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비어와 달리 김대중 연행은 계엄령이나 군부와 아무 관련이 없었습니다.
당시 김대중이 신현확 총리 내각이 19일까지 총퇴진하라고 최후 통첩을 보냈었고, 학생들을 선동하 시위 구호로 최규하 대통령도 19일까지 하야하라고 최후 통첩보냈었습니다. 그런데, 5월 16일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전국대학교총학생회장 연석회의"란 이름으로 5월 22일로 예정되었던 김대중의 내란(전국적 민중봉기)을 준비하던 대학생들(김대중의 홍위병들이라 부를 만한 386운동권) 중 몇 명이 거사 일정 및 주동자 명단을 치안본부에 전달하였기 때문에 연행되었던 것입니다.
그 일은 몹시 중대한 문제였기 때문에 신현확 총리가 당시 중동 순방 중이셨던 최규하 대통령께 즉시 보고드렸고, 최규하 대통령께서 중동 순방 남은 일정을 전부 취소하시고 귀국하여 비상국무회의를 소집하셨습니다. 아래 뉴스 동영상은 당시의 그런 급박한 상황을 보여주지요.
그런데, 당시 김대중의 심복이었던 중정 총무국장 이종찬이 치안본부보다 한발 앞서 김대중을 연행하여 보호했던 거예요. 그 공을 인정받아 훗날 김대중 정부는 이종찬을 일등 공신으로 대우했습니다. 김대중 후보 선대위 위원장, 김대중 정부 인수위 위원장, 김대중 정부 국정원장 등 요직을 이종찬이 차지하였던 이유가 여기 있지요.
좀 더 자세하게 알고 싶으시면 http://study21.org/photo/518.htm 에서
김대중이 민중봉기 일으켜 최규하 대통령 강제로 하야시키고 스스로 대통령 되려고 내각 명단을 미리 만들어 두었다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을 담당했던 김대중 가문 가신(광주사태 당시 중앙정보부 수사관 이기동씨 증언)
를 참고해 보세요.
내용출처 : 본인작성
이 글은 "광주사태 (화려한 휴가) 증언자료 카페의 Q&A게시판"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 원문보기
광주사태 (화려한 휴가) 증...
http://cafe.daum.net/518cafe
출처 : 김일손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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