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현대사 재조명

<민족의 이름으로 이승만을 고발한다.

감효전(甘曉典) 2019. 3. 16. 15:17

<민족의 이름으로 이승만을 고발한다. 제 4부 :이승만의 폭력성은 극에 달했다>

횡령, 깡패고용, 폭력협박, 고소고발, 위증 등 별의별 방법을 다 고용하여 자기 이익을 챙긴 악덕사업가 이승만

하와이는 원래 일본 노동자들을 들여와 사탕수수 농장을 운영 하였으나, 이들이 숫자가 많아 지면서 노동 쟁의를 일르키니, 그 대안으로 조선의 노동자들을 데려 갔다.

한일합방 후 일본의 거부로 중지 될 때까지 7.226명의 우리 노동자가 진출 했다.

이들은 본토의 절반 밖에 안되는 형편없는 봉급 월 19달러를 받으면서도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여, 무려 1/3에 해당하는 금액을 독립 헌금으로 납부하고 있었다.

이를 알고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미 ROTC 장교 박용만은 그 힘든 일을 마치고 밤에는 군사 교육을 시켜 무장대를 양성하여, 힘으로 일본을 무찔러야 한다고 강조 했다.

그와 함께, 우리 민중을 교육을 시켜 깨우치도록 하였다.

그러다 보니,교육을 시킬만한 사람을 물색하다 보니, 조선에서 자기와 감방 동기인 이승만을 불러 들렸다.

교육의 책임자로 온 이승만은 1914년 7월14일 한인들이 모아준 여학생 기숙사 건립 기금 2.400달러로 자기 집을 샀다.

그날 자신에게 땅을 판 프레드 베링거에게 땅을 담보로 1,400달러(약 7천만원, 1년내상환, 연리8%조건. 하와이 법원자료)를 대출을 받음.

그리고 나서, 1년 후, 이승만은 자기 빚을 국민회의 박용만에게 갚으라고 욱박지름.

이에 재미를 붙인 그는 대담하게도 국민회의 재산인 한인 여학교도 단돈 1달러에 인수 자기명으로 하고, 이를 담보로 4,250달러 대출,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남학생 기숙사 담보로 3,500달러 대출.

그리고 하와이를 떠나기 전,자기 소유로 만든 국민회의 재산을 전부 팔아 큰돈을 챙겨 도망갈 준비.

 

여학생기숙사부지는 마리온 실바에게 매각, 남학생 기숙사는 스트라우치에게 매각

 

그 뙤약 볕에 어렵고 힘든 노동자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금한 돈을 횡령한 죄는 그냥 일반 현재의 형사소송법으로 봐도 징역 7년의 범죄형.

 

안현경 하와이 국민회 회장 등이 이승만(재무 담당)이 장악한 국민회의 공금집행에 문제를 제기하고, 유동면과 국민회 회원들이 회계처리가 엉터리인 물증까지 확보하고 이승만 퇴진을 요구(신한민보 불신임안 제출)하지만 이승만은 추종자(광신 깡패)들을 동원해 물증을 빼앗고 입을 막으려 함. 그는 이때, 서북 청년단의 위력을 알게 됨.

재정문제를 제기한 국민회 대의원 유동면, 김한경, 김석률, 이찬숙 을 폭동, 소요의 위험인물로 경찰에 고발함.

 

1918년 2월27일 하와이 법정에서 이승만은 증인으로 미국 판사에게 "이들은 박용만 패당이며 미국영토에 한국인 군대를 만들어서, 위험한 반일 행동을 하고, 일본군함 이즈모호가 호놀룰루에 도착하면 파괴하려는 음모까지 꾸민 이들이다. 이것은 미일사이에 중대한 사건을 일으켜 평화를 방해하려는 것이다." (신한민보) -

이런 증언은 조국에 대한 명백한 반역행위

 

<이런 인간도 둑립 운동 했다고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