曉典) 2012. 1. 8. 19:26

 

<420회>

 

 미녀 목욕시키기

 

< 2011년 12월 7일, 수요일, 구름 많음 >

 

그동안 키운 배추로 김장을 하려고 지난 토요일에 수내로 갔다.

그런데 문제는 날씨였다.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것이었다.

비는 세차게 내렸다가 가늘게 내리다가 그칠 줄을 몰랐다.

날짜를 받아 놓은 참이라 비옷이라도 입고 해야 할 판이었다.

아내는 아무래도 힘들겠다며 걱정을 많이 했다.

난 비를 좋아하기 때문에 비를 맞고서라도 일할 생각이었다.

더 미루어 봐야 좋을 게 없었다. 날씨가 추워지면 배추가 얼지 모르니까.

가다가 농수산물 유통 센터에 들러 배추 12포기를 샀다.

사돈집에도 주고 처형집에도 나누어 주려면 배추가 더 필요했다.

배추를 사서 가고 있는데 하늘이 조금씩 맑아지기 시작했다.

산장에 도착했더니 거짓말처럼 비가 그치고 해가 나왔다.

우리 집 김장하라고 하늘도 부조하는 것 같았다.

 

 

먼저 칼로 배추 뿌리를 자르고 수레에 실어 수돗가로 날랐다.

그러면 아내는 네 쪽으로 잘라 소금에 절일 준비를 했다.

산장은 마당이 너르고 계곡 물을 마음대로 쓸 수 있어서

김장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우리 집에서 하려면 비좁을 텐데 산장은 넓어서 일하기가

편했다.

한참 일하고 있는데 사돈 부부가 왔다.

상견례 때 배추를 나누어 주겠다고 했기 때문에 오늘 오라고

연락했다.

아들과 곧 결혼할 신부는 달님반에 다니던 정미인데 내가 다리를

놓아주었다. 동화 교실을 열은 덕분에 며느리감도 얻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배추를 뽑아보니 45포기쯤 되었다. 몇 포기는 쌈배추로 쓰려고

뽑지 않고 밭에 그대로 놓아두었다.

 

뽑은 배추를 사온 것과 합쳐서 소금에 절였다.

밤새 절여 두었다가 일요일 아침에 물에 씻었다.

한 번 씻고, 두 번 씻고, 세 번 이상 씻었다.

나도 고무장갑을 끼고 아내와 같이 씻었다.

배추를 물에 씻을 때는 미녀를 목욕시키는 기분이었다.

긴 머리를 한 초록 미녀를 서너 번 이상 물에 씻고

마지막으로 물기가 없도록 꼭 머리를 꼭 쥐어짰다.

절인 배추를 미녀라고 생각하니 함부로 다룰 수가 없었다.

아내는 빨리 하려고 물에 풍덩 집어 던졌지만 나는 사람처럼

살살 다루었다.

 

 

물기를 짜서 여러 포기씩 쌓아놓을 때도 살며시 엎어 놓았다.

마트에서 산 배추는 엄청 크긴 했지만 속은 우리 배추만큼

노랗지 않았다. 내가 키운 배추는 속이 노랗게 잘 여물었다.

 나는 배추를 씻으면서 속으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자주

되뇌었다. 배추가 이렇게 잘 커주어서 감사하고, 오늘 날씨가

좋아서 김장을 잘  담을 수 있어서 감사하고, 건강한 몸으로

일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아내도 처음에는 절인 배추를 사는 게 편한데 나보고 공연히

일을 만든다고 불평했지만, 잘 큰 배추를 본 뒤부터는

김치가 맛있겠다고 좋아했다.

달팽이들이 갉아 먹어서 겉잎에는 구멍이 뚫려 있어도

속은 아무렇지 않았다. 김장하는데 별 지장이 없다면 벌레들이

조금 뜯어 먹도록 놓아두어도 되겠다.

역설적으로 벌레가 뜯어 먹어야 배추가 살아남으려고 좋은

성분을 많이 만든다고 하지 않던가!

벌레도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배추를 씻어서 포개놓고 물기를 빼는 동안에 아궁이에 불을 피워

배추잎을 삶았다. 떨어진 배추잎들을 시레기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불이 잘 안 붙어서 애를 먹었는데 한참 실랑이를 한 끝에 불이

겨우 붙었다. 끓는 물에 배추잎과 무잎을 삶아내었다.

 

 

 

배추를 다 씻은 다음에 집으로 들고 와서 본격적으로 김장을 했다.

배추 속에 치대는 양념을 보니 한두 가지가 들어가는 게 아니었다.

표고 버섯과 멸치를 끓여서 만든 육수에 찹쌀풀을 끓여서 넣고,

거기에다 새우젓과 새우, 생강, 마늘을 함께 갈아서 섞었다.

마지막으로 고춧가루와 까나리액젓까지 들어가는 걸 보고 김치가

얼마나 좋은 음식인지 알았다. 한 마디로 영양 덩어리였다.

밥 먹을 때 김치 한 가지만 있어도 여러 반찬 못지않을 것 같다.

지금 현재도 좋은데 발효가 된다면 더욱 완전한 식품이 될 것이다.

그렇게 배추에 들어갈 양념을 만든 다음에 배추잎에 그 양념을 일일이

치대야만 김치가 되었다. 김치를 담그는 과정을 보니 사람 손이 참

많이 간다. 그래서 김치맛이 손맛에서 나온다고 하나 보다.

 

 아직도 싱싱한 파드득 나물

 

아내가 김치 담그는 것을 지켜보고 나니 나도 한 번 시간을 내어

배추로 김치를 담아보고 싶었다. 언제 사무실에서 실험삼아 배추를

5포기 정도 사서 김치를 담아봐야지.

옛날에는 김치가 어떤 과정을 거쳐 밥상에 오르는지도 모르고

차려주면 그저 먹기만 했는데, 직접 거들어 보니 아내가 얼마나

수고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김치를 다 담고 나서 통에 넣고 나니 그 통이 보물 상자처럼 보였다.

갓 담은 김치로 밥을 먹어 보니 꿀맛이었다.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 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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