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의학

[스크랩] 신의(神醫) 화타, 두뇌절개수술 일리 있다

감효전(甘曉典) 2012. 7. 26. 23:46

 

 

신의(神醫) 화타, 두뇌절개수술 일리 있다 ① 과학으로 보는 삼국지 (12)

과학으로 보는 『삼국지』 필자가 프랑스에서 유학 중일 때 한 프랑스인이 찾아와 다짜고짜 자기 집으로 가자며 다급하게 잡아끌었다. 영문을 몰라 무슨 일로 그러냐고 물었더니 아들이 운동하다가 다쳤으니 침을 놓아달라고 했다. 동양 사람 특히 한국 사람들은 모두 침을 잘 놓는다는 소문을 들었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어 침을 놓을 줄 모른다고 하자 그는 아주 낙담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요즘 서양인들은 조그만 바늘의 신비스런 묘기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다. 운동을 하다가 다리나 손을 삐었을 때 서양 의사들은 깁스를 해주고 2~3달 치료하는 것이 보통인데 조그마한 침을 며칠만 맞으면 감쪽같이 나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의 차이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지난 1994년 약사의 한약 조제권 문제로 야기되었던 약사와 한의사 간의 ‘한약분쟁’은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이 근본적으로 다른 원리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 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분야 중 어느 분야가 낫다고 단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쌍방의 주장이 모두 설득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이 다르게 발전하게 된 이유로는 일반적으로 동양은 서양과 달리 외과수술을 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알려진다. 이는 동양의 한의학에서 인간을 기계로 보지 않고 인간이 본래 갖고 있는 기(氣)를 중요시하여 기가 빠진 사람은 비록 살아 있다 해도 죽은 사람으로 취급했다. 특히 죽은 사람은 기가 빠진 사람이므로 기가 빠진 사람의 육체는 기가 충만한 사람들과는 기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장기도 죽은 사람의 것과 산 사람의 것이 다르다는 것이다. 동양의학에서 볼 때 죽은 사람을 해부하여 장기를 들여다본들 그곳에서 얻는 지식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으므로 외과 수술 자체가 발달할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 하비의 혈액이동 삽화, 하비는 피가 연속으로 순환한다는 것을 밝혀 근대 의학의 시발점을 열었다. 
그런데 『삼국지』를 보면 2세기 사람인 화타(華陀, 141?~208)가 조조의 병은 간단하게 치료될 수 없으므로 뇌수술이 필요하다는 설명이 있다. 놀랍게도 화타는 조조의 머리를 도끼로 갈라낸 후 질병의 근원을 제거하면 완치할 수 있다며 조조에게 뇌수술을 종용한다.

화타가 살았던 시대가 2세기인데 과연 그가 중환자를 마취시켜 개복수술, 심지어는 두뇌절개수술을 할 수 있었는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출발이 다른 서양의학과 동양의학

서양에서는 기원전 3세기 헬레니즘시대의 알렉산드리아에서부터 인체해부가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몇몇 의학자들은 이미 내장기관을 포함하여 뇌와 신경계통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해부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고대의학을 집대성한 갈레노스도 이러한 해부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인체에 관한 종합적인 이론체계를 수립할 수 있었다.

현대 과학을 실질적으로 이끈 서양사의 맥락에서 볼 때 의학의 혁명은 보통 윌리엄 하비(1576~1657)가 혈액의 순환을 처음으로 발견한 때를 시발점으로 삼는다. 그는 「심장과 피의 운동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그 전까지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피가 심장에서 온몸으로 뿜어져 나갔다가 다시 심장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주장했다.

그 당시까지는 피가 간에서 새어나와 알려지지 않은 힘에 의해 몸속으로 이동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하비는 양의 목 동맥을 잘라서 피가 솟아나오는 모습을 보고 피가 간에서 ‘새어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하비는 동물과 인간의 한시도 쉬지 않는 근육 덩어리, 즉 심장이 이 역할을 담당하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비는 죽은 사람의 심장을 해부해서 하나의 심장에 약 3/4㎗(작은 컵 한 잔 분량)의 피가 담길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심장은 수축할 때마다 70㎤의 피를 혈관을 통해 몸속으로 밀어내며 1분에 보통 70번에서 80번 박동한다. 이를 단순 계산법으로 적용하면 1분에 5ℓ, 1시간에는 300ℓ가 넘는 피를 내보낸다는 놀라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 수치는 성인 남자 몸무게의 2배에 해당하는 양으로 인간의 몸이 이렇게 많은 피를 매일 생산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사실을 근거로 하비는 피가 연속적으로 순환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동물의 심장을 당시 광산에서 사용하던 펌프와 같다고 생각했다. 인체란 다름 아닌 펌프로 생명을 이어가야 하는 일종의 기계 장치라는 뜻이다. 기계가 고장이 나면 고장 난 부분만 고치면 된다. 보다 철저한 치료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죽은 사람을 절개하고 장기 관찰을 통하여 어느 부분이 고장 났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차후에 병자를 치료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보았다.

