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보도연맹,형무소재소자 학살사건자료

[스크랩] 정판사 위폐사건 총살당한 14명 중 한명의 친자가

감효전(甘曉典) 2012. 3. 29. 21:54

박기창의 친자가 호주에 생존해 있습니다.

1945년 해방되어 제 부친 박 기(터) 창(빛날) 께서는 정판사라는 곳에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고향 본적은 층청도 단양군 단양읍 상진리라고만 국가기록원으로부터 알아 내었습니다.
제 어머니는 늘 아버님이 충주분이라고 하셨습니다.

 

1946년 그 건물에 공산당 간부 이관술(이 분은 항일운동가이며 당시에 여운형 김구 선생님과

같은 레벨의 정치가였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옆사무실에 있었답니다. 이승만 정권과 미군정은

남한내의 좌파세력을 척결하기 위해서 정판사가 조선공산당 이관술선생에게 위조지폐를 만들어

공급했다는 죄목을 만들어 정판사직원 전원을 위조지폐범으로 갑자기 체포했습니다.

 

그 속에 제 부친이 같이 끌려 들어가 모진고문으로 1948년 반신불구가 되어 출옥하였답니다.

이 곳에서 그분의 재판이 진실인가 조작인가를 밝힐려는 논쟁은 피하겠습니다.

국가기록원으로부터 입수한 내영은 1948년 미수범으로 판결받아 석방 되었습니다. 그것이

법률상 전부라는 것이였답니다.

 

저는 분명히 물었습니다. "그 당시에 말하는 범죄행위로 인한 형은 그것으로 모두 끝입니까?

더 이상의 국가형벌은 없었습니까?" 거기에 대한 답변은 그렇다는 것이였습니다. 

그런데 육이오가 발발하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총을 든 젊은 아이들과 서북청년단이라는

사람들에 의해 목포로 끌려가 청살로 끝이 났습니다.

 

모든 법적조치가 끝났음에도 또다시 육이오가 나자 이승만이라는 자가 비밀지령으로

전원 총살을 지시했습니다. 그 서북청년단원 중 한명이 제 어머니를 꿰차고 저를

친자식으로 호적에 올려놓고 호의호식 하다가 국회의원도 몇번 나오고 잘살다고

희한하게 갔습니다.

 

저는 법과 대학졸업후 호주로 와서 이태껏 30년을 살아왔습니다. 제부친의 친척 되시는

분이나 알고 계신분 연락을 부탁을 드립니다. 제 부친께서는 위로 누님이 한분 계셨다는데

그 자손들을 찾고 싶습니다.

 

목포에서 총살 당하신후 어디엔가 묻히셨을 그 유골을 찾아내어 유전자 감식으로

친자를 증명하고 잃어버린 성을 찾고 싶습니다.

 

 

 

  

출처 : 전국 유족회
글쓴이 : 요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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