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규명 다 못하고 막내리는 진실화해위
일제강점기 이후 자행된 반민주적 인권유린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출범했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5년간의 활동을 마치고 31일 문을 닫는다. 진실화해위는 종합보고서를 통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과 권위주의 정부하 인권침해 사건 등 1만1175건의 사건을 조사해 이 중 8450건(85.6%)을 규명한 것으로 처리했다고 밝혔다. 또 510건(4.7%)에 대해서는 진실을 밝혀내지 못했고, 1729건(15.5%)에 대해선 각하했다. 그동안 진실화해위는 보도연맹사건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대량학살과 독재정권하에서 저질러진 납북어부 간첩사건, 강기훈씨 유서대필 사건 등이 국가나 수사기관에 의해 은폐·조작됐음을 밝혀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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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는 진실화해위의 이 같은 성과보다 불철저한 진상규명에 아쉬움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위원회는 여순사건, 보도연맹사건,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사건 등 책임자가 명확한 사건조차 가해자를 분명히 규정하지 않았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한 민간인 희생에 대해서도 위원회는 전쟁 중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벌어진 불가피한 폭격으로 정리했다.
특히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위원회의 활동이 설치목적에 역행한 것은 두고두고 오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제주 4·3사건을 ‘민중 반란’과 ‘반란’으로 표현하는 등 시대착오적 역사관을 드러낸 이영조 위원장은 최근 ‘진실규명’으로 의결한 미군의 포항지역 폭격을 진실규명 불능으로 뒤집어 위법성 논란을 자초했다.
위원회의 권고에 강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정부가 적극적인 수용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다. 지난 6월까지 위원회는 289건을 권고했지만 8건만 이행됐을 뿐이고 나머지는 추진 중이거나 사전검토 단계에 있다. 민간인 학살에 대한 배·보상 특별법 제정과 유해 발굴·안장, 과거사 연구재단 설립 등 위원회가 건의한 내용도 실행 여부가 불투명하다.
ⓒ 경향사설 ( http://www.khan.co.kr/)
‘화해’를 끌어내지 못한 채 막내린 진실위
과거사의 진실을 규명해 민족적 정통성을 세우고 국민통합을 이뤄나가는 데 기여할 목적으로 설립됐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위)가 만 5년간의 활동을 정리한 보고서를 내고 운영을 종료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법에 따라 2005년 12월 설립된 이 위원회는 항일독립운동, 한국전쟁 전후의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 위법한 공권력에 의한 인권유린 사건 등에 대한 진실규명 활동을 벌여왔다.
5년이라는 길지 않은 기간에 진실위가 이룩한 성과는 크다. 우선 1만860건이나 되는 진정사건의 80%에 이르는 8468건의 진상을 밝혀냈다. 묻혀 있던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를 찾아내고, 한국전쟁 전후 전국 각지에서 민간인들이 군경에 의해 위법하게 희생됐음을 확인했다. <민족일보> 조용수 사건처럼 국가권력에 의한 조작사건 등이 파헤쳐졌고, <동아일보> 광고탄압과 신군부에 의한 언론인 강제해직 진상도 규명됐다. 아람회 사건 등 1980년대 연이어 발생한 간첩사건이 불법구금과 가혹행위로 왜곡·조작된 것임도 밝혀냈다.
이런 진실위의 노력은 국가의 사과(2008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870여명의 민간인이 군경에 의해 학살된 울산보도연맹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를 끌어내기도 했고, 사법부의 재심 등을 통해 정의 회복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진실위가 애초 기대했던 대로 진실규명을 통한 화해의 달성이란 성과를 거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당장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연합회 등 10개 단체는 종합보고서가 부실한 내용으로 학살자들에게 면죄부를 줬다고 성토하고 있다. 학계에서도, 보고서가 군경과 좌익에 의한 희생을 병렬적으로 기술해 국가 공권력에 의한 의도적 폭력이란 성격을 희석시켰고, 미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선 미국 쪽 설명 위주로 기술해 희생의 불가피성을 부각시켰다는 비판 등이 나온다.
이런 결과는 과거 청산에 소극적인 이명박 정부 탓이 크다. 현 정부가 지명한 위원장은 진실위의 이전 결정을 뒤집는 발언도 불사하는 등 스스로 진실위를 약화시키는 데 앞장섰고, 많은 경우 가해자였던 군경은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진실위의 권고 이행을 미루고 심지어 결정을 뒤엎으려는 움직임까지 보였다. 이에 따라 진정한 과거청산과 화해는 또다시 미래의 일로 미뤄지게 됐다. 안타까운 일이다.
진실화해위, 진실을 감추다
위원회 활동 소개 영문 책자,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배포 금지
- 2010.01.28 일자 보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안팎에서 때 아닌 금서(禁書) 논란이 불거졌다. 안병욱 전 위원장 시절에 발간돼 이미 1200여 부가 배포된 <Truth and Reconciliation(진실과 화해)>라는 영문 책자를, 지난달 1일 취임한 이영조 위원장이 배포하지 못하게 하면서다.
이런 입장을 지닌 이 위원장이 국군이 양민을 학살하는 장면을 표지로 삼은 책자를 용납할 수 없었으리라는 설명이 나온다.