▲ 몽펠리에 대학에서의 시체 해부 장면, 프랑스 남부 지중해의 몽펠리에 대학은 중세시대에 유일하게 시체 해부를 허가 받았다. 

서양의 현대 의학은 바로 이런 전제 아래 크게 발달했다. 간단하게 말해서 각종 질병은 인체를 보다 정확히 파악한 후 과학이 만들어내는 인공적인 화학 약품을 사용하면 치료가 된다고 생각했다. 질병의 원인을 국소적인 것으로 생각하였으므로 치료제도 질병이 있는 부분에만 적합한 것을 찾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한 가지 질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엉뚱한 다른 질병에 걸릴 위험성을 피할 수 없었다.

동양의학은 서양처럼 자연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것에 가치를 두기보다 자연에 동화되고 순응하는 것을 중요시했다. 냇물이 흘러 강물이 되고 강물이 흘러서 바다로 가듯이 우리 인체도 입으로 들어온 음식물이 소화기를 거치고 다시 장을 거쳐 항문으로 배출되는 순차적인 과정이 잘 이루어지면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고 여겼다. 더구나 경험을 중요시하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발전한 것이 한의학으로서, 조화를 제일 중시했다. 우주를 음양오행의 원리로 파악하였던 것처럼, 우리의 몸을 작은 우주로 보아 음양의 편차 없이 균등할 때 건강하다고 보았다.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조화를 이룰 때 인체가 건강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동양의학이 좋으냐 서양의학이 더 좋으냐를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양약은 무조건 나쁘다거나 한약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양약이 탁월한 효과를 보는 분야는 양약을 사용하고, 한약이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분야는 한약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 면에서 한국 사람은 외국 사람들보다 행복한 편이다. 외국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한의학을 가까이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의학이 서양과는 달리 수술을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몸에 칼을 대는 전통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동양에서도 외과수술이라 할 수 있는 몇몇 분야가 존재한다. 종기치료법, 신체기형부위수술, 자상(刺傷, 칼 등에 찔린 상처) 등에 대한 수술 등이다.

발배(發背)라고 불리는 ‘등에 난 종기’는 과거 불치병 가운데 하나이다. 고대 기록에 따르면 신라의 신무왕, 후백제의 견훤, 고려의 예종과 신종이 이 병으로 사망했으며 조선시대의 문종도 종기로 사망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획기적인 종기치료법이 있었는데 그것은 외과수술로 종기를 제거하는 것이다. 인조 때의 백광현(白光弦)이 지은 『치종지남(治腫指南)』에는 예리한 수술 도구를 사용하여 종기를 째고 여러 가지 약을 써서 뿌리를 제거하는 방법이 적혀 있다. 신동원 박사는 현대 의학에서는 간단한 것으로 보이지만 당시로서는 중국이나 일본에서 볼 수 없는 획기적인 방법이라고 적었다.

▲ 경락도(좌)와 장부도, 한의학은 인간을 기계로 보지 않고 인간이 본래 갖고 있는 기(氣)를 중요시하여 기가 빠진 사람은 비록 살아 있다 해도 죽은 사람으로 취급했다. 
고대일수록 칼이나 창 등으로 다치는 경우가 매우 흔했는데 그 중에는 내장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경우도 자주 생겼다. 조선의 『한약구급방』에는 밖으로 튀어나온 내장을 안으로 넣고 봉합하는 방법이 실려 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보다 실용적인 내용이 적혀 있다.

‘쇠붙이에 상해 끊어진 장의 양끝이 다 보일 때는 봉합하여 고칠 수 있다. 그 방법은 다음과 같다. 끊어진 장의 양끝이 다 보이면 빨리 바늘과 실로 꿰맨 다음 닭 벼슬의 피를 발라서 기운이 새지 않게 하고 빨리 뱃속으로 밀어 넣어 준다.’

바늘과 실을 써서 꿰매는 방법은 오늘날 현대의학에서 말하는 봉합술과 다르지 않다. 전쟁에서 생긴 부상자들을 위해 어떤 방법이든 외과적인 방법이 사용되었을 것임은 당연한 일로 보인다.

