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뇌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평생 종교재판에 시달렸던 사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서양과학과 종교는 시작부터 적대적 관계에서 출발했다. 뿐만 아니라 창조론에 위배되는 진화론은 고사하고 지금은 인간복제 문제로 더욱 대립된 관계에 있다. 게다가 프로이드가 종교의식을 강박증 환자의 증상과 비교하고 신(하느님 아버지)과의 관계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비유했던 것만 보더라도 종교와 과학의 적대적 관계는 정신치료 영역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시작부터 지금까지 종교와는 첨예하게 대립해왔기 때문에 종교라면 일단 알레르기 반응부터 보이는 서양과학이 어떻게 불교와 만날 수 있었을까? 물론 서양의 기독교가 과학이 자기네 신앙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과학적 발견을 부정하고 적대시해온 것과 불교는 아무런 직접적 관계가 없다. 그러나 종교에 대해서 부정적 시각과 선입견을 가진 과학의 입장에서는 불교 또한 하나의 종교일 뿐이었기 때문에 서양과학이 먼저 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다가갈 가능성은 그만큼 희박했다. 당연히 불교가 먼저 과학에 손을 내밀었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달라이라마와 서양과학자들의 만남
영화 ‘티벳에서의 7년’이나 ‘쿤둔’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달라이라마는 과학이 뭔지도 몰랐던 어린 시절부터 과학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의 과학에 대한 남다른 호기심은 1987년 다람살라에서 달라이라마와 서양과학자들의 모임을 태동시켰고, 이는 과학과 불교의 교류를 보다 심층적으로 발전시킨 계기가 되었다. 이때 모임에 참석했던 아담 엥글(Adam Engle)과 프란시스코 바렐라(Francisco Varela)는 이 모임을 ‘마음과 생명연구소’라 명명했다. 이후에도 과학과 불교의 모임은 계속되었고, 달라이라마의 가르침에 힘입은 서양과학자들은 점차 서양의 기독교와 불교의 차이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서 이해된 서양불교는 동양불교와는 달리 서양의 과학적 방법론과 검증을 거치면서 저서, 논문, 강연 등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서 일반 대중 속으로 전달되기 시작했다.
물론 불교와 과학의 만남의 터전은 이보다 훨씬 이전에 싹텄다. 이를테면 헨리 스틸 올코트(Henry Steele Olcott)는 1889년에 이미 불교와 과학은 그 근본사상에서 서로 일치한다는 사실을 주장했고, 1893년 시카고에서 있었던 세계종교회의에서 스리랑카의 불교지도자 아나가리까 다르마팔라(Anagarika Dharmapala)는 무신론을 바탕으로 하는 불교야말로 과학과 종교간의 벌어진 간격을 잇는 진정한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1960년 이후에는 보다 많은 학자들이 과학과 마찬가지로 불교 또한 우주법칙(universal laws) 또는 자연법칙(natural laws)을 근간으로 삼고 있다고 강조함으로써, 자연의 법칙이 아닌 창조론을 주장해온 서양의 기독교나 유대교와의 차별화를 인식시켜왔다. 알렌 월레이스(Alan Wallace)는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 철학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정신치료 분야에서도 명상의 효과가 꾸준히 검증되어 왔다. 그렇게 다시 십수년이 흐르면서 이제 그들에게 불교는 과학이고 불교가 심리학의 원조라는 이해에 도달하게 되었다.
진리를 받아들이는 올바른 태도
개인적으로 뇌과학과 불교의 만남은 바로 ‘불교가 과학이고 심리학의 원조’라는 선언에 결정적 쐐기를 박고, 서양의 기독교가 만들어 놓은 종교의 비과학적 틀과 이미지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분이 바로 달라이라마라는 사실 또한 반론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달라이라마는 당신의 저서나 만남을 통해서 만일 과학이 불교의 믿음 가운데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객관적이고 과학적 방법으로 증명한다면, 설사 경전에 나와 있고 또 수천년간 믿어왔던 것이라 할지라도 불교는 그것을 기꺼이 버려야만 된다고 강조해 왔다.
