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영생
밀양 비밀독립의열단 활동 5개국어능숙 와세다대 정치학부 전체수석, 신동 ,만석군,말 잘타고 양손잡이 특사수, 주활동지역 일본 동경,국내 만주일대. 조부 감영생의 이력.
해방후 의열단이 잡혀 고문당하고 했을 때 조부는 약산처럼 월북도 할 수 없었다. 외아들 종손이었기 때문인지도.
김원봉이 해방후 이승만에게 암살위협을 여러번 당하고 악질친일경찰 노덕술에게 잡혀 뺨을 맞는등 모욕을 당하자 사흘 밤낮을 울었고 연석회의차 처자를 차 드렁크에 숨겨 월북하자 친형제 사촌팔촌까지 35명이 총살당했고 밀양바닥이 발칵 뒤집어졌을 때 서북 대한청년단 30명이 우리집에 와서
혼자 집에 계셨던 증조모에게
"빨갱이 감영생이 내놔라 어디갔냐"라며 머리채를 잡고 동구밖 당산나무까지 끌고가서 몽둥이로 때려 두개골을 함몰시켜 혼절케했다.
그 놈들이 할아버지를 찾겠다며 기관총을 들고 안채 사랑채 장독대까지 수 백발을 쏴서 한옥인 우리집을 벌집으로 만들었다.
수 백년 내려오던 수 십개의 큰 장독이 기관총에 난사 박살나서 된장 고추장 간장이 흘러나와 엉망이 아니었고 커면서 어른들이 그 때의 일을 일일이 자세히 말씀해주셨다.
조부 감영생은 항상 쌍권총을 차고 계셨으며 특사수에다 힘이 장사였으며 키가 182셨다. 난 167 그리고 국수바둑을 두셨다. 그래선지 아버지나 작은 아버지 친 고종남형제들이 바둑에 다 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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