관리가 아닌 의사의 길을 걷다

화타는 패국(沛國, 현 안휘성호현(安徽省 毫縣)) 출생으로 본명은 부(敷), 자(字)는 원화(元化)로 중국의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에 의술을 펼친 사람이다. 첨단 의술로 무장한 현대에도 뇌수술은 간단한 일이 아닌데 그는 관우의 팔뚝을 수술하는 것보다 조조의 뇌수술이 쉬운 일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삼국시대에 동양의학의 외과수술이 절정에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사실 동양에서는 근대까지도 외과수술이 별로 발달하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2세기 사람인 화타가 뇌 절개수술도 할 수 있다는 장담에 의구심이 들기 마련이다. 나관중의 『삼국지』 내용이 원래 진실과 허구를 7 : 3 정도로 섞어 만든 것이므로 화타의 이야기를 허구로 보면 간단하다. 특히 개복수술이나 뇌 절개수술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 전제조건으로 마취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일반적으로 외과수술이 비교적 앞선 유럽에서도 본격적인 마취술을 적용한 외과수술은 19세기에 들어와서야 가능했다. 그러므로 화타가 진정으로 외과수술을 했다면 그보다 무려 1700여 년이나 앞선 것이다.

▲ 화타는 진등에 의해 효렴으로 추천되었지만 이를 거절하고 의사의 길을 걷는다 
『삼국지』에서 화타는 특별한 인물로 다루어진다. 정치가나 군인이 아닌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면에 등장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화타가 전쟁에 등장하는 많은 주인공들의 생명을 구했기 때문이다. 물론 조조의 뇌질환을 뇌 절개수술로 완치시킬 수 있다고 호언하다가 결국 살해되었지만 그를 특별히 다루는 것은 그가 『삼국지』의 영웅들에 미친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화타 시대의 식자들은 모두 관리가 되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다, 하지만 화타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의원의 길이다. 그는 백성을 위해 병을 치료하면서 계속 의원의 길을 걷겠다는 뜻을 바꾸지 않았다. 당대 중국의 상황은 매우 어지러워 청년기의 화타는 황제의 외척과 환관들의 전횡,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수없이 보았다. 진수의 『삼국지』 <화타전>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들이 나온다.

‘화타는 서주(徐州) 일대의 명사로 여러 권의 경전에 달통했고 학문이 깊었다. 패국의 상 진규(陳珪, 2세기 말)가 화타를 효렴(孝廉)으로 천거하고 태위 황완(黃琓, 141~192)이 그를 불렀지만 모두 나가지 않았다.’

화타는 정치가보다 의료인이 되고자 했다. 뛰어난 재상이 되지 않는다면 뛰어난 의원이 되어 백성을 위해 병을 치료하는 것이 더욱 빛나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여기에서 효렴이란 한나라 무제시대부터 시작한 관리 임용제도로 군(郡)과 국(國)에서 학문과 덕행이 뛰어난 인물을 추천하는데 추천 비율은 인구 12만 명 중 한 명이다.

화타가 각별히 중요한 의료인으로 부각되는 것은 그가 선대의 많은 의학 서적을 섭렵하면서 거기에 적혀 있는 내용을 섭렵했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새 것을 추가하고 이를 실천했기 때문이다. 소위 과학자적인 기질이 매우 농후한 사람으로 그가 조조에게 죽임을 당한 것도 곧고 정직한 의사답게 자기의 치료 방법을 너무 솔직하게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화타가 중년이었을 때 중국은 온통 전란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래서 그는 여러 지방을 떠돌며 한편 공부하고 한편 치료에 전념했다. 그는 서주(徐州) · 예주(豫州) · 청주(靑州) · 연주(兗州) 등지를 떠돌았다. 당시 그의 발걸음은 팽성(彭城)을 중심으로 하여 동으로는 감릉(甘陵 ,현 산동임청(山東臨淸))과 염독(鹽瀆, 현 강소염성(江蘇鹽城)), 서로는 조가(朝歌, 현 하남기현(河南淇縣)), 남으로는 광릉(廣陵, 현 강소양주(江蘇揚州)), 서남으로는 초현(譙縣, 현 안휘호주(安徽毫州)) 등에까지 이르렀다. 그야말로 과거 중국의 천하를 거의 다 누볐다고 할 정도이다.
(계속)

참고문헌 :
『의학 오디세이』, 강신익 외, 역사비평서, 2007
『중화5000년 과학고사』, 鄭士波 외, 광명일보출판사, 2005

이종호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초빙과학자 | mystery123@korea.com

 

 

 

 

 

<출처;blog.chosun.com/gc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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