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
약산 김원봉 장군은 연석회의차 북에 가서 내려오지 않았는데 그건 이승만이 계속 암살하려 했기때문이다. 차 드렁크에 부인과 아이 둘을 숨겨 올라갔다고 하며 1958년 김일성에게 숙청을 당해 그 분을 이기지 못해 청산가루를 입에 털어넣고 자결을 했니 어쩌니하지만 확실한 건 없고 이후 함경도 회령쪽에 소달구지를 몰고가는 것을 누가 보았다고 하니 변방에 유폐 숙청당했다가 거기서 돌아가셨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김정일은 정적을 처형을 주로 했고 김일성은 처형보다 숙청을 많이 한 걸로 알려져있다. 김원봉이 어떻게 사망한 건지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말만 있을 뿐 명확하지 않다.
김원봉이 북에서 내려오지않자 빨갱이대장이라며 그의 친형제 사촌 4명은 1948.8.22 집에서 총살당했고 몇 명은 형제들이 보는 앞에서 삼랑진인가에서 생매장해 죽이고 가까운 피붙이형제들 35명인가가 모두 학살당했으며 그의 부친은 산으로 피신했다가 1년동안 못내려와서 산에서 굶어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와 함께 활동했던 나의 조부 감영생도 빨갱이로 몰려 마산 괭이바다에 증조부 기일밤 돌덩거리달려 당시 마산형무소에 수감중이던 정치범 1,681명포함 2,300명이 산 채 생수장 학살은폐당했다. 왜 우리 조부 감영생이 그런 일을 당했는지 퍼즐이 맞춰졌다.
그 몹쓸 일을 당하신 1,681분, 2,300분 그 분들을 몇 년전부터 내가 제사를 지내고 설 추석 차례를 모시는데 그 분들이 내게 늘 추진 머리로 울며 고맙다고 절을 하는 것 같다. 내가 힘이 된다면 지금 내가 있는 절 주변땅을 다 흡수한 다음 지장전을 짓고 그 분들의 위패를 모시고 위령탑도 하나 세우고싶다.
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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