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54년전의 오늘을 생각해본다.
우리집 종살이하던 산지기 만석이 아재가 아이들 아홉인가를 낳고 처자식들과 함께 흥부집처럼 움막집 짓고 물레방아 돌리며 살았던 서당골, 제사를 했다든가 먹을 게 있으면 읍내로 이사 나올 때까지 떡보따리에 싸가지고 내가 늘 심부름 갖다주러 갔었는데 어제같이 생생하다. 진달래꽃 따먹고 환하게 웃고 뛰놀던 내 고향 서당골.
만석이 아재는 본래 부잣집 아들이었고 학교도 다녔고 부인도 상당한 미인이었다. 술 좋아하고 노름 좋아해 부모로 물려받은 것 다 까먹고 이 동네 저 동네 돌아다니며 거지로 구걸하고 살았는데 증조모 조모가 움막집이라도 짓게 도와주고 산지지로 살 수 있게 했는데 이를 평생 고맙다고 한 분이다.
만석이 아재를 사람들이 다 업신여기고 무시하여 하대를했으나 우리집어른들은 그러지 않았다.우리집이 망하고 그 집 군대간 아들이 1974년경 우리집에 찾아왔을 때 아버지가 마당에서 반갑게 맞으시며 꼭 안아주고 등을 두드리며 격려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 때 그 아들이 울면서 말했다. 유일하게 자기 아버지를 무시하지 않고 존댓말 한 게 아버지였다고.
평생 노름으로 가산을 탕진했던 아버지는 어리석기는 했으나 기본적으로 상당히 따뜻하고 어진 분이셨다. 나는 살면서 아버지가 술 마시고 비틀거리며 실수하거나 남 말하거나 욕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난리통에 행불된 아버지의 아버지를 평생 그리워했었던 가여운 분이다. 아버지! 저 낳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 아버지한테 소주 사들고 찾아가고 싶으나 아직 내가 시원찮아 내비찍고도 복잡한 길을 운전해 갈 자신이 나지 않는다. 아버지가 살아계신다면 오늘 일식집에 가서 맛있는 거를 사드리고 싶다. 용돈도 드리고.ㅠ참 슬픈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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