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08.08 김대중 납치사건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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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http://blog.daum.net/gjkyemovie/11328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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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평화상 선정 : http://blog.daum.net/gjkyemovie/1133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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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미행했던 현장 납치조 1973년 8월 8일 오후 1시 19분 행동 개시. 6명이 도쿄 그랜드 팔레스 호텔 2212호에서 양일동을 만나고 나오는 김대중을 납치해 2210호로 끌고 들어감.
침대에 눕혀 마취제로 기절시킨 뒤 오사카 오카모토 빌딩 302호 총영사관 숙소로 알려진 중앙정보부 안가로 옮김. 코만 남기고 화물 포장용 테이프로 얼굴 전부를 포장하고 9일 새벽 1시쯤 용금호 선창 밑 타기실에 감금.
9일 오전 8시 45분 오사카항 출발, 12일 오전 7시 부산 부두 진입. 구급차로 위장한 수송차량에 태워 서울의 중정 안가에 감금. 13일 밤 납치 129시간 만에 동교동 집 앞에서 풀어줌.’
이상은 박정희 유신체제 하에서 외국 땅에서 자행된 '김대중 납치사건'의 과정이다. 일본 경찰청의 조사 결과 한국 정부가 개입됐음이 드러났으나 정부가 이를 완강히 부인해 한·일 외교가 교착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사건 발생 30여 년이 지나 여기저기에서 사건의 전말을 밝히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은 없다. 국정원 과거사위의 조사에서 중정 요원에 의한 조직적 범행이었음이 밝혀진 상태이다.
/매일신문
동경 김대중 납치 사건 상보
동아일보 보도/사건내막 이철희 증언과 문헌/납치 계획 실행 과정/중요 쟁점/사람들
1. 동아일보 특종 보도
동아일보(98/02/19)가 김대중 납치 사건에 대한 상보를 특종 보도했다. 인용 문건은 '케이티 사건 행동별 관계 인사 일람표'와 박정희 대통령 보고 필(79/03/10)이라고 김재규 사인이 들어 있는 '케이티 공작 요원 실태 조사 보고'서이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이철희 전 중앙정보부 차장(사건 후 유정회 국회의원, 장영자와 결혼 후 장영자/이철희 사건 주역)을 직접 인터뷰했다.
이철희는 5.16 전야 방첩대장이었으므로 당시 참모총장인 장도영이나 국방장관인 현석호에게 박정희의 쿠테타 음모 사건을 보고 했느냐, 안했느냐 하는 점과 김대중 납치 사건 당시 관여했느냐 안했느냐로 글 쓰는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으며, 아직도 장영자 경제 사건과 그의 역할이 무엇인지 의문 투성이로 남아 있다.
지난 20 여 년간 여러 루트로 이철희에 대한 탐문 증언을 계속한 바 김대중 납치 사건에 대한 내가 들을 수 있는 이철희의 말은 '죽이려고 했으면 못죽였겠느냐'는 단 한 마디였고, 이번 동아일보 보도에서도 이 문제가 제기 되어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취임 직전에 터져 나온 당사자 사건에 대하여 사실 규명은 필요하나 처벌은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사건 지휘 내막
-이후락 부장이 불러서 궁정동 안가에 갔다.
-일본에 있는 김대중 문제 이후락이 꺼내
-죽일가 살릴가 문제도 나와
-이후락이 동경에 있는 김대중을 무조건 데려오라고 명령
-하태준 국장과 이철희가 두 차례에 걸쳐 반대했으나 이후락은 '나는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아느냐'고 핀잔하여 어떤 상부 지시가 있는 것 같아 반대할 사안이 못된다고 판단
-박정희 지시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
-하태준 해외공작국장이 총괄하고 윤진원 공작단장이 현장 지휘를 했으며 김기완 주일 공사 등이 동원되었다.
-동원된 인원은 동경에서 25명, 오사카와 부산에 오는 용금호 선상 21명 등 총 46 명이 직접 행동에 나섰다.
-실행팀은 9개조로 편성되었다.