실제로 이 위원장은 진실화해위 상임위원 시절 이 책자 발간 작업에 참여했다. 이 위원장은 미국 하버드 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영어 실력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현석
프레시안 ( http://www.pressian.com/)
외신들 '영문책자 배포 중단' 보도... 원어민 감수자들도 소송 참여
이영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이 '번역오류'를 이유로 영문책자 배포를 중단시킨 데 반발해 번역자들이 이 위원장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 <오마이뉴스> 보도로 알려진 가운데, 외신들도 이번 사태를 잇달아 보도해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진실화해위에서 발간한 영문책자 <Truth and Reconciliation>의 번역을 감수했던 원어민들도 번역자들이 준비하고 있는 명예훼손 소송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져 이영조 위원장의 영문책자 배포 중단 사태의 파장이 점차 커질 것으로 보인다.
<시드니모닝헤럴드> <AgoraVox> 등 보도... "진실이 위험에 처했다"
지난 23일 호주 언론인 <시드니모닝헤럴드>는 '진실이 위험에 처한 한국'이라는 장문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는 <시드니모닝헤럴드>의 아시아 태평양 담당 에디터인 하미쉬 맥도날드가 쓴 기사로 진보 성향의 전임 위원장이 물러나고 뉴라이트 성향의 신임 위원장이 취임하면서 진실화해위의 활동이 위협받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는 진실화해위의 활동이 위협받고 있는 구체적인 근거의 하나로 '영문책자 배포 중단' 사태를 들었다.
<시드니모닝헤럴드>는 이 기사에서 "진실화해위의 신임 위원장이 번역오류를 근거로 자신의 전임자가 펴낸 영문책자의 배포를 중단시켰다"며 "(하지만) 논쟁적인 책자를 읽어보면 영어번역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명확해진다"고 보도했다.
<시드니모닝헤럴드>는 이영조 위원장이 영문책자의 배포를 중단시킨 배경으로 진보 성향의 전임위원장(안병욱)이 영문책자에 쓴 서문을 들었다. 이 신문은 안병욱 전 위원장이 '일본 국수주의의 극우사상과 미군의 정교한 조작기술에 영향을 받은 박정희 쿠데타 정부는 한국사회를 극우 파시스트 정권으로 이끌었다'고 서술한 대목을 구체적인 예로 들었다.
이어 <시드니모닝헤럴드>는 "그러나 영문책자는 한국군과 미군은 물론이고 북한군에 의해 저질러진 민간인 학살도 포함시키는 등 대체로 사실에 입각해 있다"며 "한국의 과거사 정리작업은 한국의 신뢰를 크게 높여왔다"고 평가했다.
또한 프랑스의 시민언론인 <AgoraVox>는 <오마이뉴스>의 보도를 직접 인용해 영문책자 번역자들이 이영조 위원장을 상대로 명예훼손 혐의로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AgoraVox>는 "이영조 위원장이 영어번역의 오류를 근거로 영문책자의 배포를 중단시켰지만 번역자들은 이를 부인했고 위원회는 잘못된 영문번역의 어떤 사례도 제시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특히 <AgoraVox>는 "독립기구가 불편한 진실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새로운 위원장 아래에서 자신들의 역사를 다시 쓰려고 하는가?"라며 이영조 위원장의 영문책자 배포 중단 지시를 "검열행위(an act of censorship)"라고 표현했다.
주한 외국인들이 주로 읽고 있는 <코리아타임즈>는 번역에 참여한 한 인사가 "뉴라이트는 과거 정권의 경제적 성과에 주목한 반면 위원회의 영문책자는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를 강조하고 있다"며 "번역 오류를 거론하는 것은 이데올로기 전쟁을 호도하기 위한 계책일 뿐"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원어민 감수자 "번역에 문제 있었다면 왜 당시에 얘기하지 않았나?"
또한 영문책자를 감수했던 원어민 A씨는 <오마이뉴스>와 진행한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영어번역 감수는 정교하게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며 "(저 외에) 세 명의 원어민 친구들이 그 영문책자를 읽었다"고 말했다.
그는 "(진실화해위 영문책자 감수는) 내가 했던 작업 중 가장 철저하게 이루어졌다"며 "다른 원어민 감수자들까지 포함하면 책이 출간되기 전까지 10~12번 정도의 감수가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위원회의 '번역오류' 해명을 반박했다.
A씨는 "진실화해위는 잘못된 영어번역의 어떤 사례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며 "당시 위원들이 영문책자를 읽어볼 수 있었는데 (위원회의 해명처럼) 영문책자에 문제가 있었다면 왜 당시에 그것을 논의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소송 참여 가능성과 관련, "법적인 이유 때문에 직접 얘기할 수 없지만 감수자들이 이 소송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만 얘기해 두겠다"고 답변했다.
한편 진실화해위의 한 관계자는 "이영조 위원장이 영문책자의 번역 오류를 찾아내라고 지시했다"며 "번역상의 오류 때문에 영문책자의 배포를 중단시켜놓고 이제야 그걸 찾아내라고 지시한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일"이라고 말했다.
- 구영식
오마이뉴스 ( http://www.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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