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눌지왕 때 박제상(朴堤上)이 볼모로 잡혀 있는 왕의 아우 미사흔(未斯欣)을 구출하러
왜국에 갔다가 왕제(王弟)는 구하여 귀국시켰으나, 자신은 왜왕(倭王)에게 잡혀 죽음을 당하였다. 이에 박제상 부인이 세 딸을 데리고
치술령(隧述嶺:울산 ·경주 경계에 있는 재)에 올라가 슬픔과 그리움에 겨워 통곡하다가 또한 죽어 ...
출처 : 석산 강창화
글쓴이 : 영롱한 먹빛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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