3. 납치 계획 실행 과정
-사전 미행 실시
-주일한국대사관 유충국 홍성채 유영복 김기도 등
-73.8.8.13:19 현장 납치조 행동 개시
-6명이 그랜드 팔레스 호텔 2212호실에서 양일동을 만나고 나오는 김대중을 납치
-2210호로 끌고 들어감
-침대에 눕히고 마취제를 묻힌 수건으로 코 막음
-엘레베이터에 실어 지하주차장으로 감
-총책 윤진원이 현장 지휘, 대사관의 한춘 김졍찬 홍성채 그리고 유영복 유충국 가담
-현장에서 김병찬과 유충국은 사라짐
-행동대 행동 개시/동경에서 오사카로 호송
-6명중 나머지 4명이 승용차 뒷자리 바닥에 깔고 오사카로 감
-운전은 유영복
-차내 지휘는 윤단장이
-대여섯 시간 후 오사카 중정 '안의 집' 안가 도착
-오카모토 빌딩 302호 총영사관 숙소로 알려짐
-안가에서 도쿄에서 온 4명과 박승민 김기도 합류
-안가 안내 연락책 김명기 박성일 김봉실/타자수 등
-윤이 엘리베이터로 다른 다다미방으로 이송
-코만 남기고 화물 포장용 테이프로 얼굴 전부 포장
-차에 태워 오사카 부두로 감/운전사 안용덕과 납치범 4명 동행
-이동조 행동 개시
-용금호 통신장 정용석/오사카에서 정 사장이 이희호 여사에게 전화했다는 소리 다방에서 들음
-용금호 선원 위장 박정열 정운길 등 참여
-9일 새벽 한 시경, 김대중 배에 납치
-눈에 안대, 검은 보자기에 싸아 로프로 선창에 실어
-선창밑 타기실에 감금
-자해 못하도록 붕대 감은 막대기를 재갈로 끼웠다가 막대기 제거
-일반 선원들은 무슨 일인지 몰라
-9일 오전 8:45 오사카 출발
-관문해협 통과
-이 때 주한미국대사 하비브가 박정희 만나 풀어줄 것을 요청
-10일 현해탄 건너
-선원들에게 죽일 것이나 아니냐 물어 봐, 안 죽인다는 대답 들어, 성호 그어.
-11일 밤 부산 도착
-12일 오전 7시 부산 부두 진입
-부두에 김진수 중정 일본과장/강재원 공작과장/윤석만, 김선대의무실장 등 나와
-신상 체크
-부산에서 서울로 엠블러스 위장차로 호송, 안가 감금
-하태준이 직접 와서 김대중임을 확인
-다음날 이휘윤 소령/운전사/강제원 과장 등이 동교동 집 앞에서 놓아줌
4. 중요 쟁점/당사자와 납치자들의 증언 틀리는 부분
-가장 큰 부분이 현해탄 미국 비행기 출현설과 수장설
-아직은 결론이 나지 않아
가. 비행기 출현설
-납치자는 비행기 소리 들었다고 증언
-선원들은 엔진롬 옆 방이라 엔진 가속 소리를 비행기 소리로 들었을 것이라고 증언
-갑판원 임익춘/65세, 비행기 나타난 사실 없다고 증언
-당시 미국 대사관 관계자들도 미국 비행기 출동설 부인
-납치자 자신도 후에 미대사관측에 물었으나 대사관측이 부인
나. 납치자 현해탄 수장설
-김대중 납치자는 수장설 증언
-이철희는 죽이려고 했으면 해외공작팀이 아닌 다른 팀이 투입되었을 것이라며 수장설 부인
-선원들도 수장설은 부인
5. 사람들
-이후락, 74세, 중앙정보부장, 대통령비서실장, 주일대사, 김대중사건 공식 지시자, 하남과 광주, 그리고 서울에 거주, 도자기 취미, 권세가 이후 노후에 재산가로 알려짐, 이제는 이후락이 입을 열을 차례! 김대중에 대해 박정희가 무슨 조치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말을 듣고 과잉 충성으로 납치했다는 설 있슴.
-이철희, 5.16 당시 방첩대장, 중정차장, 이후락한테 김대중 사건 지시 받고 본부 총지휘, 유정희 국회의원, 장영자와 결혼, 장영자/이철희 사건 주역, 서울 청담동 거주,
-하태준, 71세, 김대중 납치 계획 문제가 대두하자 베르린 사건을 상기하며 처음에 반대, 이후락 강요로 계획 착수, 윤진원에게 납치 계획 수립 지시, 78년 차장보로 퇴직, 롯데 사장, 호남석유화학 사장
-김기완, 주일 공사, 처음에는 완강히 반대, 가담, 5년 전에 사망.
-윤진원, 73세, 함안 태생, 부산공고 졸, 육군종합학교 졸업, 소위 임관/1950, 임관후 에치아이디 근무, 이철희도 에치아이디 출신, 1961년 중앙정보부 소령 입사, 1973년 준장 진급 실패, 1급으로 계속 근무, 국내 정치 담당을 제의했으나 거절한 일화, 자신은 대북만, 80년 은퇴, 이태원 거주, 대북 공작 베테랑, 작고 다부져, 목숨 걸고 사선 넘어, 오직 국가를 위해서만, 우국애국인생 30년, 애국자 칭호 받음, 김대중 납치 사건으로 30년 인생에 오점.
-공소 시효 다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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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첫 대권 도전···공화당 박정희 대통령에 석패
1973년 도쿄 납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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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명동사건 (3.1 민주 구국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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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석방 · 가택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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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연금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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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사면 복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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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내란 음모 사건'으로 구속 (5.18 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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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해금 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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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민추협 공동의장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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