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보도연맹,형무소재소자 학살사건자료

김해 한림에 '한국판 쉰들러' 2명 있었다

감효전(甘曉典) 2012. 6. 28. 20:50

 

김해 한림에 '한국판 쉰들러' 2명 있었다


최근 진실규명과 명예회복 결정이 이뤄진 가운데 경남 김해지역 보도연맹 학살사건 당시 시내 한림면에 희생자가 없었던 것은 한림면(당시 이북면)에 '한국판 쉰들러'가 많았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와 주민 등에 따르면 김해 한림지역의 쉰들러는 1950년 한림면(당시 이북면)의 최대성 면장(1906년)과 현직 김해시장의 모친인 유희씨(1917년) 등 2명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 면장은 해방 직후인 1945년 10월부터 면장직을 맡고 있었으며 한국전쟁을 거쳐 1956년까지 면장직을 수행해 왔었다.

전쟁반발 직후인 1950년 8월3일 김해경찰서 한림지서는 비상소집 명령을 내려 보도연맹원 100여명을 한림면소재 금융조합창고에 구금했다. 이 예비검속 과정에는 대한청년단과 서북청년단 등 우익단체 회원들도 나서서 경찰을 보조했다. 하지만 다른 읍.면 지역의 보도연맹원들도 예비검속돼 경찰서 유치장 등에 구금돼 있던 중 생림면 나밭고개와 상동고개, 대동면 주동리 주동광산과 숯굴, 진례면 냉정고개 등에서 대부분 학살됐다.

그러나 한림면 보도연맹원 100여명 중 학살된 사람은 CIC(육군정보국 특무대)에 직접 연행됐던 4명뿐 나머지는 학살을 당하지 않았다.

이처럼 한림면의 보도연맹원이 생명을 구한 것은 최 면장이 앞장서 반대한데다 당시 한림면 대한청년단 단장을 맡은 동생 최대홍씨를 통해 경찰을 설득한 결과 모두 탈출시켰다.

최 면장의 조카인 최윤규씨(72.김해시 한림면 명동)는 "당시 어른들이 경찰서 등에 잡혀 있는 것을 봤으며 인근 독점골짜기에서는 다른 지역 사람들이 경찰에 끌려와 학살당하는 것을 목격했다"면서 "한림면 지역의 보도연맹원은 큰아버지와 아버지 덕분에 살아 남았다"고 설명했다.

또 현직 김해시장의 모친인 유씨도 당시 최씨의 설득으로 경찰로 부터 탈출한 보도연맹원 2명을 자신의 집에 숨겨두고 함께 생활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직 김해시장인 김종간 시장은 23일 시청 내 기자실을 방문, 보도연맹원과 관련, "자신의 어머니인 유씨도 당시 보도연맹원 2명을 집에 숨겨 주었다"면서 "당시 한림면 지역 주민들은 경찰로 부터 탈출한 보도연맹원을 숨겨 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최씨의 미담은 지난 1월 진실화해위의 진상규명결정서에 공식 기록돼 있지만 유씨는 이 같은 사실을 밝히지 않아 기록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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