물론 달라이라마는 자신의 그러한 주장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올바른 태도로서, 그 어떤 위대한 스승이나 성전의 가르침도 스스로의 체험, 객관성, 논리를 바탕으로 한 검증 없이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밝혀왔다.
그런데 서양의 불자들과 많은 지식인들로부터 이 시대 최고의 지혜와 자비를 갖춘 생불로서 추앙받는 달라이라마지만, 그의 견해가 처음부터 서양과학자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졌던 것은 아니다. 일찍이 달라이라마는 과학자들과의 만남에서 수차례 ‘마음이 뇌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지만, 당시만 해도 마음은 단지 뇌의 작용에 불과하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서양과학자들의 호기심이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신경과학 분야에서는 ‘성인의 뇌신경조직은 고정되어 있고, 새 뉴론을 생성하지 않으며,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견해가 거의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2005년 신경과학회 정규모임에 달라이라마를 초대하기로 했을 때, 무려 500명에 달하는 회원들이 종교가 과학학회에 설 자리는 없다고 주장하면서 달라이라마의 참석을 반대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비록 그 가운데 상당수의 주동자들이 중국계 과학자였기 때문에 다분히 정치적 이유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종교에 대한 과학의 회의적 측면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어쨌든 달라이라마는 ‘승려가 왜 그렇게 신경과학에 관심이 많냐’는 질문에, “영성과 과학은 서로 다르지만, 둘 다 진리를 추구한다는 큰 목적에서 보면 진리에 접근하는 연구방법상 상호보완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대답했다.
뇌는 항상 변화가능하다
1998년 달라이라마는 그의 베스트셀러 『행복의 기술(The Art of Happiness)』에서, ‘뇌는 움직이지 않고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항상 변화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2004년 과학자들과의 모임에서 달라이라마는 불교의 마음수행을 통해서 일어나는 정신적 변화는 바로 뇌의 가소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때는 리차드 데이비슨(Richard Davidson)을 위시한 여러 명의 학자들이 이미 달라이라마와의 만남을 통해서 ‘우리의 정신과정은 뇌의 작용일 뿐, 마음이 뇌를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전통적 견해를 버리고, 뇌파검사(EEG)나 뇌사진(fMRI-뇌기능자기공명영상) 촬영을 통해서 명상수행이 뇌의 특정 부위를 자극하고 그 활동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연구가 상당히 진척된 상태였다. 한편 이들과 같은 그룹의 일원인 데니엘 골만(Daniel Goleman)은 명상수행의 효과에 착안해서, ‘성공적 삶의 바탕은 지적능력인 아이큐(IQ)가 아니라 정서능력인 이큐(EQ)’라는 주장의 글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그런데 이쯤에서 일어나는 한 가지 의문점이 있다. 왜 달라이라마는 서양과학자들을 향해서 ‘마음이 뇌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계속해서 제기했을까? 왜냐하면 현대는 과학이 ‘실제, 진여’를 발견하는 지배적 방식이기 때문에 과학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살아있는 불교를 만든다는 사실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제행무상(諸行無常)의 도리를 깨우친 그로서는 우리의 뇌가 아동기에 일단 형성되고 나면 평생 바뀌지 않는다는 서양의 신경과학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상(無常)·무아(無我)·공(空)의 견지에서 보면, 우리의 뇌는 60세, 70세가 되어도 우리의 마음수행과 생각에 따라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능력(neuroplasticity)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확신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달라이라마가 서양과학자들을 향해서 ‘마음이 뇌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라는 화두를 던진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즉, ‘어떻게 하면 우리 스스로를 보다 자비롭고 친절한 사람, 덜 이기적이고 덜 공격적인 사람으로 훈련함으로써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 하는 화두 때문이다. 나아가서 정신치료와 자녀교육, 사회문제 예방교육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결국은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서 마음수행을 보다 효과적으로 이루고자 함이고, 궁극적으로는 중생의 아픔을 더 많이 더 효과적으로 치유하려는 보살의 자비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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