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컥, 아무런 말 못했다
온통 붉게 타는 저 나무들은 누가 때렸을까
빗발치던 총탄, 난무하던 칼과 몽둥이
그 아래 흠씬, 누가, 왜, 죽이고 죽어야 하는지
울컥, 아무런 말조차 할 수 없었던
그 암흑 그 공포는 어딜 갔나
흩어진 살과 부서진 뼈는 녹아 거름이 되었나
수만의 어여쁜 생명들이 쓸려가고 쓸려가
억새 피던 언덕 찔레덩굴 무성하던 골짜기에서
온 산천 불사르며 핏빛으로 타올랐나
멱 감고 조개캐던 강과 바다에서
물고기와 더불어 물귀신 되었나
총칼 든 사람들의 명분 잔치에
가족의 목숨을 희생양으로 바치고도
살아남은 자들은 빨갱이 아닌 빨갱이가 되어
육십년의 세월을 흘러야만 했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말문을 닫고 눈물공양으로 연명해야만 했다
대 이을 손자를 잃은 할아버지도
지아비를 잃고 정신줄 놓은 새색시도
자식을 가슴에 묻고 냉기어린 삶을 살아온 부모도
이념이 무언지도 보도연맹이 무언지도 모르는
이 땅의 힘없는 무지랭이 아니었던가
이제 누가 이 오욕의 역사를 바로잡나
갈갈이 찢긴 순결한 영혼은 무엇으로 꿰매나
덧씌운 반공 이데올로기는 어떻게 벗기나
가족의 주검조차 수습할 수 없었던
이들의 세월은 누가 보상해 주나
아무리 뜨거운 불길이 가로막아도
아무리 가파른 절벽이 펼쳐져도
불길을 뚫고 절벽을 무너뜨리며
민족사의 물줄기를 바로잡는 우리들 여정의 끝은 없다
역사의 한편으로 사라진 그 뼈 감싸줄 때까지
어둠에 주저앉은 헐벗은 주검들에게
눈물로 지은 수의 한 벌 입힐 수 있을 때까지
원은희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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